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미디어 몰락을 막는 첫 단추

황인혁 기자(ihhwang@mk.co.kr) 2023. 6. 2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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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앱과 SNS의 범람에
뉴스 포식자 포털의 지배까지
언론 위기 돌파구 마련 절실
'포털의 덫' 벗어날 개혁 필요

"가장 인기 있는 헤드라인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화나게 하며 충격을 주는 것이다."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인 스콧 갤러웨이가 쓴 책 '표류하는 세계'는 전 세계 미디어가 처한 디지털 환경을 이렇게 요약했다. 미국인들이 지인들에게 이메일로 전송한 뉴욕타임스 기사 내용을 파악해보니 분노, 놀라움, 불안을 담은 기사일수록 전송될 확률이 높았다는 연구 결과가 언급됐다.

과거엔 뉴스 소비가 종이 신문과 TV에서 이뤄졌고 미디어 위상을 흔들 만한 경쟁 요인이 없었다. 기사에 굳이 조미료를 칠 이유가 없으니 담백했다. 하지만 스마트폰 출현 이후 뉴스 소비 판도는 확연히 달라졌다. 동영상 앱과 SNS의 범람으로 뉴스 기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자 언론들이 맵고 짠맛의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낸다.

특히 한국에선 네이버라는 포식자가 온라인 뉴스 생태계의 정점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 대다수 매체를 종속시키고 있다. 치열한 트래픽 경쟁이 유발되는 현 디지털 환경에선 그만그만한 기사가 넘쳐난다. 기사 제작 시스템을 바꾸고 자사 홈페이지 개편과 온라인 유료화를 모색하는 신문사들이 나오고 있지만 포털의 덫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디지털 시대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신문 매체들의 탈출구는 '디지털 전환'인데 그게 쉽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 언론진흥재단 행사에 참석했던 라스무스 클라이스 닐센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의 일침이 기억에 남는다. 언론사 홈페이지에 직접 방문해 뉴스를 보는 비중을 보면 덴마크가 52%로 가장 높고, 미국은 24%인 반면 한국은 5%로 가장 낮다고 한다. 한국 언론의 포털 의존도가 압도적으로 높다는 지적이다.

국내 미디어 산업의 붕괴를 막으려면 이러한 기형적 구조를 바꿔야 한다. 거대 포털의 인링크 틀을 깨고 '아웃링크'(포털에서 기사를 클릭하면 기사를 제공한 언론사 홈페이지로 이동하는 방식)로 가는 시도는 그래서 절실하다. 여러 독자들은 자신이 본 뉴스가 어느 언론사 소스인지 기억하지 않는다. 네이버나 다음에서 봤다고 생각할 뿐이다. 개별 언론사가 충성독자를 확보하기 어려워진 이유다.

포털의 공유지를 떠나 언론사 앞마당에서 독자와 소통하는 토양을 갖추면 기사의 차별화 경쟁이 촉발될 수 있다. 신뢰를 회복하는 매체가 독자의 선택을 받고 온라인 유료화를 추진할 동력을 얻게 된다.

사실 미디어 신뢰의 위기는 세계적 현상이다. 지난해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미국 성인 1000여 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16%만이 신문 기사를 신뢰한다고 답했다. 갤럽이 1973년부터 해당 조사를 진행한 이래 20% 밑으로 신뢰도가 내려간 건 처음이다. 미디어 생존의 밑천인 광고 수입도 급감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닛케이 등 세계 유수 신문사들은 '디지털 퍼스트' 전략을 통해 탄탄한 온라인 유료 독자층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처절한 내부 혁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성과지만 한국과 같은 거대 포털 생태계에 놓였다면 그들의 유료화 신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침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포털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뉴스 포털의 독과점 폐해를 해소하기 위해 포털의 사회적 책임을 높이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자극적이고 천편일률적인 기사 홍수에서 탈피해 양질의 저널리즘을 향유할 해법을 도출할 수 있다면 그 어떤 개혁보다 값진 성과가 될 것이다.

물론 언론도 포털 탓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개혁의 동력은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G5 경제강국을 지향하는 한국의 미디어 품격이 높아지면 국민 의식은 그만큼 격상될 수 있다.

[황인혁 디지털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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