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얼은 굿이다”… 비디오아트 전설, 무속과 通하다
굿을 ‘예술의 원초적 뿌리’라고 여기며
신과 인간 연결해 주는 소통으로 해석
굿판 창조적 진화시킨 작품세계 조명
제주 심방과 풀어내는 다섯 거리 굿판
일만팔천 신들과 함께 백 영혼 모셔와
왕생극락 기원 ‘붓시왕맞이’ 퍼포먼스
“한국 무속은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한마디로 소통이야!” “우리의 얼은 굿이다.” “나는 굿쟁이다.”
“현대예술은 예술을 하지 않는 게 예술이다”라는 백남준의 말은 ‘서구식 방식의 예술은 끝났다’는 뉘앙스다. “우리가 세계사의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면 (서구인이 독점한) 룰을 바꿔라”고 했던 그의 이 같은 비전은 ‘굿의 세계화’ 선언으로 들린다.
백남준은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열린 그의 첫 ‘전자 텔레비전-음악의 전시’에서 잘린 소머리를 전시장 입구에 내걸었다. 굿이었다. 부제는 ‘추방(EXPEL)’. 뭘 추방하려 했던 걸까? 터줏대감 같은 서양미술을 내쫓는 굿이었다. 설치작품 ‘나는 결코 비트겐슈타인을 읽지 않는다’에는 그 같은 정신이 명백하게 담겨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 뽑힌 순수철학자로 20세기 서양 정신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비트겐슈타인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사고틀을 서양 정신에 맞추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TV 조정화면을 연상시키는 7가지 색상으로 소통하고자 했던 그는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하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명제를 거부하고, 예술, 종교, 굿에 대해서도 자신만의 언어로 말하고자 했다.
비디오 조각, 회화, 판화, 그리고 최초 공개하는 영상 등을 선보인다. 백남준의 굿 퍼포먼스를 기록한 최재영 사진가의 사진작품 30여 점도 자리를 잡았다.
‘통’을 주제로 내건 전시는 다섯 가지 ‘신통’(神通, 身通, 信通, 伸通, 新通)으로 구성됐다. 백남준이 제주 심방과 풀어내는 다섯 거리 굿판을 짠 것이다.
전경수 서울대 명예교수는 “근대화의 궤적에서 미신으로 추방되던 신앙이 무속이라는 전통문화로 돌아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에너지원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호평했다.
갤러리 누보 송정희 대표는 “소통과 공감이 절실한 현대 사회에서 예술과 예술 아닌 것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죽은 자와 산 자가 통하며, 일상과 신성이 만나고,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했다”며 “샤머니즘의 예술적 승화를 실현한 백남준의 예술을 설문대할망 신화를 품은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재해석하고자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그는 한국의 샤머니즘에서 생자와 망자가 소통하는 제의, 천지인이 하나라는 우주 만물의 원리, 거기에서 뿜어 나오는 생동의 기운, 삶의 축제를 예술과 접목했다. 물질에서 정신을, 죽음에서 생명을 끌어내는 동력이 있다고 여겼다.
굿이란 모순된 사회구조 속에서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괴롭히는 공동 악을 물리치고, 노동의 고단함과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며 삶을 재충전해 정신적 해방을 맛보는 것이다. 더 좋은 세상을 위한 구체적 대안을 창출하는 공동체를 말한다.
백남준은 서양의 기존 질서를 전복시키는 사람을 좋아했다. 기존 음계를 뒤바꾼 작곡가 쇤베르크, 기존 사회를 변혁하려는 마르크스, 계몽적 근대주의를 비판한 푸코, 원시적 생명력이 넘치는 야생의 사고를 주장한 레비-스트로스 등이다.
백남준이 독일에서 관객을 무대에 올려놓고 샴푸를 풀어 머리를 감긴 것은 일종의 ‘씻김굿’이다. 그는 평생 굿을 했다. 고급예술로 변질된 예술의 계급화에 저항하기 위해서였다.
백남준은 전통굿을 독창적 창조적으로 진화시키며 재해석해냈다.
첫째는 굿의 ‘세계화’다. 1970년대 세계 55개국에서 한국의 부채춤과 굿을 소개했다. 1980년대에는 전 세계 방송을 연결하는 위성을 통해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 세계의 춤과 함께 한국의 춤과 굿을 알렸다.
둘째는 굿의 ‘인간화’다. 백남준이 1990년 서울 갤러리 현대에서 생일날 삿갓을 쓰고 1986년 작고한 독일 친구 요셉 보이스를 추모한 ‘진혼굿’과 생과 사, 동과 서를 넘어 우정을 다지고 영적으로 만난 ‘접신굿'이 그것이다. 인간의 한계를 넘은 커뮤니케이션이다.
셋째, 굿의 ‘현대화’다. 백남준의 굿은 선사시대부터 내려오는 전통과 포스트모던, 첨단과학의 정신을 다 합친 ‘신문명굿'이다. 굿판에 등장하는 갓이 서양의 중절모와 나란히 놓이고, 악귀를 몰아내고 신을 부르는 도구인 ‘방울’이나 ‘칼·요강·놋그릇’을 서양의 ‘피아노’가 대신한다. 우리의 ‘청동거울’이 ‘TV(모니터)’와 절묘하게 만난다.
넷째는 굿의 ‘민주화’다. 백남준은 굿과 전시에 관객을 적극 참여시켰다. 주인공으로 모셨다. 그는 그렇게 대중에게 성큼 다가갔다. 문턱 높았던 기존 권위적 예술의 벽을 허물었다. 관객을 문화 소비자가 아니라 주체자로 치켜세웠다.
제주=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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