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SW 대기업 참여 완화 가닥에…업계 "정상대가 산정부터"
교육부 4세대 나이스 먹통 사태 이후 대기업 참여 논란 불거져
업계, 품질 저하 해결은 정상대가 산정 및 예산체계 개선이 먼저
특히 전문가들과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정책 개선 우선 순위를 잘못 짚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공공 SW 사업에 대한 정상대가 산정과 고정된 예산 체계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공공 시스템에서 발생한 ‘먹통·오류’ 사고 또한 정부 공공 SW 사업 구조와 연관돼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근본적으로 부족한 예산과 짧은 사업 기간, 잦은 과업 변경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직된 제도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공공 SW 대기업 참여제한 완화 추진
공공 SW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는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이 상생·협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책이다. 상호출자제한(대기업)의 공공 SW 사업 참여를 제한하는 일종의 ‘진입규제’다. 예외적으로 참여가 허용되는 사업도 일부 있다. 지난 2020년 과기정통부는 국가안보,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 등 신기술 등 5개 분야를 예외사업으로 두고 심의위원회를 거쳐 대기업 참여를 허용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공공 SW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 완화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다. 오는 30일 업계 관계자들과 만나 구체적 안을 제시하고 의견을 청취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번 토론회에는 삼성SDS, LG CNS, SK C&C 등 IT서비스 ‘빅3’와 쌍용정보통신, 대보정보통신 등 중소·중견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국가보훈처, 근로복지공단 등 발주기관과 한국SW산업협회(KOSA),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등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정부가 제시할 완화안은 일부 대형 사업에 대한 대기업 참여 허용 여부와 컨소시엄 평가 기준 수정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사업 규모가 일정 금액 이상인 경우 대기업 참여를 인정하는 방식이다. 공공 SW 사업 컨소시엄 구성에 따른 기준과 가산 점수 기준도 논의된다.
지난 2013년 개정된 SW산업진흥법 개정안에 따라 대기업은 중소기업 사업 비중을 50% 이상으로 배정해야만 ‘상생 가산점’ 5점을 딸 수 있다. 전체 지분 중 50%는 대기업이, 나머지 50%는 여러 중소기업이 나눠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부는 이같은 중소기업 지분율을 하향하는 방식을 채택할 예정이다.
다만 비공개 토론회에서 명확한 방향을 잡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내일 토론회에서 정책이 확정되는 건 아니다”라며 “업계 의견을 청취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그간 업계 의견을 검토하겠다고만 얘기해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구체적 방안을 갖고 업계 얘기를 들으려고 한다”며 “정책 의사 결정 과정이기 때문에 의견을 듣고 논의를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 SW 사업 구조, 근본적으로 변해야
올해 10년째를 맞은 이 제도에 대한 논의는 국무조정실 산하 규제혁신추진단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개선 필요성을 전달하며 시작됐다. 지난 6개월 간 과기정통부와 규제혁신추진단은 업계 의견을 수렴해왔다.
‘도화선’에 불을 붙인 건 최근 논란이 된 교육부의 ‘4세대 차세대 교육행정종합시스템(나이스)’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 21일 개통 직후 기말고사 시험 문항과 답안 등이 담긴 정보표가 유출되고, 먹통에 빠지는 현상이 발생하자, 공공 SW 사업 대기업 참여 제한이 품질 저하의 원인이라는 목소리가 나왔기 때문이다.
업계는 이같은 주장에 대해 선을 긋고 있다. 공공 SW 사업의 근본적 구조가 ‘먹통 릴레이’를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로 지적된 부분은 크게 △불명확한 사업 범위 △부족한 예산 △변동 사항을 반영하지 못하는 고정 예산 체계 등이다.
공공 SW 사업은 정확한 사업 범위가 명시돼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규모로, 어떤 시스템 아키텍쳐가 필요한 지에 대한 요구사항이 명확하지 않아 ‘주먹구구’식으로 사업이 진행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잦은 변경과 추가 과업 요구도 처음부터 범위가 정해져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업계 중론이다.
공공 SW 사업 예산이 지나치게 낮은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당초 정부가 프로젝트 수행사를 선정할 시 가격을 낮게 책정한 사업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수주 기업은 원가를 맞추기 위해 고급인력과 기술 대신 수준이 낮은 프리랜서 개발자나 기술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과는 관계가 없는 부분이다.
고정된 예산 체계의 경우 사업 중간에 발생하는 변경 요구와 추가 과업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지 못하게 만들어 결국 기업이 손을 떼버리는 결과를 야기한다고 업계는 꼬집었다.
업계 관계자는 “공공 SW 사업은 예산 자체가 지나치게 낮은 탓에 고급 인력을 투입시킬 수가 없다”며 “외부 프리랜서 개발자 중 단기 코딩 교육을 거쳐서 지원한 사람도 많아 품질 이슈가 생길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공공 SW 사업은 마진율이 낮아 정상대가 산정이 우선”이라며 “프로젝트 과정에서 추가 과업이 발생하다보니 당연히 납기도 지연되고 품질도 낮아진다”고 역설했다.
채효근 IT서비스산업협회 상근 부회장은 “애초에 단가 체계가 맞지 않는데다, 사업 범위가 불명확해 변동 사항이 많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며 “변동 비용을 반영할 수 있는 예산 체계도 없어 발주자와 사업자 모두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기정통부와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가 범정부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분석했다. 또 민간 주도형 시장을 개방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 부회장은 “기재부와 과기정통부, 행안부가 전체 국가 디지털전환(DT)에 대한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안된다”며 “만약 예산의 한계가 발목을 잡는다면 민간 주도형 시장을 열어 정부는 감리와 감독을, 민간은 투자를 받는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가은 (7rsilver@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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