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아니어도 지배력 크면 '총수'로 인정
임원 임면·신규투자 결정 등
지배적 영향력 행사로 판단
美국적 김범석 쿠팡 의장엔
"통상마찰 우려해 지정 안해"
경영계 "실효성 없어…폐지를"
대기업집단의 총수(동일인)를 지정하는 기준을 놓고 다양한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정부가 1986년 대기업집단 지정 제도를 도입한 이후 처음으로 명문화된 지침을 제시했다. 정부는 동일인 판단 기준의 핵심으로 '지배력 행사'를 꼽았다. 대기업집단의 지분을 가장 많이 보유하지 않거나 공식 직함이 '회장'이 아니더라도 기업 경영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총수로 지정할 수 있다는 점을 공식화한 셈이다.
29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동일인 판단 기준 및 확인 절차에 관한 지침' 제정안을 다음달 20일까지 행정예고한다고 밝혔다.
현행 제도에서 동일인은 기업 규제의 출발점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동일인을 기점으로 친족, 계열사 등 일정한 범위 안에서 기업집단 규제 적용 대상을 정하고 있다.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기업집단 관련 각종 신고와 자료 제출 의무를 지게 되고 사익 편취 등의 규제도 적용받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제정안에 따르면 동일인 판단 기준은 △기업집단 최상단 회사의 최다 출자자 △기업집단의 최고직위자 △기업집단 경영에 대해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 △기업집단 내·외부적으로 대표자로 인식되는 자 △동일인 승계 방침에 따라 기업집단의 동일인으로 결정된 자 등이다. 5개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이런 요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동일인을 지정한다. 기준에 부합하는 자연인이 없으면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다. 공정위는 지난 4월 총 82개의 대기업집단을 지정했다. 이 중 10곳에 대해 총수 없이 법인을 동일인으로 분류했다. 개인이 아닌 법인이 동일인인 기업들은 포스코, KT&G 등 민영화된 옛 공기업이거나 한국GM, 에쓰오일 등 외국계 기업이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5개 기준 중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라는 실질 기준이 가장 중요하고, 나머지 기준은 굉장히 중요한 참고 사항이 된다"며 "다양한 형태의 지배구조가 등장하고 있고, 동일인 지정 관련 변수가 복잡·다양해져 5가지 기준을 균형 있게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국적인 김범석 쿠팡 의장을 두고서는 "3가지 요건을 충족해 동일인으로 볼 만한 실질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한다"면서도 "통상 마찰 이슈 때문에 자연인을 쿠팡의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공정위는 기업집단 최상단 회사의 출자자가 자연인이 아니라 계열사나 경영 참여 목적이 없는 기관투자자일 경우, 직간접 지분이 자연인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이 동일인 요건을 충족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경영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는 대표이사 등 임원의 임면, 조직 변경, 신규 사업 투자 등 주요 의사 결정 또는 업무 집행을 주도하거나 승인하는지 등으로 따진다. 법인 등기에 등재된 직함이 '회장' '이사회 의장' 등이 아니더라도 기업집단 내에 상위직위자가 존재하지 않으면 최고직위자로 볼 수 있다. 대표자로 인식되는 자는 회사의 창업주이거나 기업집단을 대표해 대외활동을 하는 자를 의미한다.
다만 이 같은 기준은 공정위가 실무적으로 동일인 지정에 활용해온 판단 근거를 명문화한 것이어서 당장 동일인 지정 결과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공정위는 이미 유사한 기준에 따라 2019년 한진그룹 총수로 최다 출자자인 사모펀드 KCGI 대신 조원태 회장을 지정한 바 있다. 2021년에는 네이버를 총수 없는 기업집단으로 지정해달라는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의 요청을 거부했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를 제외하면 이 GIO가 네이버의 최다 출자자이고 경영에 지배력을 행사하는 등 4가지 요건을 충족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편 경제단체들은 기업집단 동일인 지정 제도 자체의 실효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은 "자연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말고, 그룹 핵심 기업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도록 개선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동일인 제도를 폐지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진한 기자 / 정승환 재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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