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언제 우리 말 들으려고나 했습니까”···‘내 문제’ 목소리 냈다 ‘괴담 유포꾼’으로 몰린 사람들
“오염수와 수산물 관련 괴담과 선동 수준의 허위사실이 유포되고 있어 매우 유감스럽다.”(한덕수 국무총리)
“여의도발 괴담과 선동이 드디러 우리 아들딸들의 수능 문제까지 파고들고 있다.”(이태규 국민의힘 의원)
“사드 괴담, 가짜뉴스가 횡행하도록 조장한 몸통이 누구인지 조사해서 밝혀내야.”(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정부·여당이 최근 사회적 논란이 커지고 있는 사안들을 언급할 때마다 꼬박꼬박 빼놓지 않는 단어가 ‘괴담’이다. 그러나 ‘괴상한 이야기’로 치부되고 있는 사안들 각각에는 생존권이나 다름 없는 이해관계가 직결되는 당사자들이 있다. 정부는 절박한 문제에 대한 이들의 우려를 듣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하기보다 여론전이라는 손쉬운 방식을 택하기라도 한 듯 몰아세우고 있다. 어느새 ‘괴담 유포자’ 취급을 당하게 된 당사자들은 정부의 ‘일방 소통’을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속앓이 하면서도 수능 5개월 앞두고 쉽게 내색 못 해, 혼란 없다니 황당”
윤석열 대통령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불과 5개월 앞두고 수능 출제 방향을 언급한 뒤, 교육부가 부랴부랴 ‘킬러 문항 배제’ 등을 담은 지침을 내놓자 고3 학생 등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혼돈 속에 빠져 있다. 정부가 혼란을 촉발해 놓고는 어쩔 줄 몰라하는 당사자들을 향해서는 “괴담에 휘둘리지 말라”고 하는 형국이다.
고3 수험생 학부모 염은정씨(50)는 정부의 수능 출제 지침 발표 이후 아들이 ‘(교육과정 내에서만 출제하면) EBS 연계비중이 줄어드는 거냐’‘지금부터라도 준킬러 위주로 공부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염씨는 아들에게 “출제 기조에 큰 변화가 없기를 바라고 해오던 대로 해야지 별수 있겠냐”고 답했다. 이후 “만만한 게 수험생인가 보다”라는 아들의 푸념을 듣고 염씨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했다.
염씨는 “고3 학생들은 이제 와서 공부 방향을 바꿀 시간적 여유가 없다. 어쩔 수 없이 하던 대로 공부할 뿐이고 학교에서도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분위기지만, 다른 학부모와 이야기해보면 다들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혼란이 없다고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니 화가 난다”고 했다.
염씨는 정부가 학생들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보지 않은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그는 “학생들은 지금까지 ‘수능이 이렇게 나올 것이다’ 예상하고 최선의 결과 낼 수 있게 준비해왔다. 그런데 정부가 그 틀을 갑자기 바꿔놓은 것”이라며 “수능이 12년 학창 시절의 결산인 만큼 학생들은 작은 변화에도 민감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염씨는 사교육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정부의 발표는 시기가 부적절했다고 했다. 교육정책은 학생·학부모 혼란 방지를 위해 충분한 기간을 두고 발표해야 함에도 그러지 않는다는 것이다. 염씨는 “전문가 토론, 공론화 위원회 등 거쳐 결정해야 할 사안을 정부가 지지율 올리기에 취해 무턱대고 발표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한 달 뒤에 또 무슨 말을 할지 모르니 정부를 신뢰할 수가 없다”고 했다.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정부, 피해 발생 시에 보상 제대로 해주겠나”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어업·수산업 종사자들의 걱정도 ‘괴담몰이’의 대상이 되고 있다.
20년간 양식업 등으로 생계를 꾸려온 위장명씨(47)는 정부가 연일 ‘수산물이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외쳐도 안심이 되지 않는다. 그는 “정부는 과학을 근거로 삼아서 안전하다고 하지만 국민 정서는 다르다”며 “대다수가 오염수 방류되면 수산물을 줄인다고 한다. 정부가 과학만 말할 게 아니라 소비자 심리를 봐야 하는데 그런 노력은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10여 년간 문제없지 않았냐고 하는데, 앞으로 30년 동안 오염수가 방류되었을 때 위험이 없을지는 전혀 다른 문제”라며 “정부가 진정 어민을 생각한다면 되든 안 되든 일단 ‘방류는 안 된다’고 선을 그어야 하는데 일본 정부의 장단만 맞춰주고 있으니 답답하다”고 했다.
전복·미역·다시마 등을 양식하는 위씨는 후쿠시마 오염수의 영향이 이미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위씨는 “작년에 이맘때쯤 10마리당 4만원 정도 했던 전복 가격이 지금은 2만4000원에도 잘 나가지 않는다. 계절과 날씨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설명 안 되는 가격변동”이라며 “이미 시장에 오염수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아무리 외쳐도 이들은 마음을 놓을 수 없다고 했다. 일본의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면 매출 감소가 불 보듯 뻔한데 과연 보상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위씨는 “태풍 피해 등으로 인한 보상을 받을 때도 절차가 굉장히 복잡하고 까다롭다. 그런데 오염수로 인해 소비가 감소하는 것은 어떻게 측정할 수 있겠나”라며 “이미 소금 가격이 폭등했는데도 정부는 오염수 때문이 아니라고만 하고 있다. 향후 피해가 생기더라도 결국 입증은 고스란히 어민들 몫이 될 거고, 피해 구제 역시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권 상관없이 반대해 왔는데 갑자기 ‘정치공세’라니”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가 마을에 배치돼 노심초사하는 주민들의 우려는 ‘정치공세’쯤으로 취급되고 있다.
경북 김천 노곡리 이장 박태정씨(73)는 2017년 사드가 임시 배치됐을 때부터 사드 배치에 반대해왔다. 당시 마을에서 반대 집회를 열다가 경찰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지역 토박이인 박씨는 “이전 정부부터 일관되게 사드 배치를 반대해왔는데 사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식의 취급은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사드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근거로 든 환경영향평가 결과에 대해서도 믿지 못하겠다고 했다. 주민 참여를 배제하고 이뤄진 조사가 제대로 됐을 리 없다는 것이다. 그는 “현장 설명회도 일방 통보식으로 이뤄졌고 주민과 협의가 없었다”며 “어떻게 조사하는 건지 자세히 알고 싶었지만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해 항의했더니, 주민은 조사에 참여 의사가 없다며 빼고 조사를 진행했다”고 했다.
사드 배치 후 요청한 주민건강 역학 조사를 거부당한 것도 정부를 불신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그는 “2019년부터 암환자가 발생해 10명 돌아가셨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지 않나”라며 “정부·지자체에 역학조사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도 안전하다고 믿고 싶은데 무작정 ‘괜찮다’고만 하니까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박씨는 “정치인들은 현장에 와보지도 않고 괜찮다고만 하는데 정작 사드 배치로 피해를 보는 것은 이곳에 사는 주민들”이라며 “정치인들에게 좀 와서 살아보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5년 전 120명 남짓이던 노곡리 주민은 현재 100여명으로 줄어들었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령이라 다른 곳으로 떠날 생각도 하지 못한다고 한다. 사드가 실전 배치되면 어떻게 하겠냐는 물음에 박씨는 “다른 방법이 없다. 우리 100명 남짓 죽는 것을 정부가 눈 하나 깜짝하겠느냐”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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