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양면성 있어… 사안별 접근으로 국익 챙겨야" [긴급좌담회]
中, 양국관계 악화 책임을 韓에 전가… 내부 결속용
'차이나 포비아' 극복 안 하면 문제 계속 발생할 것
北 통제가 中에도 이익… 고위급 협의창구 개설 시급
새로운 30년을 만들어가야 할 한·중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지난해 수교 30년을 맞아 '상호 존중'을 약속했던 한중 관계는 올해 역대급 격랑을 만났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등 미국와 일본 중시의 '가치 외교'로 방향을 튼데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베팅' 발언도 가세하면서 한중 위기론이 불거졌다. 한중 관계는 한국과 중국만을 놓고 논하기 어려운 관계다. 미중 전략경쟁이라는 소용돌이를 겪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미국과 안보·경제 등 포괄적 동맹을 맺고 있는 한국이 미국에 더 가까워지려 하는 게 달갑지 않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는 우리로서는 북핵 문제를 방치하고 회피하는 중국이 못마땅하긴 마찬가지다. 중국과 세계는 '애증의 관계'다. 중국과 대립각을 세운 미국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지난 18일 중국을 방문한 데 이어 재닛 옐런 재무장관도 다음 달 중국 방문을 계획 중이다. 독일, 스페인, 프랑스 유럽 국가도 중국을 찾았고,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도 중국과 가까워지는 중이다. 국내에서도 대중국 무역적자가 커지며 경제에 비상이 걸렸고, 북한의 무력도발 등 안보에 있어서도 한중관계를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디지털타임스는 동북아미래협력포럼과 함께 지난 28일 디지털타임스 9층 대회의실에서 '한중 관계, 무엇을 해야 하나' 주제의 긴급 좌담회를 가졌다. 동북아미래협력포럼 회장인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 교수가 좌장을 맡았고, 박한진 중국경제관측연구소장, 전병곤 통일연구원 선임 연구위원, 김한권 국립외교원 중국연구센터 책임교수,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부 교수(한국세계지역학회 회장)가 참여했다. 해외 출장 관계로 주 교수는 서면으로 참여했다.[편집자주]
Q. 강준영= 윤석열 정부가 지난 수년간 지속된 사드 사태의 후유증을 극복하면서 시진핑 3기 체제의 중국과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보려는 순간 암초를 만났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야당 대표를 관저로 초청한 자리에서 한국 외교정책에 대한 불만을 사전에 철저히 계획된 '입장문' 형식으로 쏟아냈다. 미·중 갈등에서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나라는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는 협박까지 담겼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고 보는가.
◇김한권= 이 상황에서 관심있게 볼 것은 싱 대사의 개인적인 소신과 행동인지, 중국 중앙정부의 지침인지다. 아직 논쟁의 요인이 남아있지만, 중국의 한국에 대한 관리 정책의 강도가 강해지고 있다는 시각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한국이 미국으로 급격하게 가까워지는 것을 압박하려는 의지가 이전보다 높아지고 있다. 제 생각으로는 한국에서 중국의 이런 모습에 내부적으로 갈등을 노출한다면 향후 중국이 한국 관리 정책에서 한국을 흔들고 한국 내 갈등을 높이려 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대중국 정책은 내부에서 조금 이견이 있더라도 통일된 모습으로 대처하는 것이 필요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박한진= 싱 대사의 발언은 개인 차원에서 나온 얘기라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 중앙정부와의 교감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전반적으로 중국 상황을 보면 싱 대사의 발언 전후 중국 기관으로부터 나오는 발언이 맥락이 같다. 과거 중국이 한국에 대해 한미동맹의 현실적 존재를 인정한다고 했었는데 이번 상황을 보면 최근 한미동맹의 급속한 진전을 보면서 중국이 대단히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게 거칠게 표출된 것 같다.
◇전병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중국이 한중관계가 이렇게 악화된 게 한국 책임이라고 전가한 것은 중국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 또 야당 대표를 초청해 얘기한 것을 봤을 때 여론전의 성격도 있다. 한국 내부를 흔들어 분열을 통해 견제하는 방법을 쓴 것인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재우= 싱 대사의 발언은 우리나라의 외교 주권과 국민의 존엄을 폄훼한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우리가 우리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독립적으로, 자주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한 것을 비판하는 건 중국이 견지하는 내정불간섭 원칙에 반한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중국의 영향력이 한국 사회에 잘 먹히는 데 대한 자신감이다. 우리 스스로 '차이나 포비아'(중국 공포증)를 극복하지 않으면 문제는 계속 발생될 수 있다.
Q. 강준영= 외교관인 대사가 주재국 외교정책에 개입하려는 인상을 주려고 한 것이 문제다. 그 부분은 분명히 짚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한중 관계가 좋지 않은데 국민적 반감을 갖게 하고 국민 정서를 더 악화시켰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한중 관계가 이렇게 된 근본적인 문제는 어디 있다고 보는가.
