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수신료 분리징수 ‘89% 반대’ 무시하는 방통위 이중 잣대
방송통신위원회가 TV수신료를 분리징수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지난 16일부터 열흘간 입법예고했다. 이 기간에 접수된 의견 4746건 중 89.2%가 ‘분리징수 반대’, 8.2%가 ‘분리징수 찬성’이었다. 접수된 의견만 놓고 본다면 국민 대다수가 TV수신료 분리징수에 반대한 것이다. 그러나 김효재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은 이 결과에 대한 의견을 묻는 야당 의원들에게 ‘국민들이 먹고살기 바빠 이런 데 의견을 내기 쉽지 않다. (시행령 개정으로) 어려워지는 곳에서 의견을 많이 낸 것 같다’는 취지로 답변했다고 한다. 분리징수로 가장 타격이 큰 KBS 구성원들이 집단적으로 반대의견을 낸, ‘조작성’ 결과라는 뉘앙스의 발언이다. 이미 방침이 결정됐으니 국민 의견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없다는 무책임한 태도다. 이럴 거면 입법예고 행정절차는 왜 하는지 의문이다.
대통령실은 지난 5일 브리핑에서 방송통신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에 수신료 분리징수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지난 3월 한 달간 대통령실 홈페이지에서 수신료 징수 방식에 대해 투표한 결과 96.5%가 분리징수에 찬성했다는 걸 근거로 내놨다. 하지만 이 조사는 한 사람이 여러 계정을 만들어 투표할 수 있어 조작 가능성이 농후했다. 여당과 일부 보수 유튜버가 지지층을 상대로 투표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국민 여론이라며 분리징수 방침을 밀어붙였다. 그런 정부가 입법예고 기간 의견엔 정반대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가 유리하면 ‘국민의 뜻’이고, 불리하면 ‘조작’이라는 것인가.
정부는 통상 40일 걸리는 시행령 입법예고 기간도 ‘신속한 국민 권리보호’를 위한다며 열흘로 줄였다. 입법예고가 끝났으니 이제 방통위·차관회의·국무회의 의결과 대통령 재가만을 남겨두고 있다. 지난 5일 대통령실의 분리징수 권고가 나온 지 한 달 만에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는 것이다. 유례없는 속도전이자 “민주정치를 압살하는 속도의 폭력”(언론개혁시민연대)이다.
윤석열 정부가 이토록 서두르는 건 돈줄로 공영방송을 압박해 내년 총선 전 여론지형을 우호적으로 만들려는 속내일 수 있다. 설사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해도 분리징수가 얼마나 국민 편익에 부합하는지, 방송 공공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에 대한 논의를 생략해선 안 된다. 정부는 수신료 분리징수 작업을 일단 멈추고 숙의를 위한 공론장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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