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도…청주도…이 男子 손을 거치면 신의 물방울
한국 최초 마스터 소믈리에
김경문 KMS임포츠 대표
전 세계의 와인 소믈리에들이 꿈꾸는 자격증이 있다. 업계에서 최고 난이도를 자랑하는 ‘마스터 소믈리에’. 와인과 음식의 마리아주(궁합)를 고려한 페어링(적합한 와인을 서빙하는 서비스)을 빈틈 없이 마스터해야 하는 이 자격증을 보유한 사람은 전 세계에서 3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와인 고시’라고 불리는 이유다.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김경문 KMS임포츠(우리술) 대표(40)는 2016년 한국인 최초로 마스터 소믈리에에 등극했다. 이후 뉴욕의 미쉐린 레스토랑들에 와인 페어링을 컨설팅해주고 있다. 각 국가의 음식과 특색을 완벽하게 익혀 최상의 와인을 선정해야 하는 그는 요즘 뉴욕 레스토랑들에 와인 대신 한국 전통주를 권한다. 그의 손엔 뉴요커들이 사랑하는 버건디(부르고뉴 와인) 대신 지역 양조장에서 빚은 우리 술이 들려 있다. 세계에서 가장 따기 어려운 와인 자격증을 딴 그가 ‘우리 술 홍보대사’가 된 사연은 뭘까. 황금빛 마스터 소믈리에 배지를 가슴에 단 그를 뉴욕 맨해튼에서 만났다.
세계 1위 요리 학교인 뉴욕 CIA를 졸업했다. 셰프 대신 와인 소믈리에가 된 계기가 궁금하다.
대기업에서 해외 출장이 잦은 아버지와 식품과학 분야 교수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자연스럽게 해외 생활과 식문화에 관심을 갖게 돼 CIA에 진학했다. 조리 실습도 즐거웠지만, 남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과목인 와인 수업이 가장 적성에 맞았다. 음식에 좋은 와인과 서비스가 더해질 때 훨씬 다채로운 경험이 탄생한다는 사실에 매료됐다. 졸업 시험에서 전체 클래스 1등을 했고, 이후 뉴욕과 영국의 와인 전문 교육기관에서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20대에는 글로벌 와인 전문지인 와인앤드스프릿 매거진에서 시음 어시스턴트(보조원)로도 활동했다. 월급은 거의 없었지만, 시음회마다 50여 종의 와인을 마셔보고 경험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테이블에 앉은 저명한 와인 전문가들 옆에서 블라인드 테스트용 와인을 와인잔에 따르며 몰래 소믈리에의 꿈을 키웠다.
마스터 소믈리에는 전 세계적으로 3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어떤 자격증인가.
‘마스터 소믈리에’는 공인 소믈리에 시험 4단계를 모두 통과하면 영국마스터소믈리에협회에서 주는 자격증이다. 이론과 시음, 서비스 등 세 가지 파트를 모두 마스터하지 않으면 통과하기 어렵다. 어떤 나라의 음식이 문제로 나올지 알 수 없고 제시되는 고객의 국적, 스타일과 상황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전 세계 식재료와 식문화에 대해 완벽히 알아야 한다. “스페인 음식을 먹고 싶은데, 코스마다 잘 어울리는 스페인 와인을 지역이 겹치지 않게 페어링해 달라”는 식의 까다로운 요구에 응해야 한다. 심사자가 일부러 곤란한 상황을 만들거나 화를 내 대처 능력도 본다. 매년 최종 합격자가 한 손가락에 꼽는 이유다.
합격 과정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2012년 3단계(어드밴스드 소믈리에)를 통과했지만, 마스터 소믈리에의 벽은 높았다. 마스터 소믈리에 20~30명이 직접 대면 심사를 보기 때문에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2014년, 2015년 두 차례 낙방한 끝에 2016년 세 번째 도전에 합격했다. 한국 국적으로 최초로 받게 돼 영광이었다.
마스터 소믈리에 합격 이후 한식 파인다이닝에서 많은 활동을 해 왔다.
CIA 동기인 임정식 셰프와 2009년 정식당, 2011년 뉴욕 정식당(JUNGSIK)을 함께 준비해 차례로 오픈했다. 당시 뉴욕에서 한식은 한인들이 찾는 고깃집이나 국밥집 위주였다. 정식당이 미쉐린 2스타를 거머쥐면서 현지 한식 파인다이닝의 첫 성공 사례가 됐다. 한국의 전통 음식을 고급스럽게 풀어낸 다이닝과 와인의 조화는 외국인에게는 새롭게 받아들여졌고, 자연스레 입소문을 탔다.
