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과의 전쟁]② “킬러문항 안 나오면 준킬러문항 대비해야”…학원가 ‘불안 마케팅’

홍다영 기자 2023. 6. 2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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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1개 빠지면 준킬러 2~3개 나온다”
”수능 변화 예상돼 新유형으로 대비해야”
6월 모의평가 문제 적중한 자체 교재 홍보도

“교육부에서 킬러(초고난도) 문항을 수능에서 안 낸다고 했죠? 사교육 카르텔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렇다고 수능 난이도가 쉬워질까요? 킬러 문항 한 개가 없어지면 준킬러 문항 2~3개가 나옵니다. 중위권 학생들이 불리해져요. 우리 자녀님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난 27일 저녁 서울 목동 학원가 한 대형 입시 학원 강의실. 강사 A씨는 학부모 10여 명을 앞에 두고 진행한 입시 설명회에서 상기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 학원은 이날 수능 과목별로 유명 강사들이 나와 학습 전략과 입시 방향 설명회를 진행했다. 교육부가 지난 26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배제한다고 발표한 지 하루 만이었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2024학년도 입시 설명회에서 학부모들이 입시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유명 학원 강사 “정부 정책 화 난다, 이미 준킬러 공략반 나왔다”

입시 설명회는 사전에 온라인으로 예약한 뒤 학원 직원에게 예약 확정 문자를 보여주고 입장할 수 있었다. 평일 저녁 늦은 시간이었지만 20명 넘게 앉을 수 있는 강의실에 10여 명의 학부모가 참석했다. 강사들은 화면에 프레젠테이션(PPT)을 띄우며 설명했고 학부모들은 강사들의 말을 노트에 받아 적었다.

A씨는 “수능에서 변화가 예상된다. 새로운 문제 유형에 대비해야 한다”며 “연간 1억원씩 문제 (제작에) 투자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수능을 5개월 앞두고 출제 경향이 바뀌었으니 수험생이 학원 수업을 꼭 들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킬러 문항을 출제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 대책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했다. A씨는 “(정부 정책에) 솔직히 화가 난다. 사교육을 줄이려고 이런 정책을 펼치겠지만 대치동에서는 이미 준킬러 공략반이 나왔다”며 “발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교육부가 공개한 올해 6월 모의평가 킬러 문항은 어려운 수준이 아니었다”면서 “교육부는 윗선 눈치를 보며 (수능) 정답률 높이기에 나설 것”이라고도 했다.

강사 B씨는 “재작년과 작년 수능에서 킬러 문항이 나왔다는 것은 인정하겠지만 올해 6월 모의평가는 어려운 수준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정부 방침이 있으니 올해 9월 모의평가는 쉽게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9월 모의평가가 너무 쉽다는 지적이 나온 뒤 수능에서 난이도를 조절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강사 C씨는 “(일부) 킬러 문항이 추상적이라고 하는데 문장이 난해한 수준은 아니었다”며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감이 가진 않는다”고 했다.

이 학원 입시센터장은 입시 전략을 설명하는 화면을 띄우며 서울 유명 대학의 입시 결과와 수시 전략 등이 담긴 자료를 나눠줬다. 그는 “2024학년도 고등학교 3학년 재학생 수는 2023학년도보다 3만여 명 적은 수준”이라며 “올해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 학원은 자체 제작한 교재 등에서 올해 6월 모의평가에 적중한 문제만 수십여 개라고 홍보했다.

지난 28일 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홍다영 기자

◇국세청 세무조사 나서자 학원가 조용…'논술 마케팅’도

지난 28일 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만난 수험생들은 뒤숭숭한 모습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전모(18)군은 “킬러 문항이 없으면 한두 문제만 틀려도 등급이 쭉 내려간다”고 했다. 재수생 김모(19)씨는 “어차피 킬러를 맞추려면 준킬러를 풀 줄 알아야 했다”며 “그동안 킬러를 위해 준킬러를 거쳐 가는 정도로만 생각했다면 이제는 조금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 준킬러에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수능 성적으로) 학생들의 순위는 나눌 수밖에 없다”며 “사교육이 사그라드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한 학부모는 “수능이 코앞인데 (자녀가) 동요하지 않도록 공부부터 시키며 분위기를 살피고 있다”고 했다.

유명 대입 학원들은 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뺀다는 정부 방침에 눈치를 보며 조용히 준킬러 문항에 대비하고 있다. 수능이 140여 일 남은 상황에서 일단 9월 모의평가를 보고 출제 동향을 파악한다는 것이다. 다만 국세청이 메가스터디, 시대인재 등 대형 학원 세무조사에 착수해서인지 평소만큼 입시 설명회를 크게 여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대치동 D, E학원 등은 당분간 예정된 입시 설명회가 없다. 한 학원 업계 관계자는 “요즘 오프라인 설명회를 크게 여는 분위기는 아니다”라며 “혹시 (설명회를) 진행하더라도 온라인 위주로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F학원은 다음달 중순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수시 전략 관련 설명회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아직 학부모에게 설명회에 대해 알리진 않았다. F학원 측은 일주일쯤 뒤 설명회를 공지할 예정이라고 한다.

일부 논술 학원은 혼란을 틈타 수능 대신 논술 비중이 높아질 것이라며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다. ‘D-100 소수 정예 논술반’ 등이 개설되고 있다. 학부모들에게는 “수능에서 변별력이 낮아지면 대학은 논술 등을 강화할 것”이라며 “내신이나 모의평가 등급보다 높은 수준의 대학을 노릴 수 있다. 승산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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