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세 칼럼] 부모 경제력이 `공정입시` 저해 안 되려면

2023. 6. 2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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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

우리나라의 경우 역대 정부에서 학벌 위주 사회를 타파하기위해 학업 평준화를 추진하고 대학입시 제도를 수차례 개편했지만 대학입시 과열경쟁은 사라지지않고 있다. 고교 입시제 폐지로 지역별 명문고가 사라진 이후 오히려 소득과 재산이 많은 부유층 자제의 명문대 입학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 지방의 명문고나 지방국립대가 퇴조하고 서울의 강남처럼 잘사는 지역 학군의 명문대 진학 비율이 높아지고, 서울과 지방간의 학력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지역간 학력 격차는 종국적으로 지역간 경제력 격차를 심화시켜 국토 균형발전을 저해하고 특정 지역의 집값 상승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이처럼 학벌 지상주의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입시 제도의 불공정은 우리 사회 곳곳에 불공정과 불평등을 잉태시키고 자식에게까지 대물림시킬 소지가 있다. 과거 국민소득 1만 달러 이하 시대에 청춘을 보낸 지금의 60대 이상의 경우 가난한 집안 출신의 명문대 진학 비율이 높았고, 이들이 사회 곳곳에 진출해서 성공을 거두었다. 소위 '개천에서 용 나는' 그런 세상이었다.

반면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사는 지금의 젊은 세대는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운 세상이 되고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가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은 교육부 업무보고 과정에서 현행 대학 입시제도의 불공정 문제를 지적하면서 공교육을 충실히 받으면 수능 문제를 풀수있도록 대학입시문제 출제방식을 개선할 것을 지시했다.

공교육 과정을 충실히 이수해도 사교육 없이는 풀기 어려운 소위 킬러 문항들을 수능 출제나 모의평가 시험 출제에서 배제시켜 부모와 학생들의 사교육 부담을 덜어주고 부모의 재산이나 능력이 자녀의 공정한 입시경쟁을 저해하지 않도록 하기위함일 것이다.

학벌 지상주의가 만연하는 우리 사회에 대학 입학은 사회 출발부터 승자와 패자를 결정지을만큼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사안이다. 따라서 입시 공정성이 중요한 이슈가 될수 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대통령의 지시로 교육부가 이번 수능부터 킬러 문항 출제를 배제하기로 하는 등 사교육 의존도를 낮추고 공교육 정상화를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자 그동안 사교육 시장의 고속 성장으로 수혜를 누려운 학원들과 일타강사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특히 연간 수백억원을 버는 일부 유명 일타강사들이 킬러 문항 배제 방침에 입시 혼란 초래나 변별력 약화를 이유로 반발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벗어난 주장으로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지난해 우리나라 사교육비 지출 규모는 역대 최고치인 26조원으로, 학생 1인당 월 41만원에 해당된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지역 학원의 과목당 수강 금액만 월 수십만원에 달하므로 실제 자녀 한명당 사교육비는 월 100만원을 상회할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우리나라 출산율이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0.78명이라는 초저출산율을 기록한 데는 사교육비 부담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와 달리 지금의 젊은 세대는 자신의 자녀를 남과의 경쟁에서 뒤지지않게 금지옥엽으로 키우려고 한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이 출산을 기피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에 사교육은 공교육 과정에서 뒤쳐지는 일부 학생들을 보충하는 역할을 담당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공교육에서 가르치지 않는 수능 문제를 가르쳐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 학생들이 사교육에 의존할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이번에 교육부가 발표한 22개 킬러 문항이라 부르는 수능 문제는 사교육 도움 없이는 풀기 어려운 문제로 출제 의도를 의심할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사교육 시장의 이권 카르텔에 대한 의구심을 끊임없이 제기해 왔다.

야당이나 일부 진보 성향 교육감들은 윤 대통령의 입시 공정 지시를 '혼란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입만 열면 공교육 정상화와 학업 평준화, 공정을 줄기차게 주장해온 이들이 왜 지난 정권 5년간 공교육이 무너지고 사교육비 부담으로 중산·서민층의 허리가 휘어지고, 부모 경제력이 취약한 자녀의 입시 공정성이 침해받는데도 이를 방치했는지 의문이 든다. 이에 대해 먼저 책임감을 느껴야할 것이다.

요즘 MZ세대는 유난히 공정과 정의에 민감하다. 공정과 정의에 대한 잣대가 기성세대보다 엄격한 이유는 저성장 시대를 맞아 갈수록 높아가는 취업 문턱과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통상적으로 공정의 문제는 출발선부터 공정한가, 과정이 공정한가, 결과가 공정한가의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공분을 불러온 공정 문제는 주로 과정 상의 공정 문제였다. 예를 들어 대학 입시나 채용 과정에서 '아빠 찬스'나 불법·편법을 동원한 경우다. 출발선부터 공정한가의 문제는 흔히 금수저, 흙수저로 표현되며 타고난 운명으로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

하지만 출발선의 불공정이 결과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면 정부는 불공정을 시정하기 위해 제도와 관행을 개선할 책임이 있다. 과거 정부의 학업 평준화 정책이나 입시제도 개편이 당시 좋은 취지로 추진되었더라도 결과적으로 공교육을 약화시키고 사교육 의존도를 높여 입시경쟁의 공정성을 저해했다면 공정사회 구현을 위해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 '스카이캐슬'이나 수험생을 상대로 수백억원을 버는 일타강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사회는 결코 정상적이지도 행복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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