◇주재우 = 근본적인 문제는 중국이 사회주의 노선, 즉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의 길로 천명한데 있다. 중국의 공세적이고 공격적이며 고압적인 외교적 언행이 이때부터 시작됐다.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감 아래 중국이 체제경쟁으로 세계정세와 국제관계를 인식하고 판단하면서, 가치외교를 표방하고 한미동맹의 강화를 추구하는 우리나라에 적대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게 됐다.
◇박한진=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중국은 과거 양적 성장을 위해 한국을 필요로 했으나 지금은 질적 성장을 하고자 한국이 필요해진 과도기를 겪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과거에는 중국을 가공·생산 기지로 삼았던 것과 달리 이제는 기초 원료 공급기지로의 필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이런 새로운 전환기의 불균형 상태에서 양국이 경제적 공통분모를 찾기는 힘들다. 어떤 쟁점이 터졌을 때 갈등과 충동 요인이 될 수 있는 게 많다. 일정 기간은 정치적 문제, 경제적 문제로 상당히 혼란스러운 시기가 지속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전병곤= 한국과 중국의 역시 인식, 체제 이념의 차이라는 구조적 요인을 들 수 있다. 한국에 있어 한미동맹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에 중요한 전략자산이지만, 중국은 한미동맹을 자국 견제수단으로 파악하고 있다. 북한 요인도 마찬가지다. 북핵을 위협으로 인식하는 우리와 달리 중국은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중시하며 현상유지를 선호한다.
Q. 강준영= 대외적으로 미중 경쟁 하에서 한국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국제사회는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에서 '디리스킹'(위기관리)으로 옮겨갔다가 다시 '리커플링'(재동조화) 이야기도 나온다. 미국과 중국은 악수하려고 하는데 우리나라만 세게 나가는 양상이 됐다.
◇김한권= 현재 국제적 정세는 미국과 중국의 진영화가 상당히 구체화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최근 미국과 중국이 대화를 재개한 국면을 한국이 매우 주의깊게 살펴봐야 한다. 미국뿐 아니라 미국의 동맹국, 파트너 국가 대부분이 지난해 말부터 중국을 방문하거나 중국과의 대화를 확대하고,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이 더 긴장해야 하는 것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중국 방문 가능성이다. 기시다 총리는 최근 언론에 "중국과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나 자신을 포함해 모든 레벨에서 긴밀히 의사소통하겠다"고 중국행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과 파트너국 중 유일하게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나라가 될 수 있다. 외교적으로 깊은 고민을 해야 할 때다. 다만, 개인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대화 국면은 단기적인 '전술적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동맹국과 파트너국이 중국과의 경제적 이익을 취할 수 있도록 수용하면서 단기적으로는 화해와 협력 국면을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과 종합국력의 차이를 벌리겠다는 미국의 정책 방향성은 변화가 없다.
◇박한진=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중국을 다녀간 뒤 양국의 분위기가 일부 완화된 것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바뀐 것은 없다. 미국의 대중국 압박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 행정부보다 미 의회 주도로 추진되는 대만관계 입법이나 중국 관계 입법이 더 강화되고 있다. 올해 연말쯤 미중 지도자들의 만남이 이뤄진다면 추가적인 완화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게 없다면 다시 강 대 강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한국이 고려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 중국의 지방정부는 한국과의 교류 활성화를 희망한다. 실제로 올들어 중소 도시 시장급 사절단이 방한해 경제협력 MOU(양해각서) 등을 체결한 사례가 있다. 또 한가지, 앞으로 중국의 자본시장을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김한권= 미국과 중국이 대화하고 협력을 확대할 때 이런 흐름에 한국도 합류하면서 중국에 관한 기본 입장을 재정립해야 한다. 첫번째는 한반도 정세와 북한의 비핵화를 분리해 중국과 얘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국은 미중 경쟁 구도 상 한반도 비핵화에 동의한다고 해도 북한의 가치를 우선하기 때문에 비핵화 압박이나 북한 체제를 흔드는 것에는 조심스러워 한다. 그럼에도 김정은 체제가 계속 핵·미사일 위협을 높여가면서 한미동맹을 강화할 명분을 주는 것을 손실로 보고 있다. 한반도 정세 안정이라는 측면에서 한중이 이익을 공유하고 비핵화와 분리해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접근을 한다면, 한중이 협력하는 부분을 확대하는 것도 가능하다.
Q. 강준영= 한중 관계에는 북한이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북한은 7차 핵실험을 마지막 카드로 남겨두고 있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 중국과 어떻게 풀어가는 게 좋겠는가.
