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서 사진 잘못 찍어도 처벌?”…중국 반간첩법 확대에 현지 교민 등 혼란

이종섭 기자 2023. 6. 29. 16: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관광객들이 몰려 있다. 베이징│이종섭 특파원

“이제 중국에서는 여행 다니면서 사진도 마음대로 찍으면 안 되는 건가요?”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는 교민 A씨는 최근 한국 외교부가 중국 체류 국민들에게 발송한 유의 안내 문자를 받고 걱정이 앞섰다고 했다. 외교부는 지난 26일 중국 체류 국민들에게 “7월1일부로 중국의 반간첩법이 강화 시행되는 바 우리와의 제도·개념 등의 차이로 예상치 못한 피해가 생길 수 있으니 유의 바란다”며 관련 공지 내용이 담긴 주중 한국대사관 홈페이지 링크를 안내 문자로 발송했다.

다음달 1일 적용되는 중국의 개정 반간첩법 시행을 앞두고 현지 교민과 기업인 등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법 조항과 적용 범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개정된 반간첩법을 보면 법 조항이 기존 5개 장 40개 조항에서 6개 장 71개 조항으로 늘어났다. 그만큼 반간첩법의 적용 범위가 광범위해진 것이다.

특징적인 주요 내용을 보면 기밀 정보 및 국가안보와 이익에 관한 문건·데이터 등에 대한 정탐·취득·매수·불법제공 등을 간첩 행위의 범위에 포함시켰다. 또 국가기관이나 기밀 관련 부처·핵심 정보 기반시설 등에 대한 촬영과 사이버공격, 간첩조직 및 그 대리인에 대한 협력도 간첩 행위가 된다.

국가안보에 관한 정보를 불법 취득·제공하거나 국가 중요 시설을 촬영하는 행위는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금지하고 있다. 문제는 중국의 법 조항과 처벌 대상을 판단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중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이나 영업 활동을 하는 외국 기업, 외신 기자 등의 활동이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자칫하다가는 간첩 행위와 상관 없는 일상적인 정보 취득 행위도 간첩 활동으로 몰려 처벌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경없는기자회는 이와 관련해 “7월1일 시행되는 중국의 반간첩법 확장판은 최대 종신형을 적용하며 거의 모든 언론 활동에 적용될 수 있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정의돼 있다”면서 “이는 언론인들을 더욱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현지에서 생활하는 교민들도 반간첩법 확대 시행에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인다. 한 교민은 “국가안보와 이익에 관련된 것이 무엇인지는 매우 광범위하고 결국 법을 해석하고 적용할 권한은 중국에 있다”며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조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법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반응도 있다. 또 다른 교민은 “중국에서 사진 촬영이나 인터넷 검색만 잘못해도 잡혀가는 것처럼 얘기하는 건 지나친 공포 조장 같다”며 “이미 2014년부터 반간첩법이 시행돼 왔기 때문에 법이 조금 확대됐다고 해서 일상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기업들도 법 시행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당장 기업 활동에 문제가 될 만한 큰 영향이 있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현지 법인을 운영하는 한 국내 대기업 관계자는 “법 개정에 따라 직원들에게 관련 내용을 참고용으로 공지했다”면서도 “현지 고위직들과 접촉하고 민감한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 기업들의 활동은 위축될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일반적인 기업 활동까지 문제가 될 여지는 크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마오닝(毛寧)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8일 정례브리핑에서 개정 반간첩법 시행에 대해 “모든 국가는 국내 입법을 통해 국가 안전을 수호할 권리가 있으며 이는 각국에서 통용되는 관행”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반간첩법을 외신기자의 취재 활동 등과 연관 지을 필요는 없다”며 “법과 규정에 부합하는 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중국이 국가안보 등을 이유로 각종 법 집행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은 반간첩법 확대 시행에 대한 우려를 더한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28일 ‘중화인민공화국 대외관계법’을 제정해 다음달 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는데 이 법에는 ‘중국의 주권과 안보, 발전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 상응하는 반격과 제한 조치를 취할 권리를 갖는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또 대외관계법 제8조는 ‘모든 조직 또는 개인이 대외 관계에서 국익을 해치는 활동에 종사하는 경우 법적 책임을 추궁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싱가포르경영대 헨리 가오 교수는 “제재와 비자 발급 거부·개인 자산 동결과 같은 법적으로 뒷받침된 보복 조치에 초점을 맞췄던 반외국제재법에 비해 대외관계법은 더 넓고 포괄적”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분석대로라면 중국이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갈등을 계기로 비공식적으로 시행해온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과 같은 대외 보복성 조치들을 앞으로 더 과감하게 취할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