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진 내연녀 방치해 사망…국토연 前부원장 징역 8년 확정

뇌출혈 증세로 쓰러진 내연녀를 7시간동안 방치해 숨지게 한 국토연구원 전 부원장이 살인 혐의 유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29일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에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인과관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A씨는 국무총리 산하 경제사회연구회 소관의 정부출연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의 부원장이었다. 그는 같은 기관 소속 직원인 B씨와 내연 관계를 맺고 있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연합뉴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19년 8월 오후 10시쯤 세종시에 있던 자신의 집에서 B씨에게 업무상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성적인 행위를 가졌다. 한시간 뒤인 오후 11시, B씨가 돌연 뇌출혈로 구토를 하는 등 이상 증세를 보였다. A씨는 119 신고 등 별다른 구호조치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거동이 불가능하고 의식이 없는 B씨를 3시간 뒤 자신의 집 밖으로 끌고 나오면서 B씨를 바닥에 넘어뜨리는 등 상태를 악화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이후 B씨를 B씨의 승용차 뒷좌석 레그룸(자동차 시트에 앉았을 때 다리가 위치하는 공간)부분에 4시간 넘게 방치했다. A씨는 이튿날 오전 6시30분경 B씨를 응급실에 데려갔으나, B씨는 이미 오전 4∼5시경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A씨가 마땅히 해야 하는 구호 조처를 제대로 하지 않아 B씨가 숨졌다며 이듬해 12월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로 기소했다.

1심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B씨가) 집 안에서 구토한 뒤 의식을 잃고 코를 골았다는 A씨 진술로 미뤄 잠들었다고 생각하고 상태가 위중하다는 판단을 못 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구호 조처를 하지 않은 것과) B씨 사망 간 인과관계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그러나 항소심은 A씨에게 살인의 고의가 인정된다며 징역 8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피해자와의 내연관계가 드러나 자신의 명예나 사회적 지위가 실추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피해자를 그대로 내버려뒀다”면서 “미필적인 살인의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쓰러진 피해자를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위장하려 시도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피해자가 의식을 잃었을 때 A씨가 119에 신고해 응급실로 옮겼더라면 살 수 있었는데도 그대로 방치해 사망의 결과를 초래했다”며 “A씨의 구호조치 의무 불이행과 피해자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A씨는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지만 대법원 역시 살인죄를 유죄로 인정한 2심 판결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장혜진 기자 janghj@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