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구긴 푸틴, 피바람 숙청 나섰다
우크라이나전 총사령관 게라시모프도 행적 묘연
러시아 군부 핵심 엘리트로 우크라이나전 총사령관을 지낸 세르게이 수로비킨 러시아 항공우주군 사령관이 반란 연루 혐의로 체포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러시아군 현역 장성 중 최고위 인사인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도 행적이 묘연하다.민간군사기업(PMC) 바그너 그룹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반란 사태로 권위가 실추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본격적인 배신자 숙청 작업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현지 매체 모스크바타임스는 28일(현지시간) 러시아 국방부와 가까운 소식통 2명을 인용해 수로비킨이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한 소식통은 “반란 당시 그는 프리고진의 편에 선 것이 분명하다”면서 수로비킨의 현재 거취에 대해서는 “내부에서도 해당 정보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수로비킨은 지난 24일 이후 모습이 사라져 그의 신변을 둘러싼 의혹이 증폭돼 왔다.
다만,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추측성 기사에 불과하다며 이러한 보도를 일축한 바 있다. 그러나 앞서러시아 군사블로거 블라디미르 로마노프도 반란 사태 다음날인 지난 25일 수로비킨이 현재 모스크바 레포르토보 구치소에 수감돼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같은 소식들을 종합해 볼 때 러시아 보안당국은 수로비킨과 같은 최고위급 장성의 도움 없이는 프리고진이 반란을 시도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24일 바그너 용병들은 인구 100만명이 넘는 남부 군사 요충지 로스토프나도누를 단숨에 장악했고, 모스크바로 전진하는 과정에서도 러시아군으로부터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았다. 러시아군 병력 대부분이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됐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바그너 용병들의 전광석화 같은 진격은 군부의 묵인 내지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28일 미 정보당국 관계자들을 인용해 수로비킨을 포함한 일부 러시아 장성들이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등 러시아군 지휘부를 밀어내려는 프리고진의 계획을 지지함으로써 프리고진에게 반란을 감행해도 괜찮겠다는 확신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WSJ에 따르면 서방 관리들은 쇼이구 장관과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을 생포하는 것이 이번 반란의 목적이었고, 이 계획이 러시아 연방정보국(FSB)에 유출되면서 프리고진이 애초 일정보다 일찍 반란을 결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서방 관리들은 프리고진이 원래 일정대로 반란을 일으켰다면 성공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러시아군의 지원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반란을 강행해 실패했다는 것이다.
다만 미 관리들은 수로비킨이 쇼이구 장관과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에 대한 프리고진의 불만에 동의했더라도 이를 이유로 반란에 가담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고 WSJ는 전했다. 수로비킨은 반란 당시 프리고진에게 반란을 중단하라고 촉구한 첫 번째 고위급 장성이다. 당시 모스크바로 진격하던 바그너 용병 차량들을 공습한 것도 수로비킨 휘하 부대였다.
프리고진과 가까운 소식통은 파이낸셜타임스에 “수로비킨과 미하일 미진체프(전 국방차관) 등 바그너 그룹에 우호적인 장군들은 프리고진에게 반란을 중단하라고 설득하기 위해 바보처럼 뛰어다녔다”면서 “이제 그들은 반역자 취급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수로비킨은 시리아 내전 등에서의 활약을 인정 받아 최고 훈장인 ‘러시아 연방 영웅 훈장’을 받은 엘리트 장성으로 군 내부에서도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목표를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잔혹성으로 ‘아마겟돈’ ‘시리아의 도살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프리고진과는 시리아 파견부대 사령관이던 시절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프리고진은 수로비킨을 두고 “러시아 군에서 가장 유능한 지휘관” “조국에 충성하며 봉사하기 위해 태어난 인물”이라며 극찬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수로비킨을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에 임명했으나 3개월 만인 지난 1월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으로 교체했다. 수로비킨은 부사령관으로 강등됐다. 이를 두고 푸틴 대통령이 바그너 그룹을 견제하기 위해 프리고진과 친밀한 수로비킨을 경질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수로비킨 체포는 향후 전개될 광범위한 사정 작업의 신호탄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 게라시모프 참모장도 지난 24일 이후 공개석상이나 미디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29일 보도했다. 서방 분석가들에 따르면 게라시모프 참모장은 핵무기 발사 암호와 통신장비가 들어있는 이른바 ‘핵가방’을 지닌 3명 중 한 명이다.
러시아 유명 군사 블로거 리바리는 “반란 이후 군 내부에 대대적인 숙청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며칠째 군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이 지난 27일 바그너 그룹에 지급된 자금과 프리고진의 케이터링 사업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밝힌 만큼 해당 사업과 연관된 정부 및 군부 인사들이 처벌 대상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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