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7.용인 안젤리미술관

경기일보 2023. 6. 29.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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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풍광과 커피 그리고 그림에 빠지다
안젤리미술관의 이름은 이탈리어로 ‘천사들’을 의미하는 Angeli로, 2015년 개관 후 지역 주민과 학생들에게 미술적 영감과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미술관 전경. 윤원규기자

 

노란 해바라기가 작은 캔버스에 활짝 피어났다. 수채화 붓을 내려놓고 스마트폰을 꺼내 완성된 그림을 담는다. 밑그림에 붓으로 색칠을 하는 단순한 작업이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즐거운 시간이다. 문득 궁금하다. 대작을 완성한 전업 화가의 기분은 어떨까?

■ 커피향 맡으며 그림을 그리다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용덕저수지 옆에 자리한 안젤리미술관(관장 권숙자)은 지난 2015년에 개관한 1급 사립미술관이다. 2천500평(8천264㎡)의 대지 위에 제1전시장과 제2전시장, 교육실과 예술대화방, 회의실과 체험실을 두루 갖추었다. 미술관 2층 카페는 관람객들에게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을 일깨워주는 화실로 활용되고 있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아늑한 카페에서 커피 향을 맡으며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몰입’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유년 시절의 풋풋한 추억을 떠올리며 잊고 있던 자아와 만나는 행복한 시간이다.

안젤리미술관 건축물은 권숙자 관장의 정성과 애정이 듬뿍 담긴 작품이다. 검은색과 붉은색이 조화를 이루는 미술관은 하늘로 비상하는 새를 형상화한 것이다. 외벽을 장식한 네 개의 빨간 원모양의 구조물은 눈을 상징한다. 하얀 날개를 펼친 천사와 마당에 새긴 커다란 별이 환상의 세계로 안내할 것 같다. 두 마리 새와 젊은 남녀가 조각된 전시장 현관문도 멋스럽다. 미술관 안마당에 자리한 200평(661㎡)의 야외 공연장에 들어서면 천사의 품에 안긴 것처럼 아늑하다. 모자이크로 장식된 대형 벽화 ‘오월의 신부’는 관람객의 발길을 머물게 하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미술관 곳곳에 권숙자 관장과 고인이 된 남편 곽안젤로의 사연이 숨어 있다. 그렇다. 안젤리미술관은 음악가 남편과 화가인 아내가 만든 공동작품이다. 꽃들이 활짝 핀 오월의 화원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을 묘사한 ‘오월의 신부’에 미술관의 탄생 이야기가 숨어 있다.

8명의 작가의 특별기획전인 ‘하늘·사람·땅’ 전시가 열리고 있다. 윤원규기자

■ 미술관 곳곳에서 만나는 삶의 이야기

“젊은 시절 프랑스 여행을 하다가 니스에 있는 샤갈미술관을 방문한 후 미술관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됐어요. 니스해변의 푸른 물빛처럼 푸른 색조를 이루고 있는 샤갈그림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작품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 미술관으로 스며드는 찬란한 햇살이 미술관 바닥에 그림처럼 드리워지고 있을 때, 문득 미술관을 가지고 싶다는 강열한 욕구가 일어났어요. 그때 안젤리미술관의 태동이 됐던 것이지요.”

권 관장이 미술관을 개관하던 2015년에 펴낸 에세이집 ‘이 세상의 산책 안젤로의 전설’에도 그 특별하고 가슴 먹먹한 사연을 자세히 담아 뒀다. 건축을 시작한 이후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고, 예술가의 길을 걷던 남편을 암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이처럼 견디기 힘든 어려움을 겪었으나 쓰러지지 않고 꿋꿋하게 여기까지 걸어온 저력은 무엇일까. 뜻밖에 들려주는 대답은 소박하다. “아름다운 미술 작품들을 지역에서도 언제든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혼자서 미술관을 운영하며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인데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을까. “사립 미술관 운영이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겪는 어려움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죠. 그래도 이 공간을 통해 지역 문화 확산을 이룬다는 사명만큼은 내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강남대 미대 교수로 37년을 재직한 권 관장이 사비를 털어 2015년에 개관한 사립미술관 안젤리가 개관 후 지금까지 8년의 세월 동안 쌓은 결과물은 풍성하다.

