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째 동결 의대정원, 한번에 500명 늘리기로…대학 신설은 안해

유주연 기자(avril419@mk.co.kr) 2023. 6. 29. 19:3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공공의대 신설 답 아냐...기존 의대 정원 500명선 확대 추진
국내 의대 40곳 중 정원 50명 미만인 학교가 42%
지역의사제 도입해 지역 불균형 해소
필수의료 수가 높이고 전문의 추가 채용 유도해야
[이충우 기자]
필수의료 공백이 의료계뿐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급부상한 가운데, 정부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의대 입학 정원을 단계적으로 늘리기 보다 한 번에 대폭 증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증원 규모는 대략 500명 선이 검토되고 있다. 증원 방식은 공공의대 등 신규 의대 설립이 아닌, 기존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정부는 2025년 입시부터 의대 입학 정원을 늘려 뽑을 방침이다.

29일 정부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정부는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의사인력 확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필수의료가 붕괴된 가운데 의대 정원을 단계적으로 찔끔 늘려서는 문제 해결에 역부족이라는 판단에서다. 당장 의대 입학 정원을 늘려도 전문의가 배출되려면 최소 10년이 걸린다.

증원 규모는 500명 선이 유력하게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대 입학 정원은 2006년 이후 18년째 3058명으로 묶여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현재 국내 의대 40곳 중 정원 50명 미만인 학교가 17곳(42.5%)이다. 울산대를 비롯해 성균관대, 가천대, 아주대 등의 입학 정원은 40명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정원이 늘어나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춘 의대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산술적으로 의대 정원 50명 미만인 학교 17곳에서 정원을 60명씩만 늘린다고 가정하면, 약 1000명 증원도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정원 50명 이상인 의대는 총 23곳으로 서울대(135명)와 연세대(110명), 가톨릭대(93명) 등이 여기에 속한다.

정부가 기존 의대 정원을 확대에 무게를 두는 것은 의료의 질을 담보하면서 안정적인 의사 인력 배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울산대 의대는 자체 시설뿐 아니라 협력기관인 서울아산병원의 첨단 기자재를 활용할 수 있는데도 정원이 40명밖에 안돼 낭비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병원업계 관계자는 “울산대의 경우 지금보다 2~3배로 정원을 늘려도 충분히 수용 가능하다. 기존 의대 증원으로 가야하는 이유”라며 “신설 의대가 효과적으로 기능하려면 관련 병원도 같이 지어야하는데 이는 엄청난 국가적 낭비”라고 말했다.

의대가 병원과 함께 운영돼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과거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서남대 의대가 설립됐지만 수련 가능한 의료기관 부재 등 부실 운영으로 2018년 폐교된 사례가 있다. 의대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우수한 교수진과 수련·연구 환경이 갖춰져야 하는데, 의대 신설 후 단기간 연계 병원 설립 등 역량을 갖추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임재준 서울대병원 공공부원장은 “의사를 키워내려면 학생뿐 아니라 교수진, 교과과정, 실습현장 등 시스템이 함께 확보돼야 한다”며 “단순히 대학을 설립한다고 해서 양성 시스템이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존하는 의대를 중심으로 정원을 늘리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정원 확대를 통해 늘어난 의료인력이 본래 취지대로 필수의료에 유입되기 위해선 수가 문제를 선제적으로 풀어야 한다. 의료계에선 필수의료만을 겨냥해 수가(정부 보조금)를 대폭 인상하지 않는 한 나머지 과목과의 수익 격차는 메워지지 않고 인력 이탈을 막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수가를 올리면 전체 진료비가 높아져도 환자 부담은 그대로이고 정부 보조금이 많아져 병원이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지금은 필수의료 부문의 수가가 낮아 병원측은 필수의료 부문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필수의료 부문의 수가를 올리면 이 분야에서 수익이 늘어나는 만큼 병원측에서도 투자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수익이 늘어나는 만큼 의료진 처우를 개선할 수 있어 의사 부족현상을 극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순섭 대한외과학회 총무이사는 “서울 소재 종합병원의 경우 올해 1~4월 동안 평일 저녁 8시 이후와 주말, 공휴일에 진행된 수술의 절반이 외과 담당이었다”며 “업무량이 상당한 반면 수가는 매우 낮아 외과계 가산율(20~30%)을 적용해도 원가보전율이 85%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외과 수가는 미국의 18.2%, 일본의 29.6%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의료 전문가들은 수가 인상과 더불어 전문의·교수진 채용을 대폭 늘리는 방안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수가가 오르면 병원이 직접적인 혜택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인력 보강으로 이어져야 한 사람에게 쏠리는 업무량을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민구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주 7일 근무 여건이 필수의료를 기피하게 만드는 요인”이라며 “정부가 병원에 재정을 투입하고 병상에 따른 인력기준을 만들어 경영진이 채용을 늘리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중범 대한소아중환자의학회 기획이사는 “주 40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전문의가 4.5명은 있어야 24시간 대응이 가능하다”며 “한두명의 전공의에만 의존하는 데서 벗어나야 필수의료에 인력이 유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의료가 붕괴된 가운데 지역의사제 도입도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늘어나는 인력이 수도권에만 집중될 경우 현재 지역 간 의료격차가 더욱 커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임 부원장은 “지역인재선발 전형을 늘려 졸업생들의 일부는 그 지역 필수의료 분야에서 일정기간 동안 일하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며 “대신 해당 지역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 한해 의대 지원 자격을 주고 그들이 의대 6년, 인턴 1년, 전공의 3년 등 10년간 교육받는 데 드는 비용을 정부가 전액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는 “일정기간 지역에서 근무하는 조건으로 공중보건장학금을 지급하는 미시적 정책들이 동반돼야 한다”며 “의사인력 공급이 원활해지면 불균형 문제는 상당부분 자동 조정된다”고 말했다.

이밖에 필수의료행위에 한해선 형사처벌을 면제해줘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과목 특성상 사람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행위가 많다 보니 의료분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이러한 점이 인력 이탈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국회에는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해 형사처벌을 감경해주는 법안이 발의돼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법무부와 긴밀하게 논의해봐야겠지만 필수의료를 살리려면 개인 과실이 아닌 한 처치 등의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경감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