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경찰제 2년… “자치경찰 업무만 있고 자치경찰관은 없다”
조직·인력까지 이원화 해 무늬뿐인 이원화 모델 탈피해야
정치적 중립 문제도 해결해야
“완전한 지방자치 경찰 시대라면, 내가 즉각 (대구경찰청장을) 파면했을 겁니다.”
홍준표 대구시장, 6월 17일 소셜미디어(SNS)
“현재 자치경찰제는 누가 봐도 기형적이다. 전혀 인사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인사할 때가 되면 1장짜리 결재 문서가 온다. 이런 상태에서 (자치경찰을) 지휘·통솔할 수 없다.”
오세훈 서울시장, 2022년 11월 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질의 中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비대해진 경찰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전국에 도입된 자치경찰제도가 내달 1일 2주년을 맞이한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자치경찰 업무만 있고, 자치경찰관은 하나도 없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 안팎에서는 조직·인력까지 분리·독립시키는 ‘이원화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업무·지휘 체계 바꾸면 뭐하나... 인력·구성 그대로”
2021년 7월 1일 시행된 자치경찰제는 경찰 업무를 자치경찰·국가경찰·수사경찰로 분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에 따라 자치경찰은 순찰과 방범활동, 여성·아동·노약자 보호, 가정폭력 예방, 교통단속 등 주민 일상생활을 둘러싼 치안업무를 맡게 됐다. 수사경찰은 기존 수사 업무를 하고, 국가경찰은 나머지 기능인 정보·보안·외사·경비 등을 담당한다. 지휘·감독도 자치경찰은 시·도지사 산하 자치경찰위원회(자경위), 수사경찰은 국가수사본부장이 하고 국가경찰은 기존처럼 경찰청장이 하도록 바뀌었다.
그러나 업무와 지휘·감독 체계만 조정됐을 뿐 조직·인력 구성은 그대로여서 2년 동안 자치경찰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시행 중인 자치경찰제는 모든 경찰관이 ‘국가경찰’ 신분을 유지한 채 자치경찰과 국가경찰 업무를 동시에 한다. 경찰관 입장에선 지휘·감독자만 늘어나고, 기존에 해오던 업무를 그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한 경찰관은 “일할 때 자치경찰 사무인지, 국가경찰 사무인지 분류를 잘 하지 않는다”며 “일하는 건 그대로다. (일할 때) 바뀐 게 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특히 자경위는 사실상 형식적 기구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명목상 시·도지사는 자경위를 통해 자치경찰을 지휘할 수 있는데, 지휘할 조직과 인력은 전무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자치경찰 업무를 하는 일선 지구대·파출소는 정작 국가경찰 업무를 하는 112종합상황실 소속이어서 시·도지사가 직접 지휘할 권한이 없다. 사실상 각 시·도경찰청을 통해야만 한다. 비대해진 경찰 권한을 견제하겠다는 자치경찰제 도입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이다.
지난 17일 대구시와 경찰이 퀴어축제 불법성을 두고 다르게 판단하면서 마찰이 빚어지자 홍준표 대구시장이 “완전한 지방자치 경찰 시대라면, 내가 즉각 (대구경찰청장을) 파면했을 것”이라고 한 것도 자치경찰에 대한 지자체 지휘 권한이 미미하다는 현실을 상징한다.
이러한 문제를 여실히 드러낸 것이 ‘핼러윈 참사’다. 경찰법에 따르면, ‘지역 내 다중운집 행사 관련 혼잡 교통 및 안전 관리’는 자치경찰 업무다. 이태원 일대에 1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릴 것에 대비해 안전대책을 세워야 하는 주체는 서울시장을 필두로 한 서울시 자경위인 것이다.
그러나 자경위가 지휘할 경찰 인력과 조직은 없다. 이태원 관할인 서울 용산경찰서와 산하 지구대·파출소를 지휘할 권한도 없다. 결국 서울시 자경위는 참사 책임에서 사실상 자유로워졌고, ‘경찰 책임론’만 부각된 여론 속에서 관련 수사가 마무리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작년 11월 핼러윈 참사의 책임소재가 논란이 됐던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질의에서 자치경찰제를 두고 “지자체장이 어떤 사람과 어떤 사람 중에 선택해서 인사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찰청에서 결정된 것을 사인해달라고 보내오는 형국”이라며 “그런 상태에서 지휘·통솔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서울시 자치경찰위원장도 지난 3월 서울시 행정자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현 제도로는 자치경찰 사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 ‘이원화 모델’ 검토 중인 경발위…’정치적 중립’이 숙제
경찰 안팎에선 업무와 지휘·감독뿐만 아니라 인력·조직도 분리시키는 ‘이원화 모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자치경찰과 수사경찰 인력을 분리하고, 시·도지사에게 알맞은 권한을 부여해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자는 것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도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 ‘국가경찰로부터 이원화된 자치경찰제 실시’를 국정과제로 삼았다. 현재 경찰제도발전위원회(경발위)가 관련 권고안을 만들기 위해 논의를 지속하고 있다.
경발위는 자치경찰 업무를 할 경찰관들을 지자체 소속으로 넘기고, 시·도지사가 자경위를 통해 이들을 지휘·감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를 위해 시·도지사에게 자치경찰 인사권을 일부 넘기는 방안도 고려 대상으로 전해졌다.
다만 넘어야 산은 있다. 선출직인 시·도지사가 자치경찰에 대한 인사권과 지휘권한을 모두 갖게 될 경우 ‘정치적 중립’ 논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나올 경발위 권고안도 시·도지사와 산하 자경위 지휘권과 인사권을 어느 수준까지 인정할 것이냐가 핵심인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시·도지사가 자경위원장을 지휘하고, 위원장이 경찰을 지휘하면 결국 시·도지사가 경찰을 직접 지휘하는 것과 똑같아 진다”며 “자경위가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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