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숨기고 진단비 1천만원 받아" 외국인 실비청구 70%가 중국인
◆ 외국인 의료보험 악용 ◆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중국인 A씨는 지난해 5월 두통을 호소하며 국내 한 병원을 찾았다. 정밀검사를 받은 그는 결과를 보러 가기 전에 B보험사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했다. 이후 뇌혈관 질환 진단과 치료를 받았고 보험금 150만원을 수령했다. 또 다른 중국인 C씨는 국내 실손보험과 질병보험 가입 석 달 만에 뇌혈관 질환 진단을 받고 실손에서 139만원, 진단비로 1000만원을 수령했다. 보험사 조사 결과 C씨는 6개월 전부터 증상을 호소했고, 중국에서 이미 고혈압 약을 처방받아 복용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중국 소셜미디어에 '한국 건강보험과 민영보험 빼먹는 법'이라는 내용의 '꼼수'가 마치 비법처럼 공유되고 있는 가운데, 실제로 일부 외국인 환자가 기존 병력을 숨기고 보험금을 받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병·의원과 보험모집인이 "한국에 오면 공짜로 치료받을 수 있다"면서 보험 사기를 부추긴 정황도 포착됐다.
29일 매일경제가 단독 입수한 국내 보험사의 외국인 실손보험금 지급 현황에 따르면, 상위 30명은 작년 한 해 동안 적게는 1300만원에서 많게는 5400만원까지 치료비 명목으로 보험금을 수령했다. 대부분 암과 뇌질환을 비롯한 중증 질환을 진단받은 사례인데, 70% 이상이 중국 국적이었다.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 중 중국 국적자가 많은 데다 이들의 보험 가입률이 높은 것이 주된 원인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외국인 실손보험 고객 중 70% 이상이 중국인이다. 주요 손해보험사 한 곳당 외국인 실손보험 계약은 수만 건 수준으로 추정된다. 주요 손보사 5곳을 합치면 30만건이 넘고, 이 중 20만건 이상이 중국인 계약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개인이 가입한 실손 계약만 집계한 것이고, 회사에서 가입해주는 단체 실손보험은 따로다. 실손 외에 추가로 암보험 등 중증질환 보험 가입도 흔하다.
보험사에 따라 조금 다르긴 하지만 외국인과 재외국민은 입국 후 3개월이 되면 국내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3개월 이상 국내 체류 시 발급해주는 외국인등록증만 있으면 된다. 암보험, 종신보험, 질병상해보험(수술비·진단비 보장)까지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고 보험료에도 큰 차이가 없다. 단 실손보험은 국민건강보험 가입자만 들 수 있다. 문제는 이들 중 일부가 악의적으로 '고지 의무'를 위반하고 보험금을 빼먹고 있다는 점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정상적으로 실손보험이나 암보험에 가입한 뒤 질병 진단을 받고 보험금을 수령했다면 국적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외국인 특성상 과거 의무 기록이나 진료 내역을 추적하기 어렵다 보니 작정하고 숨기면 보험사가 알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 보험사가 적발한 보험사기 사례를 보면, D씨는 2018년 중국에 거주할 당시 방광암을 진단받고 2019년 12월 한국에 들어왔다. 보험에 가입한 그는 다시 국내 의료기관에서 방광암 진단을 받아 진단비로 1000만원을 청구했다. 또 다른 중국인 E씨는 같은 수법으로 뇌경색 진단을 받아 2000만원을 청구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한 중국인은 치아 16개를 크라운 치료했다면서 640만원을 청구했는데, 조사 결과 10년 전 중국에서 치료받은 것을 단순히 교체한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사실상 전 국민이 가입한 실손보험은 '만년 적자' 상품이다. 평균 손해율이 130%가 넘고, 매년 보험료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아직 외국인 국적자의 도덕적 해이로 인한 보험금 누수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상황이 심각해지기 전에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 최고 한국 의료 시스템으로 치료받고 보험금까지 두둑하게 챙길 수 있다'는 기류가 확산되고 있는 데다, 일부 병·의원에서 외국인 환자를 유치한다면서 '무료 진료'를 가장한 보험사기를 홍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미 진단받았거나 현재 앓고 있는 질환을 제대로 고지하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외국인 보험 계약이 몇만 건으로 많지 않은 데다 중국 국적자를 제외하면 손해율도 평균보다 낮은 편이어서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최근 고지 의무를 위반한 사례가 늘고 있고, 1000만원 이상 보험금 청구도 증가하는 추세여서 보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장단기 체류 외국인은 224만5912명으로 전년보다 14.8% 늘었다. 최근 5년(2018~2022년) 체류 외국인 중 37.8%인 85만명이 한국계 중국인을 포함한 중국 국적자였다.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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