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100억 달러 규모 통화 스와프 재개 합의…2015년 관계악화 후 8년만
한국과 일본이 통화 스와프 재개에 합의했다. 비상시 자국 통화인 원·엔화를 주면 상대국으로부터 미 달러화를 받는 방식으로 규모는 총 100억 달러다. 2015년 한·일 관계악화에 따라 마지막 통화 스와프 계약이 종료된지 8년 만으로, 정부는 “한일 경제·금융 관계의 복원”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기획재정부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일본 재무성에서 스즈키 슌이치 재무장관과 가진 ‘제8차 한일 재무장관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의 한일 통화스와프 재개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통화 스와프는 외환위기 같은 위기 상황에 대비해 외화를 즉각 융통할 수 있도록 다른 국가들과 사전에 체결하는 국가간 계약이다.
이번에 합의된 체결 규모는 100억달러로 한국이나 일본이 자국 통화를 맡기면 정해진 환율에 따라 미 달러화를 빌려올 수 있다.
100억 달러는 2011년 유럽 재정위기에 대응해 700억달러까지 늘렸던 종전 한일 통화스와프 규모에 비해서는 규모가 크지 않다.
앞서 한일 양국은 2001년 20억 달러의 통화 스와프를 처음으로 체결한 뒤, 2005년 스와프 규모를 130억 달러까지 늘렸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금융시장 안정성 확보를 위해 총 300억 달러로 통화 스와프 규모를 확대했다. 2011년에는 300억 달러 상당의 엔화와 400억 달러의 미 달러화 등 총 700억 달러를 조달할 수 있는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
하지만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과 요구’ 발언 등으로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그해 10월 만기 통화스와프 물량을 시작으로 순차 종료돼 2015년 2월 최종 종료됐다. 이후에도 한국 정부는 한일통화스와프 재체결을 추진해 왔지만 일본측이 응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스와프 규모는 과거 한일 통화 스와프 종료 당시 규모인 100억달러와 동일한 규모로, 추경호 부총리는 “한일 스와프 복원은 당장 우리의 외환 부족에 대응하거나 시장 불안에 대응한다는 의미보다는 양국간 경제협력을 정상화, 복원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22년 말 기준 4232억 달러로 한국이 세계 9위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100억 달러의 통화스와프는 실제 활용가치보다는 상징성이 더 크다. 2001년부터 체결된 한일 통화 스와프가 양국에서 실제로 발동돼 사용된 적도 없다.
정부도 “당장 국내 외환시장은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이라며 “한일관계 개선으로 양국 신뢰가 개선되고, 경제·금융 분야 협력관계가 구축됨에 따라, 외환·금융시장 전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이번 한일 통화스와프 계약기간은 3년으로 올해 체결시 2025년까지 유지된다. 관건은 연속성이다. 한일 통화스와프가 양국간 갈등 국면에서 한차례 궤도이탈한 바 있는만큼 항시 이용할 수 있는 ‘안전판’ 역할이 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일 관계 변화에 따라 2025년 이후 또다시 종료될 여지가 있다는 의미다.
정부가 당장의 스와프 규모보다 향후 양국의 협력과 신뢰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이날 양국 장관들은 공동 보도문에서 “양자 금융 협력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는데, 양국 재무부는 “통화스와프 확대 여부 등 구체적인 내용은 결정된 바 없다”고 부연했다.
한일 통화스와프 이전 한국의 전체 통화스와프는 중국(590억달러), 스위스(106억달러), 인도네시아(100억달러), 호주(81억달러), 캐나다(상설) 등 모두 9건 1382억 달러+알파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한일 통화 스와프 체결이 완료되면 통화 스와프 체결국가는 10곳, 규모는 1500억달러 규모로 늘어날 전망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이번 스와프는 한국 외환 보유고 상황 때문이 아니라 한일관계 개선의 수순으로 일련의 관계 개선 신호이고 과정”이라면서 “주변국과 관계 개선은 나쁠 것 없고. 외환시장에 대한 효과보다는 관계 개선에 의미를 둬야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일본이 수출규제를 풀었지만 그 이전 수준으로 공급망이 완전 회복된 건 아닌만큼 스와프 다음 단계로 공급망 관계가 더 회복된다던지. 또 일본 내수 시장에 한국 제품 수출이 확대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호준 기자 hjlee@kyunghyang.com,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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