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거장을 만나다] 진주의 별, 우주로 돌아가다…세계적 추상화가 ‘이성자 화백’
[KBS 창원] [앵커]
경남의 거장을 만나다, 6월에 만날 인물은 탄생 105주년을 맞은 이성자 화백입니다.
고향 경남에서 얻은 감성으로 서양의 화단을 사로잡은 이성자 화백의 작품 세계와 삶을 진정은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1935년 진주에서 여고를 졸업한 유복한 집안의 소녀.
스물에 결혼해 얻은 어린 세 아들을 두고 6·25 전쟁 중이던 1951년 홀로 프랑스 파리로 떠납니다.
살림만 살던 30대 주부는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지 불과 5년 만에 프랑스 화단에 데뷔하고 이름을 알립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추상화를 그린 여성 화가이자, 재불화가 이성자 화백입니다.
초기 작품에는 한국에 두고 온 어린 세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이 겹겹이 쌓여있습니다.
[윤다인/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학예사 : "아주 두껍게 올려져 있는 물감층을 보실 수 있어요. 붓 터치 한 터치 할 때마다 내 아들을 쓰다듬는 것 같았고, 한 터치를 할 때마다 아들 밥 먹이는 것 같았고 이렇게 생각을 하시면서 작업을 했다고 해요."]
그리고 15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본 알래스카.
[윤다인/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학예사 : "아들들을 두고 온 슬픔을 이겨내면서 작업을 했기 때문에 비행기에 있었을 때 심정은 사실 남달랐을 거예요."]
1965년 귀국전을 열며 잘 자란 아들들을 눈으로 확인한 화백의 작품 세계는 '어머니'에서 자유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선과 면을 겹쳐 보여주는 '중복의 시대'와 강렬한 원색을 사용한 '도시 시대', 나무와 대화하는 '자연 시대'를 거쳐 '우주시대'로 진화해 나갑니다.
'음과 양' 등 동양적 사유를 서양적으로 풀어내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추구한 화백의 무한한 감성은 고향 경남 땅에서 시작됐습니다.
군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유년 시절을 보낸 김해 왕릉과 낙동강, 창녕 화왕산의 눈부신 자연은 한국적 추상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이성자/서양화가/1985년 : "내 그림을 동양적이라고 그런 말을 하는데 나는 그 안(고향)에 살고 있어요. 제가 어릴 적에 그 시절에 제일 행복했고…."]
작품에 즐겨 쓰는 파스텔톤의 분홍과 주황, 보라는 고향 진주의 진달래에서 빚어냈습니다.
그렇게 화백은 1957년부터 2006년까지 회화 천 3백여 점, 판화 만 2천여 점, 도자기 5백여 점 등 만 4천여 점 작품을 남겼습니다.
90세가 되던 해 작품 376점을 고향 진주에 기증하고, 1년 뒤 남프랑스의 개인 작업실 '은하수'에서 타계한 이성자 화백.
[이성자/서양화가/1985년 : "나는 고향 생각이 안 나고 슬프지도 않았어요. 그 이유는 나는 고향에서 살고 있어요. 지구라는 게 원이면 내가 서 있는 그쪽 발 제일 끝은 나의 고향이에요."]
그가 떠나고 5년 뒤 문을 연 '진주시립 이성자 미술관'에는 격동의 시기 개인적 아픔을 이겨내고 세계적 추상화가로 살다 우주로 돌아간 별이 빛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정신이 한 작품에서 다른 작품으로 유람을 하고 거대하고 장엄한 우주의 노래로 우리 자신을 달래도록 할 때이다.' -이성자-
KBS 뉴스 진정은입니다.
진정은 기자 (chri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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