소믈리에로서 보장된 미래를 두고 전통주 업계로 몸담게 됐는데.
정식당에서 서비스하던 중 “고급 한식에 어울리는 한국 술을 페어링해 달라”는 외국인 고객의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머리를 세게 얻어 맞은 듯했다. 와인은 물론 식전주, 칵테일, 커피까지 섭렵해야 하는 시험을 통과했지만, 전통주에 대한 지식은 전무했다. 그 길로 2019년부터 한국 양조장을 돌며 공부했다. 고급 한식에 제대로 된 우리 술을 권하고 싶었다.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드는 전통주 중 서울의 밤, 풍정사계, 붉은 원숭이, 우렁이쌀, 미르, 화양 등 고급 한식에 어울리고 스토리가 있는 술을 엄선했다. 수입 업체인 KMS임포트를 설립해 미국으로 정식 유통을 시작했다. 가수 박재범 씨가 고급 소주인 원소주를 론칭했을 때 함께 우리 술을 알리기 위해 CNN에도 출연했다.
우리 술이 생소한 현지에서도 전통주 수요가 있나.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현지 한국 술은 소주 외엔 드물었다. 고급 한식 다이닝도 와인과 위스키, 사케 등으로 채워졌다. 2020년 2월 첫 컨테이너를 뉴욕으로 들여오자 관심은 뜨거웠고 금세 ‘완판’됐다. 그러나 3월부터 코로나로 도시가 봉쇄되면서 난관이 닥쳤다. 애써 들여온 전통 술을 창고에서 썩혀야 했다. 최근엔 다행히 다시 주문량이 늘기 시작해 뉴욕 내 150곳 정도의 식당에서 전통주를 취급하고 있다. 한인타운은 물론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도 ‘러브콜’을 받고 있다. K컬처에 관심이 많은 젊은 외국인들은 문화 체험을 위해 한인타운을 찾고, 스토리가 있는 한국의 전통주를 마신다.
‘우리 술 전도사’로서 아쉬운 점은 없나.
미국인들은 ‘아시아의 고급 술’이라 하면 아직도 으레 사케를 떠올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누룩을 발효시켜 깊은 맛이 나는 탁주도 있고, 맑지만 향이 진한 청주도 있다. 외국인들은 밥과 반찬을 곁들여 먹는 한국의 식문화를 가장 신기해 하는데, 음식마다 조화로운 페어링도 가능하다. 그런데 한국인들조차 ‘몇천원이면 먹을 막걸리를 왜 비싸게 마셔야 하느냐’는 인식을 갖고 있다. 와인은 10만원, 100만원이어도 사지만 전통주는 3만~5만원짜리도 비싸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이 먼저 전통주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우리의 문화를 담은 특별한 술이라고 생각했으면 한다.
한국 내 규제 탓에 들여오기 어려운 술도 많다. 발효주 중엔 보관만 잘하면 와인처럼 장기 숙성이 가능하고 더 깊은 맛을 낼 수 있는 제품도 많다. 그러나 6개월 이상 숙성시키면서도 병에 넣어 포장하는 순간 받아드는 유통기한이 대부분 1개월 정도다. 이런 이유로 빛을 발하지 못하는 전통주가 있어 아쉽다.
앞으로의 포부가 있다면.
‘데킬라’라는 멕시코의 술이 누구나 말하면 다 아는 술이 됐듯이 한국의 술이 누구나 즐겨 찾는 하나의 장르가 됐으면 한다. 현지에서는 유기농 포도에 인위적인 공정을 가미하지 않고 만드는 내추럴 와인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제조하는 방식에 따라 병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유니크한 술이 인기다. 한국의 누룩으로 만드는 술에서 나는 맛은 그런 내추럴 와인조차 따라할 수 없는 독특한 맛이다. 누구나 오래 즐길 수 있는 우리 술을 발굴하고, 알리고 싶다. 유통 과정에서 오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현지에서 전통주를 직접 제조, 생산하고 공급할 수 있는 공장을 짓는 것도 목표다.
뉴욕=정소람 특파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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