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책임 논란]③ ‘도현이법’ 국회 논의서 ‘제조사’ 편 든 공정위… ‘소비자 보호’ 잊었나

윤희훈 기자 2023. 6. 2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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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급발진 차량 결함 입증 책임 ‘피해자→제조사’ 전환 추진
공정위 “신중 검토”라며 사실상 반대
민사소송 원칙 위배, 외국 입법례 없다는 게 반대 이유
국회·전문가, 공정위 역할에 대한 비판 쏟아내
2022년 12월 강원도 강릉에서 발생한 급발진 사고. /조선DB
“급발진 사고의 원인을 소비자가 입증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어렵지 않나. 사고 입증 책임은 제조업자가 지는 게 맞다고 규정할 필요가 있다.” (박성준 국회의원)

"전부 다 제조업자한테 책임을 지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큰 급격한 변화이기 때문에 더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결함의 인과관계를 제조업자가 입증하라는 입법례는 (외국에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윤수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입법례가 없다는 말을 계속 하면 안된다. 우리가 입법례를 만들 수도 있다. 현재도 급발진 사고 입증 책임은 소비자에게 있지 않나?” (윤영덕 국회의원)

“기본적으로 그렇다.” (윤 부위원장)

“자동차에 대한 모든 자료를 갖고 있는 제조사가 입증 책임을 하는 게 훨씬 더 낫지 않나? 피해자가 입증 책임을 통해 밝혀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 않나?” (윤 의원)

“당연히 제조사가 그런 자료를 다 갖고 있으니 (수월하다). 그런데 민사소송에서 입증 책임은 피해자가 부담을 하는 게 원칙이다.” (윤 부위원장)

2023년 6월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 회의록 발췌

자동차 급발진 사고의 발생 원인 입증 책임을 피해자가 아닌 제조사가 지도록 하자는 논의가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소관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신중 검토’ 의견을 제시하며 소비자보다는 제조사 편에 선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신중 검토는 당장은 반대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서다. 공정위의 핵심 업무는 경쟁 촉진과 소비자 보호다. 국회에서는 공정위의 소극적인 행보에 대해 “직무유기”라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29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는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허영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3건의 제조물 책임법 일부 개정안이 올라와 있다.

현행 제조물 책임법은 피해자가 ‘제조물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제조물을 공급할 당시에 해당 제조물에 결함이 있었고, 그 결함으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17년 개정으로 과거보다 소비자의 입증 책임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실효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불시에 발생하는 급발진 상황에서 사용자가 ‘정상적으로 사용 중’이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박용진 의원은 “자동차와 같은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는 제조물의 경우 피해자가 결함을 증명하기란 불가능하다”며 “제조업자가 손해배상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해당 제조물을 공급할 당시 결함이 없었고 그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고 입증 책임을 제조사에게 부과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우택 의원의 개정안은 블랙박스 영상 등을 제출할 경우 제조사가 결함 입증을 책임지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허영 의원이 낸 개정안은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법원의 자료제출명령을 도입해 제조업자가 영업비밀이라고 하더라도 결함 증명에 필요한 자료 제출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세부적인 방향은 다르지만 급발진 사고의 결함 입증 책임을 제조사에게 져야 한다는 기본 취지는 같다.

국회에서 급발진 사고의 결함 원인 입증 책임을 피해자에서 제조사로 전환하자는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작년 말 강릉에서 발생한 급발진 사고가 널리 알려지면서 국민의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강원도 강릉에서는 60대 여성이 몰던 티볼리 차량이 빠른 속도로 도로를 질주하다 지하통로에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운전자였던 60대 여성은 크게 다쳤고, 차에 함께 타고 있던 12세 손자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사고차량 블랙박스에는 손자에게 브레이크가 안된다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녹음돼 있었다.

