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300명 이상 한번에 늘릴듯 … 대학 신설은 검토 안해

유주연 기자(avril419@mk.co.kr), 심희진 기자(edge@mk.co.kr), 김지희 기자(kim.jeehee@mk.co.kr) 2023. 6. 2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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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지는 필수의료 ◆

필수의료 공백이 의료계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급부상한 가운데 정부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의대 입학 정원을 단계적으로 늘리기보다 한 번에 대폭 증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증원 방식은 공공의대 등 신규 의대 설립이 아닌 기존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정부는 2025학년도부터 의대 입학 정원을 늘려 뽑을 방침이다.

29일 정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는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의사 인력 확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필수의료가 붕괴된 가운데 의대 정원을 단계적으로 찔끔 늘려서는 문제 해결에 역부족이라는 판단에서다. 당장 의대 입학 정원을 늘려도 전문의가 배출되려면 최소 10년이 걸린다.

증원 규모로는 300명 이상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소한 2000년 의약분업 시기에 줄였던 정원(351명)을 복원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의료계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의대 입학 정원은 2006년 이후 18년째 3058명으로 묶여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현재 국내 의대 40곳 중 정원 50명 미만인 학교가 17곳(42.5%)이다. 울산대를 비롯해 성균관대, 가천대, 아주대 등의 입학 정원은 40명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정원이 늘어나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인프라스트럭처를 갖춘 의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산술적으로 의대 정원 50명 미만인 학교 17곳에서 정원을 60명씩만 늘린다고 가정하면, 약 1000명 증원도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정부가 기존 의대 정원 확대에 무게를 두는 것은 의료의 질을 담보하면서 안정적인 의사 인력 배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울산대 의대는 자체 시설뿐만 아니라 협력기관인 서울아산병원의 첨단 기자재를 활용할 수 있는데도 정원이 40명밖에 안 돼 낭비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병원업계 관계자는 "울산대는 지금보다 2~3배로 정원을 늘려도 충분히 수용 가능하다. 기존 의대 정원 확대로 가야 하는 이유"라며 "신설 의대가 효과적으로 기능하려면 관련 병원도 같이 지어야 하는데 이는 엄청난 국가적 낭비"라고 말했다.

의대가 병원과 함께 운영돼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과거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서남대 의대가 설립됐지만 수련 가능한 의료기관 부재 등 부실 운영으로 2018년 폐교된 사례가 있다. 의대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우수한 교수진과 수련·연구 환경이 갖춰져야 하는데, 의대 신설 후 단기간 연계 병원 설립 등 역량을 갖추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임재준 서울대병원 공공부원장은 "단순히 대학을 설립한다고 해서 양성 시스템이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존하는 의대를 중심으로 정원을 늘리는 것이 맞는다"고 말했다.

정원 확대로 늘어난 의료 인력이 본래 취지대로 필수의료에 유입되기 위해선 수가(정부보조금) 문제를 선제적으로 풀어야 한다. 의료계에선 필수의료만을 겨냥해 수가를 대폭 인상하지 않는 한 나머지 과목과 수익 격차는 메워지지 않고 인력 이탈을 막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수가를 올리면 전체 진료비가 높아지고 정부보조금이 많아져 병원이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지금은 필수의료 부문 수가가 낮아 병원 측은 필수의료 부문 투자를 기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필수의료 부문 수가를 올리면 이 분야에서 수익이 늘어나는 만큼 병원 측에서도 투자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수익이 늘어나면 의료진 처우를 개선할 수 있어 의사 부족 현상을 극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순섭 대한외과학회 총무이사는 "서울 소재 종합병원은 올해 1~4월 평일 오후 8시 이후와 주말, 공휴일에 진행된 수술 중 절반이 외과 담당이었다"며 "업무량이 상당한 반면 수가는 매우 낮아 외과계 가산율(20~30%)을 적용해도 원가보전율이 85%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외과 수가는 미국의 18.2%, 일본의 29.6%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의료 전문가들은 수가 인상과 더불어 전문의·교수진 채용을 대폭 늘리는 방안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수가가 오르면 병원이 직접적인 혜택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인력 보강으로 이어져야 한 사람에게 쏠리는 업무량을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민구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정부가 병원에 재정을 투입하고 병상에 따른 인력 기준을 만들어 경영진이 채용을 늘리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의료가 붕괴된 가운데 지역의사제 도입도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늘어나는 인력이 수도권에만 집중되면 현재 지역 간 의료 격차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임 부원장은 "지역인재선발전형을 늘려 졸업생 일부는 그 지역 필수의료 분야에서 일정 기간 일하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며 "그 대신 해당 지역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에 한해 의대 지원 자격을 주고 그들이 10년간 교육받는 데 드는 비용을 정부가 전액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필수의료행위에 한해선 형사처벌을 면제해줘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과목 특성상 사람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행위가 많다보니 의료분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이러한 점이 인력 이탈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국회에는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해 형사처벌을 감경해주는 법안이 발의돼 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법무부와 긴밀하게 논의해 봐야겠지만 필수의료를 살리려면 개인 과실이 아닌 한 처치 등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경감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주연 기자 / 심희진 기자 / 김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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