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RI '비메모리 인재 육성' 앞장선다

고재원 기자(ko.jaewon@mk.co.kr) 2023. 6. 2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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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I 반도체 팹 가보니
'내 칩 제작 서비스' 가속도
대학생이 설계한 반도체 칩
대신 만들어주고 성능 검증
9월 첫 서비스 돌입 준비 한창
26년부터 年1천명 학생 혜택
대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반도체 팹에서 근무자들이 반도체를 제작하고 있다. ETRI

지난 22일 방문한 대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반도체 팹(생산시설).

클린룸(먼지·세균 없는 공간) 밖에서 창문으로 안을 보니 노란 불빛 아래 방진복을 입은 이들이 보였다. 반도체 원판인 실리콘 웨이퍼를 검수하는 인원, 웨이퍼에 빛으로 회로를 새기는 설비를 점검하는 인원 등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노태문 ETRI 반도체소부장센터 센터장은 "국내 최초의 반도체 종합실이자 한국 반도체 개발의 산실인 ETRI 반도체 팹에서 수십 년간 반도체를 만들어온 베테랑들"이라며 "이제 이들은 국가 반도체 인재 양성에 나선다"고 밝혔다.

ETRI는 올해부터 반도체 설계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일선 대학의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반도체 칩을 무료로 제작해주는 '내 칩 제작 서비스' 사업에 착수했다. 학생들이 설계한 칩을 ETRI가 제작해줘 설계한 대로 동작하는지 알아볼 수 있는 검증 기회를 주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원하는 이 사업은 ETRI 외에도 서울대와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이 운영한다. 2027년까지 매년 500~1000명의 학생들에게 칩 제작 혜택을 주는 것이 목표다.

평소 칩 제작을 경험할 수 없는 반도체 설계 학도들에겐 값진 기회다. 전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는 약 500조원에 달한다. 이 중 절반 이상인 55%가량이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이다. 이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3%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1%도 채 안 된다. 이 사업을 통해 비메모리 반도체 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한 설계 인력 양성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날 ETRI 반도체 팹에서는 사업 진행 논의가 한창이었다. 사업 운영 3개 기관 공통 '프로세스 디자인 키트(PDK)' 구축이 주요 안건으로 제시됐다. PDK는 반도체 제작자(파운드리)가 설계자(팹리스)에게 제공하는 반도체 제조 공정 관련 데이터베이스다. PDK가 있어야 학생이 반도체를 설계할 수 있다.

그러나 학생들이 PDK를 접하긴 어렵다. 석·박사 과정의 대학원생 정도가 돼야 상용 파운드리에 칩 제작을 의뢰하며 비밀유지계약하에 PDK를 제공받는데 비싼 가격과 오랜 대기 시간, 부족한 피드백으로 한계가 있다. 노 센터장은 "학생들은 PDK를 배우며 실전 역량을 갖춘 반도체 설계 인재로 커갈 것"이라고 말했다.

ETRI는 올 9월을 첫 서비스 개시 시기로 잡고 있다. 사업 운영 3개 기관 중 유일하게 이미 PDK가 구축된 곳이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100명 규모로 학생들의 칩 설계를 지원할 계획이다. 반도체 칩 제작을 신청하면 반도체 팹에서 반도체 칩이 제작되고 패키징까지 완료돼 학생에게 제공된다. 학생들은 자신의 칩이 설계한 대로 동작하는지 직접 측정·분석할 수 있다.

공급 기한은 상용 파운드리와 동일한 3개월을 목표로 한다. 노 센터장은 "산학연 중심의 '기술자문위원회'를 별도 구성해 사업 지원 대상 선발 기준을 논의 중"이라며 "올해 3개 기관 간 표준 공정 및 소자 기술을 확보하고 공통 PDK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내년부터는 3개 기관 모두가 서비스 개시에 돌입한다. 한 해 6회 이상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으로, 2026년부터는 서비스를 연 12회로 늘린다. 한 해 최대 1000명의 학생에게 칩 제작을 경험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이번 사업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산업 인재 양성을 위한 특단의 노력을 지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라고 밝혔다.

[대전 고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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