관람객들이 유현숙 작가(ANAKI RYU)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를 찾고 깨닫는 공간

안젤리미술관은 지난달 말부터 이달 중순까지 특별기획전 ‘하늘, 사람, 땅’ 전을 열었다. 예술혼을 바치며 창작활동에 전념하는 32인의 작가들이 참여한 기획전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나 가치나 보람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했었지요.” 권 관장이 들려준 말처럼 작가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작품으로 말하는 존재다.

만 3년 이어진 코로나19의 여파는 컸다. 전업 작가들이나 사립미술관이 겪은 고난은 상상 이상이다. 이 기간 동안 안젤리미술관은 특화된 전시 프로그램 개발에 집중한다. 체험학습에 다양한 연령층을 참여시키는 일, 레지던스를 이용해 젊은 미술가를 양성하는 일, 시니어 지망생에 대한 1대 1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 찾아가는 미술교실을 적극 운영하며 미술관의 외연을 넓혀왔다. 특히 레지던스를 이용한 젊은 미술가 양성 프로그램은 주목을 받았다.

코로나19라는 악조건 속에서 특화된 전시 프로그램을 개발한 안젤리미술관의 저력은 무엇일까. 강남대 미대 교수로 재직한 권숙자 관장은 대외활동에도 열심이었다. 경기여류화가 회장과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양화 심사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도 세종대 미대 동인인 ‘군자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전통 회화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역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 권숙자 관장은 작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여 대한민국 국전 우수작품상(1977·1978년)을 비롯해 독일 괴테문화원 초대전 최우수상(2010년) 등을 수상한 실력파 작가다. 이러한 권 관장의 풍부한 경험과 역량이 코로나19라는 위기 속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권숙자 관장은 미술 발전과 후학 양성에 헌신하고, 미술관 설립·운영 및 용인지역의 문화예술 진흥을 이끌며, 복합문화공간 조성과 신진작가 발굴·지원 선도에 기여한 공로로 ‘2022 대한민국 사회공헌 대상’을 수상했다.

미술관에서 제공하는 교육을 받고 있는 어린이들. 윤원규기자

■ 지역 문화의 지평을 넓히는 편안하고 즐거운 미술관

올해로 7년째 ‘전국미술공모전’을 개최하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정서함양·인성교육·창의력 신장·미술인재 발굴에 정성을 쏟고 있다. 2016년부터 시작한 안젤리미술관 어린이 공모전은 지역 대표 어린이 미술 대회로 자리 잡았다. 그는 돈과 명예보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사는 것’이 성공한 인생이라 믿고 있다. “사립미술관 운영이 어렵지만 누군가는 지역문화예술 진흥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지요. 신진작가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용인시 문화예술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 나에게 부과된 사명이라 생각하며 각오를 다져요.” 지난해 가을에는 미래의 꿈을 지니고 열정과 혼신을 다하는 청년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대학·대학원 우수작품전 – 청년작가 발굴의 보고(寶庫)전’을 열었다.

안젤리(Angeli)는 이태리어로 ‘천사들’이란 뜻이다. 천사를 내세운 까닭은 무엇일까. “미술의 가치는 미의 역할만이 아니라, 선의 역할 또한 포함해야 한다고 믿고 있어요. 우리 미술관은 미와 선, 그리고 인간다움을 추구합니다.” 안젤리미술관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경쟁이 아닌, 안락하고 평안함을 간직한 공간이 되기를 희망한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꿈다락토요문화학교 역시 공동작업을 통해 크고 작은 다양한 작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지도해 다른 도시에서 찾아올 정도로 인기가 높다. 지난해 여름에는 경기 꿈의학교 ‘유럽의 예술 거장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다음 달부터 12주간 진행했다. 경기도교육청에서 2015년부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학생이 스스로 기획·운영하고, 참여하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게 돕는 교육활동이다. 유럽의 예술거장의 작가 탐구와 작품 감상을 통해 유연한 사고와 미적 안목을 기르고, 다양한 미술 체험과 활동을 통해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창의적으로 표현하도록 하는 알찬 프로그램이다. 올 여름에는 어떤 프로그램이 준비되었을까. “7세 이상의 아동을 대상으로 여는 ‘뮤지엄 아트스쿨’입니다. 환경교육과 미술관 산책, 돌과 타일로 설치 작품 만들기와 물감물총놀이도 해요. 선착순으로 모집하니 서둘러 신청하세요.” 미술관 너머 호수에 저녁놀이 물들고 있다.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순간의 시간이 삶의 의미를 일깨워준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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