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석유를 캐자” 석유·철강업계의 이유있는 변신
엑손모빌 같은 세계적 석유공룡 기업들이 앞다퉈 ‘검은 황금’(석유) 대신 새로운 노다지를 찾아나서고 있다. 바로 급성장 중인 2차전지의 핵심 원료이자 ‘하얀 석유’로 불리는 리튬이다.
내연기관 시대가 저물며 위기감을 느낀 석유업계는 곧 다가올 전기자동차 시대의 먹거리를 찾아 리튬 매장지를 확보하는 등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철강기업 포스코도 2차전지 소재기업으로의 탈바꿈을 노리며 아르헨티나에 리튬을 뽑아낼 염호(소금호수) 공장 착공에 나섰다.
2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석유기업 엑손모빌의 자회사 솔트웍스는 최근 에너지 컨설팅사 테트라테크와 미 아칸소주 남부에 위치한 6138에이커(24㎢)가량의 리튬 매장지를 공동 개발하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는 앞서 지난 21일 엑손모빌이 광물탐사업체 갈바닉에너지로부터 사들인 12만에이커(485㎢)의 리튬 매장 부지 가운데 일부로 전해졌다. 해당 매장지에는 400만t의 리튬이 함유된 것으로 추산된다. 약 5000만대의 전기차에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매입 가격은 1억 달러(1300억원) 이상으로 알려졌으며 엑손모빌은 갈바닉에너지의 계열사였던 솔트웍스도 함께 인수했다.
테트라테크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인프라 및 에너지 관련 컨설팅 회사다. 테트라테크로서는 글로벌 메이저 석유회사인 엑손모빌의 자금력을, 엑손모빌은 광물 개발에 대한 전문성을 서로 얻게 된 셈이다.
엑소모빌뿐만이 아니다. 노르웨이 에너지기업 에퀴노르는 지난 2021년 리튬업체 리튬드프랑스 지분을 인수했고, 정유업체 옥시덴탈은 리튬 기술업체 테라리튬을 공동소유하고 있다. 석유·가스기업 쉐브론의 마이크 워스 최고경영자(CEO)도 이달 초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 비즈니스(석유사업)와의 인접성을 살펴본 결과, 리튬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며 관심을 드러냈다.
글로벌 메이저 석유기업들의 리튬 열풍은 탄소중립 움직임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미국·유럽연합(EU) 등 주요 국가들은 이르면 오는 2035년부터 휘발유·경유 차량의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그럼에도 석유 수요는 한동안 견고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들 업계는 시기를 놓치기 전 일찌감치 다각화해 미래에 대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2차전지 양극재 재료인 리튬은 전기를 생성·충전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
석유기업의 시추 기술이 염호에서 리튬을 끌어올리는 기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광산기업 테크멧의 브라이언 메넬 CEO는 “(리튬 채굴은) 석유기업들에게 자연스러운 진화”라며 “그들은 지하에서 유체를 끌어올리는 데 탁월한 기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기간산업에 종사했던 기업이 시대 변화에 발맞춰 변화를 꾀하는 건 한국도 마찬가지다. 포스코가 대표적이다. 포스코는 철강기업이라는 테두리를 넘어서기 위해 2010년부터 리튬을 새로운 먹거리로 낙점하고 관련 기술을 개발해 왔다. 2018년에는 아르헨티나 살타주 4000m 고지대에 위치한 리튬 염호도 인수했다.
포스코는 이날 아르헨티나 염호에 탄산리튬 공장을 짓는 착공식을 열었다. 지난해 착공한 첫번째 공장에 이어 두 번째 공장으로, 연간 2만5000t의 탄산리튬을 생산하게 된다. 포스코는 이 탄산리튬을 한국으로 들여와 전남 율촌산업단지에 짓고 있는 공장에서 고성능 전기차에 쓰이는 수산화리튬으로 최종 가공한다는 계획이다.
염호에서 추출한 리튬은 염수 증발 과정을 거쳐 탄산리튬으로 가공되는데, 에너지 밀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노트북이나 핸드폰 등 소형 배터리에 주로 쓰인다. 포스코는 이 탄산리튬을 한국으로 들여와 전남 율촌산업단지에 짓고 있는 공장에서 수산화리튬으로 최종 가공한다는 계획이다. 수산화리튬은 에너지 밀도가 높아 전기차 배터리에 사용된다.
포스코홀딩스 측은 “염수·광석리튬 등을 기반으로 리튬 자급력을 강화하고, 수직계열화를 완성해 2차전지 소재 전문회사로 거듭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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