◇전병곤= 우선 북한과 중국 관계의 이중성과 양면성을 주시해야 한다. 중국은 북한 체제가 유지되고 북중이 긴밀하게 움직이는 게 좋지만, 사실 북한은 중국 측의 말을 잘 안듣는다. 북한의 타임테이블에 따라 핵실험도 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북한 입장에서 최상의 협상 대상국은 미국이다. 미국이 대북제재를 해결할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니 차선책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견딜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북중 관계의 이중성 찾을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북한이 계속 한반도 긴장을 조성하고,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도 하려고 하면서 한미동맹이 강화되고, 한미일 안보협력이 확대돼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는 우려가 있다. 중국으로서는 북한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차원에서 우리가 중국과 대화를 해야 한다. 우선 한반도 정세가 불안정한 것보다 안정화할 수 있도록 남북 대화가 이뤄져야 하고, 인도적 차원에서의 교류 협력을 추진한다면 중국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부분이다.
Q. 강준영= 한국이 내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이 됐다. 중국은 지금까지 안보리에서 대북 관련 거부권을 반복해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비상임이사국으로서 대북 제재 강화 등을 이야기하면 한중 간 충돌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있다. 한중 관계 해법의 실마리를 어떻게 찾을지 제언한다면.
◇주재우= 대중 외교는 미중 경쟁이 진행되는 동안, 그리고 시진핑의 중국이 국제관계를 체제경쟁으로 인식하는 동안 상당히 정교하게 진행해야 한다. 특히 세계정세의 흐름을 예의주시하며 이의 변화에 우리도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 미중 관계는 양국의 이익 요구에 따라 협력, 경쟁, 갈등 등 3가지 속성을 가지고 움직인다. 즉, 양국이 당면한 현안의 이익이 협력을 요구하면 협력한다는 의미다. 그에 따라 우선순위도 우리 국익에 얼마만큼 도움이 될지 그때 그때 바뀔 수 있다. 예를 들어 미 의회가 이번 118기 회기에 중국 관련 법안을 상정한 게 6월 초 기준 194개다. 미국의 법안이 모두 우리 국익에 부합하진 않지만, 우리 국익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도 분명히 있다. 정세판단을 사실에 근거해 현실적으로, 이성적으로 명확하고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김한권= 한중 양자 관계에서 벗어나 국제정세와 지역구도를 봐야 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현 정세를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로 보고 있지만, 한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중국이 과연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도를 원하는가 하는 점이다. 미국은 이 구도를 활용하려 하지만 중국에는 전략적 부담이 된다. 중국은 유럽 주요국가와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있는데 러시아와 협력하는 삼각구도가 되면 유럽은 중국을 러시아 지원국으로 보고 우크라이나 전쟁 사태에 연루될 수도 있다. 한국이 이런 중국 입장을 이해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면서 중국과 소통해야 한다. 이 삼각구도가 동북아 신냉전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한중이 협력해야 한다. 일본이 추진하는 북일 회담에서 한국이 건설적 역할을 한다면 그 사이에서 한중 협력을 추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박한진= 경제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한중 관계도 과거의 수준은 아니라도 전환기적 불균형 상태를 개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 경제적 요인이 북한에 대한 중국의 관심도를 상쇄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전병곤= 한미동맹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전략 자산이지만 중국을 배제하고 한반도 평화나 경제 성장, 통일, 북한의 비핵화 달성이 가능할까? 쉽지 않다고 본다. 한중 갈등을 방치하지 말고 선제적으로 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 고위층 협의 창구를 열어 다층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중국은 현재 한국에 미중 간 균형 등 중국 중심으로만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안보를 양보할 수는 없다. 그런 것들을 소통 채널을 통해 지속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강준영= 결론 삼아 정리하면 미중 갈등이 극과 극으로 치닫는 갈등이 아니라 경쟁과 협력이 공존하는 양면성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미중 사이에서 어느 한 쪽으로 선명하게 기울게 아니라 분야별로 접근해야 한다. 특히 이제는 한국과 중국은 그동안 미뤄놨던 문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한중은 갈등이 생기면 아예 대화를 하지 않고 억측을 한다. 계속 만나지 않고 피하는 것은 안된다. 자꾸 교류해야 하는데 얘기해봐야 결론이 나질 않으니 아예 미뤄놓으려 한다. 지금은 중국과 새로운 한중관계를 정립해 나가야 하는 시기다.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을 상호 인정하고 그 바탕에서 가능한 것부터 풀어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한미동맹이 중국을 견제대상으로 세우는 게 아니라는 점을 중국에 이해시키고, 윤석열 정부나 중국도 한중관계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말고 훨씬 복잡한 국제정세를 사안별로 파악해 접근해야 한다.
정리=김미경기자 the13ook@dt.co.kr
사진=박동욱기자 fuf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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