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 삼촌' 현기영 "수난이자 항쟁인 4·3 그린 신작, 원혼에 바치는 공물"
4·3 총체적으로 다루려 4년간 집필 몰두
해방공간 '새나라' 향한 청년들 열정 그려
"역사소설 아닌 현대소설, 당대적 이야기"
"일종의 공물(供物), 트리뷰트(tribute)를 4·3 원혼에 바치겠다는 생각으로 쓰게 됐습니다."
소설집 ‘순이 삼촌’(1978)으로 제주 4·3의 비극을 널리 알린 소설가 현기영(82)이 대하소설 ‘제주도우다’로 돌아왔다. 일제강점기 말 전시동원체제의 고통이 최고조에 달했던 1943년부터 4·3이 발생하고 토벌이 이루어진 1948년 겨울까지 제주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한국 현대사 최대 격변기였던 그 시절, 10대 소년이었던 노인 '안창세'의 시선에 따라 해방공간 청년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현기영 작가는 29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4·3이 일생의 화두가 된 것을 "운명적"이라고 표현했다.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4·3에 관한 영령의 부름을 받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고향 제주의 참사에 대해 썼다. 바로 소설집 '순이 삼촌'이다. 이후로도 4·3은 현기영 문학의 중심이었다. 중단편전집 3권(2015)을 낸 후에는 4·3에 대한 부채의식을 어느 정도 갚았으니 휴머니티를 써보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작가는 "고문당하는 꿈을 두 번이나 꿨는데, 고문 주체가 4·3 영령이었다"면서 "마치 '네가 뭘 한 게 있다고 4·3에서 벗어나려고 그러느냐'고 말하는 듯했다"며 이번 장편소설의 집필 계기를 설명했다. '순이 삼촌' 출간으로 군 정보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책은 금서가 되는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냈지만, 정작 꿈에서조차 마음속 깊은 책임감을 숨길 수는 없었던 셈이다.
꼬박 4년을 집필에 몰두했다. 여태껏 쓴 어떤 작품에 들인 것보다 오랜 시간을 들였다. 작가는 그 과정을 "캄캄한 방 안의 코끼리를 더듬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총체적으로 다뤄보려고 했는데 점차 지쳐갔다. 그러다가 출구가 보이더라"고 전했다.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 '새 나라'를 꿈꾸던 시절, 극심한 부패와 무자비한 국가 폭력 속에 살아남으려 분투한 제주 사람들의 사연 하나하나를 되살리려 애썼다. 200자 원고지 3,500매가량의 방대한 분량에 그 시절 제주의 이야기를 빼곡히 채웠다. 그렇게 총 7부(프롤로그·에필로그 제외), 3권짜리 책으로 독자를 만나게 됐다.
4·3을 다룬 이전 작품들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정당한 항쟁'으로 4·3에 초점을 뒀다는 점이다. 3만 명이 넘는 양민이 희생된 수난의 이야기인 동시에 피끓는 청년들의 열정의 산물이기도 하다고 작가는 강조했다. 육지의 지배 권력에 맞서 '역향(逆鄕)'이란 별명을 얻은 제주 해변마을 조천리를 주요 공간으로 정한 설정도 이런 의도를 드러낸다. 작가는 "4·3봉기 전문은 단독정부 반대가 아니라 '죽느니 서서 싸우자'로 시작한다"며 "무지막지한 탄압에 의해 앉아 있으면 죽게 생겼다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젊은이들의 이야기라서 연애도 하나의 소재가 됐다. 착잡함만 있는 게 아니라 즐거움도 기쁨도 낭만도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전달하고 싶었다. 그런 부분이 현시대 젊은 독자에게도 가닿길 바랐다. 작가는 "로맨스가 구식이긴 하지만(웃음) 옛날 사람들 연애를 보는 재미도 있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현 작가는 이번 작품을 '현대소설'이라고 규정했다. 4·3은 당대적 이야기라고 했다. 그는 "4·3이 대한민국 공식 역사에서 배제돼 있어서, 이 작품이 출판사에서 소개하듯 '역사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항쟁으로서 4·3과 그 정당성, 학살과 분단에 관한 미국과 소련의 책임 문제까지 기술해야 제대로 공식 역사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란 생각이다. 그래서 제목도 '제주도입니다'라는 뜻의 제주 방언인 '제주도우다'이다. "우린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제주도우다!"라는 소설 속 구절에서 따왔다. 이념이 아니라 고향 제주에서 잘 살아보고자 했던 이들의 몸부림이 곧 4·3이라는 걸 말하고 있다.
여든이 넘은 나이. 자신을 늙은 사람이라고 칭하는 작가지만, 창작 열정은 변함없다. '제주도우다' 집필을 마무리한 지 4개월쯤 지난 지금 벌써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4·3에 대해서는 이제 (문학으로서는) 할 일을 다했어요. 지금은 나무, 자연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회색 아스팔트 도시 공간에 살다보니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걸 잊고 사는데, 자연 속의 인간을 새 작품 주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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