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기준, 37년만에 마련했지만…"韓만 있는 낡은 규제"
최다 출자·최고 직위 등 5가지
한기정 "경영 지배력 가장 중요"
외국인 총수 관련 규정은 빠져
美 국적 쿠팡 김범석 여전히 논란
공정거래위원회가 1986년 대기업집단 제도 도입 후 처음으로 동일인(총수) 판단·지정 기준을 명문화한다. 37년간 명시적 규정조차 없이 실무적으로 운영해 온 총수 판단 기준을 객관화해 기업들의 예측 가능성을 다소나마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기업집단 규제의 출발점이 되는 총수를 정확한 규정도 없이 그동안 ‘깜깜이 지정’해 왔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범석 쿠팡 의장 등 논란이 돼 온 외국인 총수 지정 근거도 이번에 제외됐다.
○다섯 가지 동일인 판단 기준 제시
공정위는 29일 ‘동일인 판단 기준 및 확인 절차에 관한 지침’ 제정안을 마련해 30일부터 다음달 20일까지 행정예고한다고 발표했다. 동일인은 상호출자제한, 일감몰아주기 등 규제가 적용되는 기업집단 범위를 판단하는 준거가 되는 개념이다. 누가 총수로 지정되느냐에 따라 각종 규제의 대상과 범위가 달라질 수 있어 기업으로선 매우 민감한 문제다. 공정위는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를 총수로 지정하고 지정자료 제출 의무 등을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기업 규제가 명확한 법적 정의조차 없이 운영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공정위는 이날 ①기업집단 최상단회사의 최다출자자 ②기업집단의 최고직위자 ③기업집단 경영에 대해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자 ④기업집단 내·외부적으로 대표자로 인식되는 자 ⑤동일인 승계 방침에 따라 기업집단의 동일인으로 결정된 자 등 다섯 가지 총수 판단 기준을 명문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섯 개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이런 요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동일인을 지정하겠다고 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브리핑에서 “다섯 가지 기준 사이에 우선순위를 정하긴 쉽지 않다”면서도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지(③번 기준) 여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③번 기준에 대해 “대표이사 등 임원의 임면, 조직 변경, 신규 사업 투자 등 주요 의사결정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행사하는 경우 기준을 충족한다”고 규정했다. 법인 등기에 등재된 직함이 ‘회장’ ‘이사회 의장’ 등이 아니더라도 기업집단 내 상위 직위자가 존재하지 않으면 지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객관성 높였지만 여전히 모호
공정위의 이번 제정안 마련으로 총수 판단에서 객관성과 기업집단의 예측 가능성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 위원장은 기준 명문화 배경에 대해 “제도의 불확실성 개선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이의가 있을 경우 기업집단이 공정위에 재협의를 요청할 수 있는 근거 규정도 이번에 마련했다.
다만 공정위 내에서 ‘깜깜이’로 이뤄지던 총수 판단 기준이 명문화됐을 뿐 기준 자체가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한 위원장은 “(제도적으로) 추가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니다”며 “관련한 모호성이 완전히 해소된다고 말씀드리긴 어렵다”고 밝혔다.
총수 지정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사전적 규제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총수 개념은 국가 주도 개발 시기인 1986년 경제력 집중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도입됐다. 그러나 경제 규모가 커지고 경제주체도 다양해진 상황에서 사전적으로 총수를 규정해 규제 대상에 올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총수 제도는 해외에서 찾아보기 힘든 과거 한국의 특수한 규제”라며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기존 틀을 깨고 과감히 기업 운신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외국인 총수’ 관련 규정도 이번 제정안에서 제외됐다. 공정위는 이날 발표한 총수 기준 중 김범석 의장이 ①·③·④번 기준을 충족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외국인(미국인)이라는 이유로 쿠팡 총수를 김 의장이 아니라 쿠팡 법인으로 지정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같은 미국인인 이우현 OCI 회장이 총수로 지정되면서 형평성 논란이 일었다. 한 위원장은 “외국인 총수 규정은 통상 이슈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해 지속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박한신/이슬기 기자 p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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