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 차량 막은 혐의로 ‘징역 위기’ 놓였던 태국 시위대 ‘무죄’
3년 전 태국 민주화 시위 당시 왕비의 차량 행렬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활동가들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29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태국 방콕형사법원은 전날 활동가 에까차이 홍깡완 등 5인이 “수티다 왕비의 차량 행렬에 해를 끼치거나 방해할 계획을 세웠다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군주제 개혁을 요구하는 민주화 시위가 한창이던 2020년 10월14일 방콕에서 수티다 왕비와 디빵꼰 왕자가 탄 리무진의 이동을 방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당시 수티다 왕비와 디빵꼰 왕자는 외부 행사 참석차 왕궁을 나선 상황이었다. 에까차이 등은 왕실 차량을 향해 시위대가 저항의 상징으로 활용한 ‘세 손가락 경례’를 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이들에게 적용된 조항은 왕비의 자유를 방해하는 어떠한 종류의 폭력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한 형법 제110조다. 이를 어길 경우 최소 16년, 최대 무기징역까지 처해질 수 있다. 만약 이 같은 폭력이 왕비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릴 경우 사형까지도 가능하다. 이는 소위 ‘왕실모독죄’(형법 제112조)보다도 처벌 수위가 높다. 왕을 비롯한 왕실 구성원, 왕가의 업적 등을 모독하는 경우 최고 형량은 징역 15년이다. 이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한 처분을 두고 군주제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강경 진압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 바 있다.
검찰은 이들이 왕비와 왕자의 차량이 지나갈 예정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동료 시위대와 함께 길을 막으려 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검찰은 피고인들이 경찰관들과 몸싸움을 하며 시위대에게 도로에 앉아 통로를 막으라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활동가들은 이 사건 자체가 잘못됐으며, 왕실 차량 행렬이 지나가리란 점을 알지 못했고 차량을 봤을 때 사람들에게 비키라고 전달했다고 반박했다.
법원은 활동가들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해당 지역에 차량 행렬이 있을 것이라고 대중에 알리는 명확한 발표가 없었고, 경찰이 차량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어 이들이 행렬이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또한 당시 현장 경찰은 “군중들에게 길을 비켜주라고 말하면서 해당 차량에 왕비가 탑승하고 있다고는 알리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법원은 “시위대가 경찰이 집회를 해산시키려는 것으로 착각해 잠시 길을 막았지만, 차량 행렬이라는 점을 깨닫자 즉시 물러났다”며 이 사건이 의도적인 방해가 아니라 의사소통 오류 때문에 발생한 것 같다고 결론지었다.
이번 판결은 왕실과 관련된 사건에서 민주 세력이 드물게 거둔 성과라는 평이 나온다. 판결이 나오자 법정에는 환호와 박수가 터졌다고 AP는 전했다. 피고인 중 한 명인 에까차이 홍깡완은 “사법부의 정의로움과 우리가 사법체계에 의지할 수 있다는 점을 늘 믿었다”고 말했다. 분꾸에눈 빠오톤은 “판사가 결론을 발표하자 우리 모두 우리의 믿음과 결심이 입증됐다는 안도감을 느꼈다”고 CNN에 밝혔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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