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드라마’…야구·펜싱·태권도, 뮤지컬·연극으로 변신
‘비더슈탄트’…연극 ‘패스’ 등 스포츠 소재 차용
1회초 투아웃 투스트라이크 상황. 마운드에 부산마린스 선발 주현우. “단디 단디 단디 던져 단디 던져 주현우!” 관중의 응원을 받고 힘차게 던진 공 타자의 배트 끝에 맞고 가운데로. 잡아내~지 않고 피하는 2루수 김민수. 허탈해하는 관중들. “아 마린스 오늘도 못 이기나요.”
뜬금없이 야구 중계냐고? ‘제4회 부산시장기 전국리틀야구단대회’ 예선 첫날 부산마린리틀과 울산남구리틀 경기 내용이다. 부산마린리틀은 창단 1년된 신생팀으로, 한번도 못 이겼다. 이날은 첫 승을 거뒀을까? 결과는 스포츠 뉴스에서 확인할 수…없다! 뮤지컬 속 가상의 상황이니까.
뮤지컬이 야구와 만났다. 다음 달 5일~16일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야구왕 마린스>는 리틀야구단이야기다. 체형과 재능을 타고난 이남호와 비공식 구속 시속 110㎞까지 던지는 주현우를 중심으로 아이들의 성장을 보여준다. 잠재력은 있는데 실력 발휘가 안 되는 이 팀에 새 감독 유안나가 부임해 아이들과 호흡을 맞춰나간다. <야구왕 마린스>를 기획한 강병원 프로듀서는 “3년 전 부산시민회관으로부터 지역문화콘텐츠로 뮤지컬을 개발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야구’를 떠올렸다. 부산을 대표할 수 있고, 다른 지역으로 나아갈 수 있고,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절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무대에서 야구만 하지 않는다. 펜싱, 축구, 유도, 태권도까지 1~2년 전부터 다양한 스포츠가 무대에서 펼쳐진다. 오는 7월14일~8월27일에는 서울 우리금융아트홀에서 태권도가 뮤지컬과 만난다. 한국체육고등학교 태권도부를 배경으로 유망주들의 성장 이야기를 담은 <태권, 날아올라>가 지난해 6월 공연 이후 1년 만에 다시 찾아온다. 오는 9월12일~11월26일 서울 대학로 드림아트센터에서는 펜싱과 뮤지컬이 만난다. <비더슈탄트>도 지난해 이은 재연 작품. 1938년 독일을 배경으로 한 펜싱부 학생들 이야기다. 축구는 연극과 만난다. 오는 8월4일~16일 서울 마포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에서 선보이는 <패스>에서 남북한이 축구를 한다. 해방과 함께 남북 분단으로 통행이 금지된 불안한 상황에서 경평대항축구전이 다시 열리는 이야기다. 초연에 이어 재연에도 <태권, 날아올라>에 출연하는 태권도 선수 엄지민은 “스포츠 공연들은 운동 관련 퍼포먼스와 노래, 연기를 함께 선보이니 볼거리가 많아 인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비더슈탄트> 박신혜 프로듀서는 “스포츠 소재가 뮤지컬에 신선함을 주고 있다. 한국을 넘어 언어 장벽 없이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2014년 연극 <유도소년>과 2015년 야구 뮤지컬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가 선보인 적은 있었지만, 최근 1~2년 사이 규모도 커지고 활발해졌다. 소재만 차용하거나 퍼포먼스에 치중하지 않고, 극의 흐름 속에 역동적인 운동 장면을 적절히 접목한다. <태권, 날아올라>는 성장 이야기 속에 돌려차기, 송판깨기 등 기본적인 동작 외에도 케이팝 댄스처럼 추는 태권무나, 다방향격파 등 우리가 잘 몰랐던 ‘태권도’를 보여준다. <야구왕, 마린스>는 시작부터 대회 모습을 보여주고, 중간중간 4~5차례 대회 장면이 나온다. 엄지민 선수는 “아이들이 태권도 매력이 극대화된 뮤지컬을 본 뒤 극 중 선수처럼 되고 싶다고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작품마다 실제 선수 출신을 기용한 것이 수준을 높였다. <태권, 날아올라>는 연기를 잘하는 태권도 시범단과 태권도 유단자 배우들로 선발했다. <야구왕, 마린스>는 실력이 점차 성장하는 걸 보여줘야 하는 아역들은 뮤지컬 배우 중에 선발했지만, 코치 등은 프로야구 선수 출신 배우를 기용했다. 극에서 코치로 나오는 김기무 배우는 한화 이글스 출신으로 2003년에 은퇴 뒤 20년 만에 무대에서 야구를 한다. 김기무는 “현실에서도 코치였다. 아역 배우들한테 야구 훈련을 시켰고, 야구장에 데려가는 등 야구와 친근해지게 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모두 연기 연습과 운동 훈련을 5~6개월간 병행했다.
스포츠는 역사 등 다양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를 담는 무대와 잘 어울린다. <패스>는 실제로 1929년 열린 남북축구대회인 경평대항축구전이 배경이다. 경평축구대항전은 당시 총 7회에 걸쳐 열렸지만, 일제의 금지로 중단됐다. 해방 뒤 남과 북의 청춘들이 38선을 넘어 경성에서 만나 다시 친선 경기를 치르는 설정으로 역사 뒤편에 숨겨진 청춘들의 꿈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비더슈탄트>도 1938년 독일의 엘리트 스포츠 학교를 배경으로 지하조직을 결성해 강압적인 학교 시스템에 반항하는 이야기다.
반응도 좋다. <태권, 날아올라>는 초연 당시 코로나19 대유행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평일 유료 관객이 70~80%, 금·토·일은 매진됐다. <비더슈탄트>는 지난 3월 일본 도쿄에서 라이선스(일본에서 다시 만드는 것) 공연으로 선보였는데 전 회차(16회) 매진을 기록했다. <유도 소년>은 2017년 삼연까지 제작되며 박해수, 박훈 등 스타가 탄생했다.
스포츠를 소재로 한 탓에 역동적 장면이 많아 드러나는 한계도 있다. 야구나 축구 등 구기 종목의 경우 공을 멀리 던지거나 차는 식으로 생생함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것. 강병원 프로듀서는 “<야구왕, 마린스>는 안전을 고려해 무대에서 야구공을 사용하지 않고, 공이 날아가는 장면 등은 엘이디(LED) 화면을 활용해 역동성을 살리려고 한다”고 했다.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을 뛰어넘는 과감한 시도도 필요하다. 김기무 배우는 “열심히 뛰어서 베이스를 밟고, 슬라이딩 하는 식의 박진감 넘치는 모습을 더 잘 구현하려면 무대를 획기적으로 변형하는 등 여러 시도를 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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