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서 모은 사진 5만장으로 ‘조선족 역사’ 새로 씁니다”

강성만 2023. 6. 2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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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간도사진관 시리즈 내는 류은규 사진가

류은규 작가가 인터뷰 뒤 인천관동갤러리 전시 사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강성만 선임기자

<기억의 기록>(토향).

사진가 류은규와 도다 이쿠코 부부가 지난해부터 내는 ‘간도사진관 시리즈’ 두 번째 사진집이다. 지난해 나온 첫 권 <동주의 시절>은 시인 윤동주가 어린 시절 보았던 북간도 풍경과 사람들 사진을, 시인이 고향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며 지은 시와 함께 보여줬다. 출간 뒤 사진이 윤동주 시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는 평을 받았다. 해방 전부터 1980년대 말까지 중국동포 사진 170장이 담긴 이번 책은 사진관 사진사의 시선이 두드러지게 투영된 사진들이 중심이다.

“올해 말 나올 세 번째 책은 ‘어린이’가 주제이죠. 일제가 1932년 중국 동북 지역에 만주국을 세우기 전 조선족 아이들이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모습부터 요즘 사진까지 180장 정도 담으려고 해요. 중국인들이 한국전 때 북한을 도운 ‘항미원조’와 1950년대 말 ‘대약진운동’도 다음 주제로 생각하고 있어요.”

지난 26일 부부가 2015년부터 운영하는 인천관동갤러리에서 류 작가를 만났다.

<기억의 기록> 표지.

시리즈 사진들은 그가 1995년부터 2007년까지 조선족이 많이 거주하는 동북 삼성을 발로 뛰며 수집한 4, 5만장 가운데 추렸다. 1991년 결혼한 일본인 아내와 생후 6개월 된 아들과 함께 1993년에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으로 건너간 그는 2년 뒤 옌볜대 민족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적을 두면서 조선족 사진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2000년부터는 옌볜대와 다롄의대, 난징시각예술대, 하얼빈대에서 사진 강의도 했다.

그는 이 사진들로 앞서 <사진으로 보는 조선족 100년사>(2000)와 <연변문화대혁명>(2010)을 펴내 주목을 받았다.

그가 동북 삼성에서 교통비와 사례비 등 적지 않은 돈까지 써가며 사진을 모은 것은 “사진으로 조선족 역사를 기록하겠다”는 생각이 컸단다. “중국 생활 첫해 하얼빈의 버스에서 만난 조선족 아이가 저한테 반말로 ‘한국에서 왔어?’라고 묻더군요. 그때 충격을 받았어요. 아이가 조선족 정체성을 갖도록 도울 방법을 생각하다 사진을 모아 동포의 역사를 기록하자고 생각했죠. 그때부터 이민사 등 조선족 역사 공부도 열심히 했죠.”

사진은 아는 교수나 사진가의 소개장을 받아 조선족 가정과 사진관을 찾아다니며 모았단다. “여관에 1박2일 머물며 동포 집을 찾아, 먼저 그분이 살아온 역사를 듣고 사진도 찍어 드린 뒤에 옛 사진을 구할 수 있는지 부탁했죠. 때로는 돈을 주고 사기도 했고요.”

<연변문화대혁명>에는 그가 조선족 사진가인 고 황영림 작가에게 자동차 한 대값을 치르고 구한 사진들이 담겼단다. “2006년 작고한 황 선생을 1996년에 처음 뵙고 설득했을 때는 고개를 저으시더군요. 그러다 5~6년 뒤 황 선생이 저를 부르더니 ‘내가 죽은 뒤 출간하라’는 조건으로 사진을 내어주셨죠. 거기에는 마오쩌둥 조카인 마오위안신이 문화대혁명 당시 옌볜에서 활동하던 모습도 있어요. 그는 ‘조선족은 중국인이 아니다’며 조선족을 불신했던 사람이죠.”

일본인 아내와 1993년 하얼빈행
조선족 동포와 사진가 찾아 설득
2007년까지 사진 4만~5만장 수집

지난해 시리즈 첫 권 ‘동주의 시절’ 내
최근 ‘사진관 사진사’ 초점 두번째 책
“사진을 모으면 생활사 역사책 되죠”

그는 이번 책에는 사진관에서 구한 사진이 많다고 했다. “사실 제가 모은 사진 대부분이 사진관 사진사 작품입니다. 회갑이나 결혼 같은 기념일에 대부분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잖아요. 사진사들은 사회적으로 크게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일 때문에 조선족의 기억을 가장 많이 기록한 분들이죠.”

