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내셔널지오그래픽

이명희 기자 2023. 6. 29.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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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의 한 서점 주인이 아프가니스탄 난민 소녀 샤르밧 굴라가 등장하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표지를 보여주고 있다. 1985년 6월호에 등장하는 이 사진은 이 잡지의 가장 유명한 표지 가운데 하나다. AP연합뉴스

미국 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지구의 일기장’이라고 불린다. 그 시작은 1888년으로 올라간다. 그해 1월27일 초대 발행인이던 가드너 허버드(1822~1897)가 지리학자와 생물학자, 은행가들을 모아 ‘내셔널지오그래픽 협회(NGS)를 만들었다. 협회는 그해 10월 첫 호를 발간했다. 지금과는 달리 당시는 갈색 표지에 기사만 가득한 밋밋한 잡지였다.

지금 잡지의 위상을 개척한 것은 길버트 그로스버너이다. 그가 1899년 편집인이 되면서 잡지를 사진 중심으로 개편했다. 그 후 사람들은 상상만 했던 극지·오지의 생생한 풍경을 잡지를 통해 보게 됐다. 탐험가인 조셉 록은 중국 티베트의 고산지역을 20년 이상 누비며 소수민족 생활상을 취재해 잡지에 소개했다. 그의 답사보고서는 영국 작가 제임스 힐턴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작품에 묘사된 ‘샹그릴라’는 꿈의 낙원을 이르는 곳으로 영어사전에도 등재됐다. 잡지는 1985년 침몰한 타이태닉호를 사진에 담아 최초로 발표했고, 제인 구달의 침팬지 연구 등 많은 탐험 현장에 함께했다. 탐험가들의 이런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에 세계 최고의 다큐멘터리 잡지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프랑스 작가 르클레지오가 제주 해녀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이 잡지를 보고 나서라고 한다.

135년 역사의 잡지는 지난해 말 기준 미국 내 구독자만 180만명에 달한다. 이런 일화가 있다. 1984년 워싱턴 본사에서 기념연설을 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여러분 역시 지나간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보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겠군요”라는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당시 이 잡지가 집집마다 책장에 가득 꽂혀 있던 미국의 가정풍속도를 짚어낸 유머였다.

그랬던 이 잡지도 디지털 뉴스가 부상하면서 경영난을 피하지 못했다. 28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잡지 소유주인 월트 디즈니는 최근 소속 기자 전원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그만큼 살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대로라면 노란색 프레임으로 상징되는 이 잡지를 볼 날이 얼마 안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숱한 잡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다음에 폐업할 잡지는 어디일까. 세상에 읽을거리를 던져온 잡지의 내리막길이 씁쓸하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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