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피부색을 가진 아름다운 흑인 공주는 없는가? [김선지의 뜻밖의 미술사]

2023. 6. 2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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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안드로메다와 흑인 인어공주
프레더릭 레이턴, '안드로메다와 페르세우스', 1891년, 235 x 129.2㎝, 워커 아트 갤러리, 영국 리버풀

2023년 디즈니 실사판 영화 '인어공주'가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미국을 제외한 한국과 중국, 유럽 등 대부분의 지역에서 흥행에도 참패했다고 한다. 작품성이니 여주인공 할리 베일리의 연기력이니 표면적으로 내세운 혹평의 이유는 많지만, 논란의 핵심은 사람들의 미적 기준에 맞지 않은 외모를 가진 흑인 여성의 캐스팅이다.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에 입각한 '블랙워싱(blackwashing, 원래 흑인이 아닌 캐릭터를 흑인으로 바꾸는 것)'에 집착해 전통적인 백인 프린세스의 이미지에 어긋나는 배우를 무리하게 썼다는 것이다. SNS에서는 '#나의에리얼이아냐(#NotMyAriel)'라는 해시태그 운동까지 일어났다. 반면, 흑인이 인어공주 역을 맡을 수 없다는 생각은 인종차별주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반박도 만만치 않다.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도 탄생했고 전 세계적으로 여성 대통령과 총리도 숱하게 나왔다. 흑인 공주의 탄생을 두고는 세계가 아직 진통 중이다. 푸른 눈, 금발, 흰 피부의 공주 이미지는 미술사에서도 아주 친숙하다. 아프리카 태생의 안드로메다까지도 백인으로 '화이트워싱(whitewashing, 비백인 캐릭터를 백인으로 캐스팅하는 것)'되어 그려졌다.

흑인 안드로메다

프레더릭 레이턴(Frederic Leighton)은 19세기 영국의 화가이자 조각가로, 고대 신화와 성서 이야기, 역사를 주제로 하여 아카데믹한 스타일로 작업했다. 그의 작품 '안드로메다와 페르세우스'는 페르세우스가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를 타고 후광에 둘러싸인 채 안드로메다의 머리 위로 날아다니며, 바다 괴물 케토스를 향해 화살을 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다. 섬뜩한 괴물의 검은 날개 안에 갇혀 공포에 떨면서 절박한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안드로메다의 눈부시게 흰 나신과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린 금발이 캔버스의 중심을 차지하며 관람자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영국 미술사학자 엘리자베스 맥그래스(Elizabeth McGrath)는 '검은 안드로메다(The Black Andromeda)'라는 글에서, 고대 그리스 작가들은 한결같이 안드로메다를 에티오피아 공주로 언급했으며, 특히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는 안드로메다를 검은색, 혹은 갈색 피부를 가진 아프리카 공주로 명시했다고 주장한다. 에티오피아(Ethiopia)는 '검게 그을린 얼굴'의 사람들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aithiops'에서 유래한 것으로, 오늘날 아프리카에 있는 그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들을 통칭하는 말이었다. 고대 그리스인은 북아프리카의 이집트 문명이나 누비아에 대해 매우 높이 평가했다. 수단 누비아 지방에서 고대 문명을 이룩했던 누비아인은 기원전 8세기경, 이집트를 침공해 이집트 25왕조를 세워 60년 동안 통치할 정도로 강력했다. 그리스인들은 누비아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크고 잘생겼으며' 매우 경건해서 신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기록했다. 그 옛날엔 검은 피부색을 가진 흑인 공주 역시 아주 아름다운 여성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맥그래스에 의하면, 안드로메다가 흑인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 흑인은 서양 미술에서 철저히 지워졌다. 사실, 흑인 여성을 백인으로 표현한 '화이트워싱'은 서양 미술과 문학에서 너무나 흔한 현상이었다. 시바의 여왕, 안드로메다와 같은 인물들의 인종적 혈통은 완전히 간과되었다. 서구의 예술가들에게 흑인과 아름다움은 이질적인 것이었다.

흑인 인어공주

흑인 인어공주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수없이 쏟아진 부정적인 영화 후기 중에서도 '아이가 흑인 에리얼을 보곤 엄청 울었다'며 분노하는 부모의 반응은 정말 이상했다. 아이 핑계를 대면서 불만을 토로하기 전에, 편견이 없이 순수해야 할 어린이의 정신 속에 벌써 백인 공주의 이미지가 자리 잡았다는 것에 대해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또, '어린 시절 내내 쭉 알고 지낸 친숙한 에리얼을 간직하고 싶다며 실망했다'는 이들도 있다. 미국의 흑인 노예제와 흑백 차별에 분노하던 그 사람들의 마음 깊숙이 어릴 적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하얀 공주에 대한 그리움이 숨겨져 있었다니…

겉으로는, 이른바 '올바른 의식'을 갖지 못한 인종주의자, 외모지상주의자로 취급될까 봐 노골적으로 말하지 못하지만, 사실은 할리 베일리가 자신들이 즉자적으로 느끼는 예쁨의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이 불편한 것이다. 그래도 시대에 뒤처진 의식을 가진 사람으로 몰리는 건 원치 않는다. 그래서 할리 베일리가 흑인이라서가 아니라 원작의 인어공주 이미지와 어긋나고 연기도 못해 캐릭터를 살리지 못했기 때문에 싫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 평론가들은 그녀의 연기력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또, 원작은 얼마든지 각색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원래 흑인 공주였던 안드로메다도 서양 미술사에서는 완전히 백인으로 리메이크되었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와 1989년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가 설령 백인이었다 하더라도 흑인 공주로 각색되는 게 뭐가 문제인가.

2023년 '인어공주'에 대한 비판은 에리얼의 인종이나 외모가 아니라, 여전히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습니다'라는 진부한 로맨스 서사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PC 피로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PC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도 많다. 그러나 그 부정적 결과 중 하나가 도널드 트럼프의 2016년 대선 승리다. 그의 재임 동안 미국사회는 인종 갈등과 폭력, 혐오와 차별이 만연했고 권력의 사유화와 법치의 파괴로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후퇴했다. 다소 위선적인 측면이 있을지라도, PC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 인종차별, 성차별을 비롯한 모든 차별적 감정을 가감 없이 표출하는 혐오와 폭력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보루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즈니도 새로운 시대에 맞는 진취적인 공주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전통적인 공주 영화는 이제 잘 안 팔리는 퇴물이 된 것이다. 사실 디즈니의 콘텐츠는 오랫동안 성차별, 인종주의, 값싼 감상주의의 종합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차별을 배제하고 다양성을 지향하는 디즈니식 '올바른' 이야기는 올바름을 추구해서라기보다는 철저하게 상업적 수익을 노린 자본주의 논리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이제껏 고수해 온 백인 중심의 콘텐츠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흑인, 아시아인, 히스패닉 등 여러 인종을 타깃으로 한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려는 것이다. 흑인 공주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고, 관객의 반발이 시대적 흐름을 되돌리지는 못할 것이다.

유독 한국과 중국에서 흥행에 참패했다는 사실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역시 다인종,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서로 이질적인 배경을 가진 개인들끼리 화합하고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흑인 인어공주도 익숙해지면 그리 거부감 없이 보게 되지 않을까?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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