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서 구텐베르크 성서·쐐기문자 본다

이한나 기자(azure@mk.co.kr) 2023. 6. 2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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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세계문자박물관 개관전
프랑스와 중국에 이은
세계 3번째 문자박물관
소장품 543점으로 출발
구텐베르크 42행 성서 초판본.

태초에 말이 있었다. 인류 최초의 문자인 쐐기문자는 기원전 3500년 무렵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발명됐다. 진흙 점토판에 갈대로 기록된 문자다.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개관한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 쐐기문자 원형 배 점토판(기원전 2000~1600년)을 만날 수 있다. 글자보다는 매듭 문양 같지만 고대 서아시아의 홍수 신화가 새겨져 있다. 구약성서 '노아의 방주'와 유사해 성서고고학에서도 중요한 기록물이다.

쐐기문자로 홍수 신화가 새겨진 점토판.

29일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지하 1층~지상 2층, 총면적 1만5650㎡ 규모로 문을 열었다. 훈민정음학회가 건립을 제안한 지 10년 만이다. 소장품 구입비 100억원을 포함해 건립과 전시 공사 등에 국비 720억원이 투입됐다. 송도 핵심인 센트럴파크 녹지 구릉 위에 흰색 양피지 두루마리를 펼쳐놓은 듯한 외관이 인상적이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창제 원리가 분명한 한글을 가진 대한민국에 세계문자박물관이 건립되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며 "K컬처 매력의 원천인 한글과 세계의 문자를 잇는 역사·문명의 통합 플랫폼 역할을 하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개관한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외관. 문화체육관광부

김주원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초대 관장(서울대 언어학과 명예교수)은 "세계의 문자와 문화, 인류 역사를 만나는 전시와 연구의 허브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 한 해 5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방문하고 세계 석학이 모여드는 대표 문자박물관으로 자리 잡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프랑스 샹폴리옹박물관과 중국 문자박물관에 이어 세 번째 문자 전문 박물관이다. 인류 공통의 유산인 전 세계 문자를 주제로 기원전 2100년 무렵부터 최근까지 4000여 년을 아우르는 소장품 244건 543점으로 개관했다.

문자문화를 비교문화 시각에서 조망한 상설전시 '문자와 문명의 위대한 여정'은 아랍어와 태국어 등 무려 9개 언어로 설명된다.

특히 서양 인쇄술을 대표하는 구텐베르크 42행 성서 초판본 여호수아서 분책본 원본이 눈길을 끈다. 유럽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가장 오래된 서적이다. 인쇄술로 문자가 확산되고 종교와 지식 정보가 대중화했음을 보여준다. 1454년께 찍었다는 초판 180부 중 전 세계에 49부만 전해진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 보유국이다. 이보다 앞선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1377)은 프랑스국립도서관 소장품이라 중요무형문화재가 제작한 복원품을 선보였다. 박물관 관계자는 "직지심체요절 원본은 프랑스 측에서 국외 대여를 허락하지 않지만, 앞으로 한국 전시는 물론 원본 복제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현전하는 고대 법률문서 중 가장 방대한 함무라비법전(루브르박물관 소장)과 가장 오래된 의학기록인 파피루스 에버스(라이프치히대학도서관 소장) 등도 정교한 복제·복원품으로 전체 흐름을 보여주려 애썼다. 그 대신 일부 복제품은 만져볼 수 있어 흥미를 끈다. 상설전시실 앞에 1500개 스피커를 쌓아 만든 거대한 설치작품 '바벨탑'에서는 다양한 언어와 자연 음향이 들린다. '2022 김종영미술상'을 수상한 김승영 작가 작품이다.

전시는 무료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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