‘국제법보다 中헌법 우위’ 천명… 전랑외교 노골적 뒷받침 [中, 대외관계·反간첩법 시행]

이귀전 2023. 6. 29.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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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1인체제 공고화 가속
反국익 행위, 법적책임 추궁 강조
‘사드’ 같은 대외 보복성 조치에도
자국 논리 앞세워 공식화 가능성
외국 정부·민간 상대로 압박 강화
美·中 양측 제재땐 ‘새우등 터질라’

미국과 전략경쟁 중인 중국이 미·서방의 제재와 견제에 맞서기 위한 법적 제도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국법을 중국 제재에 활용해 왔던 미국과 서방처럼 중국도 국내법으로 외국을 제재할 수 있는 근거를 명확히 하려는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3연임 뒤 대외적으로 ‘높은 수준의 개방’을 천명한 중국이 약속과 달리 시 주석 1인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외국 정부 및 민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는 데 치중하는 꼴이라 대외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앞줄 가운데)이 28일 베이징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건물에서 열린 상장 진급식에서 군 최고 계급인 상장으로 진급한 장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베이징=EPA연합뉴스
29일 인민일보 등에 따르면 제14기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가 전날 제3차 회의에서 통과시킨 대외관계법 취지는 “대외관계를 발전시키고 국가 주권, 안보, 발전 이익을 수호하며 인민의 이익을 수호·발전시키며,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건설하고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고 세계 평화와 발전을 촉진하며, 인류 운명 공동체 건설을 추동하기 위한” 것이다.

왕이(王毅)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은 이날 인민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이 법에 대해 “신시대 중국 특색의 대국 외교를 법치 사상과 방법론으로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려 중국식 현대화로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전면적으로 추진한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미사여구로 치장됐지만, 법 조항을 뜯어보면 실상은 반대다. 대외관계법을 관통하는 핵심은 중국의 자국 우선주의에 의한 타국에 대한 보복 대응 근거 확립이다.
자국 주권과 안보에 대한 반격 권리를 명시한 33조 외에 6조는 “국가기관과 무장 역량(군, 무장경찰 등), 각 정당과 인민단체, 기업과 사업조직, 기타 사회조직 및 공민(국민)은 대외 교류 협력에서 국가의 주권, 안전, 존엄성, 명예, 이익을 수호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규정했다. 8조는 국익에 반하는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 추궁을 강조했다. 33조는 “국무원(중국 최고 행정기관)과 그 부서는 필요한 행정 규정과 부서 규칙을 제정하고 관련 대응 조치와 제한 조치를 결정하고 구현한다”며 실행 의무까지 마련했다.

모두가 미·중 전략경쟁 국면에서 중국의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를 법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의도다.

30조도 우려된다. “국가가 체결하거나 참여하는 조약 및 협정은 헌법에 저촉되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다. 이는 중국 헌법이 모든 것에 앞선다는 자국 헌법의 우위 원칙을 매우 분명하게 밝힌 것으로 국제법도 무시할 수 있다는 의미다.

중국은 2016년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지만 남중국해 90%를 차지하는 ‘U’자 형태의 9개선 ‘남해 9단선(南海九段線)’에 대해 영유권 주장을 고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헌법이 국제법보다 우선한다고 규정함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자국 중심 억지’ 주장이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 주석이 자주 쓰는 ‘중화(中華)’라는 말 자체가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뜻이다.

국제법적 문제가 아니더라도 중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을 계기로 비공식적으로 시행해 온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과 같은 대외 보복성 조치도 자국 중심 논리를 앞세워 공식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이 중국 기업·개인을 상대로 한 제재에 맞서 반(反)외국제재법을 근거로 맞불 제재를 시행해 왔다. 그런 터에 이번에 대외관계법을 제정하면서 미국 등 갈등 관계 국가에 취할 맞대응 조치의 법적 정당성을 강화하고, 취할 수 있는 조치를 더 다양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경우 중국과 무역하거나 현지에 사업장 등을 운영 중인 미국, 한국, 일본 등의 기업이 미·중 양측의 제재를 의식해 진퇴양난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같은 날 시행되는 개정 반간첩법(방첩법)은 더 황당한 경우다. 중국 방첩법에 따르면 ‘기타 국가 안보와 이익과 관련된 문건, 데이터, 자료, 물품’을 보호 대상에 규정함으로써 유출 시 처벌받는 정보의 범위가 대폭 넓어지게 됐다. 법에 따라 ‘비밀’로 분류된 정보가 아니더라도 ‘안보’나 ‘국익’과 관련 있다고 사법 당국이 규정할 경우 처벌될 수 있다. 또 ‘간첩 조직과 대리인에게 빌붙는 행위’도 간첩 행위에 포함됨으로써 비밀을 넘기는 구체적인 행위가 적발되지 않더라도, 교류해 온 외국 기관 등이 ‘간첩’ 또는 ‘간첩 대리인’으로 규정되면 처벌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정치공작부와 기율감찰위원회는 최근 방첩법 시행을 앞두고 군대 간부들의 민간인 접촉 통제를 강화하는 등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베이징=이귀전 특파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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