당시 사고로 아들 도현군을 잃은 아버지 이상훈씨는 국회에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시 ‘결함 원인 입증책임 전환’ 제조물책임법 개정에 관한 청원을 올렸다. 이씨는 청원에서 “자율주행 시스템이 적용되며 전동화되는 자동차에서 끊임없이 발생되는 급발진 의심 사고 시 소프트웨어 결함은 발생한 후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며 “그런데 현행 제조물책임법은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 시 차량의 결함이 있음을 비전문가인 운전자나 유가족이 입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 시 결함 입증책임 전환과 급발진 사고가 더 이상 발생되지 않도록 제조사의 기술적 대책 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월 23일 국회에 올라온 청원은 엿새째인 2월 28일 청원 정수인 5만명을 채웠다. 급발진 사고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피해자에 대한 추모 열기가 청원으로 몰렸던 것이다.

(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 윤수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법안심사 제2소위원회에서 회의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2023.1.18/뉴스1

국회 정무위원들은 대체로 청원의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 국민 청원의 뜻을 수용해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이 나오던 제조물책임법 개정안이었지만, 돌발 변수를 만났다. 바로 공정위였다. 정부 측 대표로 법안소위에 나온 윤수현 공정위 부위원장은 ‘신중 검토’ 의사를 피력했다. “민사 소송 원칙에 위배된다”는 게 반론의 큰 줄기였다.

윤 부위원장은 “급발진 손해배상 책임 관련 입증 책임 완화라는 취지에는 공정위도 공감한다”면서도 “민사소송의 기본적인 대원칙인 입증책임 분배의 공평성 부분에 대해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에 윤한홍 법안소위원장이 “공정위는 전반적으로 찬성이라는 것인가?”라고 되묻자, 윤 부위원장은 “법원의 자료제출명령제도 도입 부분을 제외하고는 수용이 곤란하다는 입장”이라고 답했다.

윤 부위원장의 답변에 정무위원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강훈식 의원은 “소비자를 보호하는 게 위원회의 중요한 사명이고 목적”이라며 “급발진 피해자들이 오늘 논의를 보면 ‘(공정위가) 소비자를 보호한다’고 인식하기에 부족할 것”이라고 했다.

최종윤 의원은 “앞으로 기술이 고도화된 제조물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패러다임 자체를 변환해야 한다”며 “지금처럼 대처하면 공정위의 직무유기다. 신중 검토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해달라”고 했다.

윤 소위원장은 “국토위의 논의를 보니 사고기록장치 자료를 개방하는 방법, 페달용 블랙박스를 자동차 제조회사가 설치를 하고, 자동차 구매 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권고했다”며 “이러한 조치라도 이뤄지려면 공정위가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의원들의 계속되는 질타에 결국 윤 부위원장은 “더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문제 해결 방안을 찾아보겠다. 더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라고 한 발 물러섰다.

전문가들도 공정위의 핵심 기능이 ‘소비자 권익 보호’에 있다며, 생각의 전환을 촉구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 보호를 위한 입법에 반대하는 공정위 행태를 보면 기관의 존재 의미를 망각한 것으로 보인다”며 “기술 고도화 시대 소비자와 제조사의 정보 격차 등을 고려했을 때, 동등하게 두고 제도를 운용하겠다는 것은 소비자를 보호하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급발진 등 사고 차량의 결함 입증을 제조사에 전적으로 부과할 경우, 상당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기에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정위 관계자는 “급발진 외에도 다양한 유형의 차량 사고가 있는데, 이러한 사고에서도 이용자가 차량 결함을 주장할 경우, 제조사로선 결함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야만 한다”라며 “이러한 기업의 비용은 차량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고, 소비자 다수의 비용 증가라는 결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공정위 관계자도 “2017년 제조물 책임법을 개정하면서 결함 추정 요건을 상당 부분 반영했다. 외국에서도 우리의 법을 보고 따라올 정도”라며 “피해자의 입증 책임 요건을 완화하거나, 제조사에 자료 제출 의무를 부과하는 수준의 법 개정은 충분히 수용할 수 있지만, 아예 입증 책임을 제조사로 전환하는 것은 민사소송 법 체계와 충돌한다”고 했다.

현재 공정위는 차량 급발진 사고와 관련해 피해자의 입증 책임을 완화할 필요가 있는지 등을 검토하기 위해 제조물 책임법 운용 실태조사에 관한 연구용역을 발주한 상태다. 공정위 관계자는 “연구 용역을 통해 소비자의 입증 책임 완화 방안을 살펴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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