그는 <기억의 기록>에 나오는 ‘사진사들의 이야기’의 대표적인 예로 흑백 인화지에 유화물감으로 색을 입힌 ‘채색사진’을 들었다. 중국은 컬러 사진이 늦게 보급되면서 1970년대까지 채색사진이 유행했단다. “컬러나 흑백이나 사진사들의 가장 큰 고민은 사진의 탈색이었죠. 당시 사진사들이 그림 그리는 사람을 사서 색을 입힌 것은 사진의 원모습이 영원히 갈 수 있도록 고심한 흔적이죠. 당시 중국 사진관은 색 입히는 솜씨가 뛰어나 돈 많은 대만인들도 주문을 많이 했죠.”

대학 시절인 82년부터 지금껏 매년 청학동 사람들 사진도 찍는 그는 “사진을 모으면 생활사 역사책이 된다”는 생각이다. 일본어로 <중국 조선족을 살다-구만주의 기억>(2011, 이와나미서점)을 냈고 일본 <아사히 신문>에 10년째 ‘한국의 베스트셀러’ 칼럼을 연재 중인 그의 아내도 <기억의 기록> 후기에서 “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념사진은 추억일 뿐이지만, 많이 모아서 정리해보면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고 썼다. “남에게 아무 의미 없었던 개인의 기념사진이 역사를 증명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류 작가는 이번 책 중 사진의 역사성을 잘 보여주는 예로 문화대혁명 시절 기념사진을 들었다. “당시 기념사진에 나오는 재중동포를 보면 꼭 마오쩌둥 어록집이 손에 들려 있더군요. 결혼기념 사진에도요. 태양 빛에 휩싸인 마오쩌둥 얼굴도 배경에 보이고요. (그런 설정은) 사진사가 그렇게 찍지 않으면 안 되는 ‘유행’이었다고 볼 수 있죠.”

문화대혁명 시기 마오쩌둥 어록을 손에 들고 결혼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조선족 부부. 류은규 작가 제공
조선족 사진가 김영걸씨가 자신의 사진에 유화물감으로 색을 입혀 제작한 채색 사진. 김 사진가는 류은규 작가의 사진 수집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류은규 사진가 제공

그는 간도의 사진관 사진에는 유독 헤어짐에 대한 내용이 많다고도 했다. “전쟁터로 가기 전 이별하는 곳에는 늘 사진관이 불야성이었어요. 부산도 그랬고 청일전쟁 때 일본군이 집결한 히로시마도 마찬가지죠. 병사들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자신의 모습을 남기려고 했기 때문이죠.” 그의 아내도 책 후기에 이렇게 썼다. “조선에서 이민이 몰려든 간도에 일찍부터 사진관이 들어선 이유는 늘 이별과 가까이 있었던 그들의 삶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류 작가는 올해 처음으로 인천 화도진도서관에서 인천 시민 대상으로 ‘길 위의 인문학-사진으로 기록하는 아카이빙’ 강의를 했다. 이 강좌 수강생 9명이 찍거나 모은 사진으로 자신의 생애를 보여주는 전시도 내달 9일까지 인천관동갤러리에서 하고 있다. “수강생 100명의 전시를 모으면 인천의 역사가 되겠죠. 3년 뒤에는 전시 내용으로 책도 내려고요.”

한국인과 일본인 부모를 둔 그의 아들(류명수)은 중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고 한국의 외고를 나와 일본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코스타리카 유엔평화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단다. “아들은 부모와 달리 어린 시절을 보낸 중국 정체성이 강합니다. 학업을 마친 뒤 엔지오 활동을 하고 싶어하죠.”

30년 전 잡지사 사진기자로 일하던 그는 “중국에 가겠다”는 아내의 뜻을 좇으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조선족 항일운동가에 대한 소설책을 내고 싶다고 아내가 말하더군요. 그 말에 바로 가자고 했죠. (아내가 쓰려는) 소설은 내년 쯤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조선족과 그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아내와 견해차는 없느냐는 질문에는 “우리 부부 모두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는 일치된 생각으로 작업하고 있다”고 답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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