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수상한 단체'의 국회 행사
사기꾼들은 권위 있는 사람과 장소를 좇는다. 순진한 사람들을 상대로 벌이는 사기행각이 속임수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유력 인사와 함께 찍은 사진,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힘든 장소에서 찍은 사진 등을 보여주며 상대를 안심시킨다.
이런 점에서 국회는 사기꾼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장소다. 접근이 어려운 듯 어렵지 않으면서 권위만큼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조금 수상한 단체의 행사가 열렸다. 국제 봉사단체라고 스스로 소개하지만 그 실적은 찾아보기 힘든 단체다. 공개된 주소지를 구글맵으로 검색해봐도 간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임원 구성은 더 수상하다. 총재를 맡고 있는 사람은 과거 장애인들을 상대로 4억2900만원대 사기를 저지른 전과자다. 부총재는 가상자산 관련 사업체를 운영 중인데, 해당 사업체는 현재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쉽게 말해 '다단계 사기' 혐의 수사 대상인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월 이 같은 혐의를 포착하고 해당 업체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봉사단체'라는 단어가 주는 선한 이미지 때문이었는지 마음씨 좋아 보이는 어르신들이 행사에 많이 참석했다고 한다. 전·현직 국회의원들도 축사를 보내는 등 행사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
국회 사무처에는 외부 단체의 불필요한 국회 행사를 제한하기 위한 내규가 있다.
내규에 따르면 '사용신청권자가 타인이 주관하는 회의 또는 행사를 위해 (국회 시설물) 사용신청을 대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대관을 허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외부 단체가 주관하는 행사의 국회 시설 사용신청을 국회의원들이 대리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수상한 봉사단체'의 경우도 서류상 공동주최자에 현직 국회의원이 명의만 올렸을 뿐 실제 행사를 공동으로 주최한 것은 아니었다.
국회의원들이 '공동주최 관행'을 자제하든 대관 규정을 뜯어고치든 외부 단체의 국회 대관 절차가 보다 엄격해지길 기대한다. 국회가 권위적일 필요는 없지만 권위를 잃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김희래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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