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판타지에 천착하는 김태호 PD를 위한 고언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김완선을 좋아한다. 전성기 시절에 보여준 그의 독보적인 무대는 음악, 춤, 문화를 몰라도 누구에게나 충격을 줄 수 있는 시대를 앞서간 수준이었다. 그 이후 오랜만에 SBS 예능 <불타는 청춘>에서 만난 무대 밖 김완선은 사려 깊고, 배려가 몸에 밴 다정함과 우아함이 깃든 인간적 매력을 보여줬다. tvN 예능 <댄스가수 유랑단>은 K-컬처의 세계적 인기가 일상이었던 세대에게 이런 김완선이라는 걸출한 아티스트의 존재, 매력적인 캐릭터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댄스가수 유랑단>을 만든 김태호 PD는 언제나 기대를 갖게 만드는 기획자다. 그는 특유의 실험정신과 대중적 감각으로 아무도 본 적 없는 예능의 길을 개척한 바 있다. 현존하는 예능 장르의 서사적· 정서적 특성, 가능성, 작법 모두 그(<무한도전>)에게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무한도전>이 전설이 된 데는 트렌드를 읽는 그의 감각과 취향이 한몫했다. 흥미로운 것은 힙스터로 남지 않고, 대중에게 다가가는 법을 안 다는 데 있다. 2010년대 중반 여기저기서 흐르던 1990년대 바이브에 대한 수요를 '토토가'로 받아들여 꽃을 피웠고, 트로트의 시대에 '유산슬'로 재기에 성공했다. 이후 '환불원정대'와 '싹쓰리' 등 좋은 결과를 만들어왔다.
또한 학습욕구도 강하다. <무도> 이후 예능의 다음 페이지를 찾는 실험 및 학습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웹예능과 리얼버라이어티의 캐릭터쇼를 접목하려는 시도, 유재석이 아닌 이효리와의 호흡, 예능 선수들이 아닌 유튜버들과 손을 잡은 여행예능 등 자신이 쌓은 성공 공식에 변주를 가미했다. 그런데 성공 사례가 점차 쌓이면서 드러나는 양상은 실험과 학습의 결과가 정반합으로 나아가기보다 과거 회귀적인 결론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댄스가수 유랑단>를 보고 있으면 '환불원정대' 이전에 리얼버라이어티라는 새로운 예능 장르를 정립한 2007년의 <무한도전>이 떠오른다. '거꾸로 말해요 아하' 코너가 서로 물고 물어뜯는 캐릭터쇼의 기틀을 다졌다면, 방송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 예능이 우리의 이웃처럼 현실에 밀착해 친밀하게 다가오는 '리얼버라이어티의 개념'을 정립한 계기는 '하나마나 특집'이었다. 시청자들의 사연에 화답한 멤버들이 제작진이 준비한 길바닥, 유치원, 결혼식장, 각종 지역행사 등등 변변한 음향장치, 무대조차 없는 곳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올라가 깜짝 공연을 펼쳤다.
<댄스가수 유랑단>도 한때 아레나에서 공연하던 가수들이 지역 체육관, 주차장, 버스킹 무대에서 흥을 돋운다. 감히 예상치 못한 낮고 특이한 무대에서의 게릴라 공연부터 대학축제까지 판을 다양하게 벌이고, 가는 곳마다 사연이 이어지는 열렬한 환호에 충전되는 감동 코드까지 그 빌드업이 '하나마나 특집'과 매우 유사하다.
'추억' 또한 캐릭터쇼의 생명력이 다한 <무도>의 후반부를 지탱한 동력원이었다. 이 추억 여행은 또래 세대 시청자들의 위안과 교감의 장을 마련했다. 2015년 연말 '토토가'에서 시작한 역전의 용사들이 다시 뭉쳐서 그 시절의 감각과 모습을 찾아가는 올드보이 귀환스토리는 사실상 <무도>의 마지막 히트상품이다.
문제는 리얼버라이어티의 전성시대에는 직캠과 SNS, 유튜브 아카이브가 지금과 같지 않은 완전 다른 시대였다. 당시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마나 특집은 '쇼킹'한 사건이었다. 추억을 복구하는 음악 예능 시리즈는 '토토가 시리즈', <놀면 뭐하니?>의 여러 음악 특집을 통해 2015년부터 매년 선보이던 이벤트다.
그런데 <댄스가수 유랑단>은 그때의 문법을 차용하면서 그 사이 생긴 시대 보정이나 차별화는 더 큰 추억과 더 큰 감동으로 덮는 것으로 넘어간다. 한때 <무도>의 경쟁 프로이자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불후의 명곡>에서 봄직한 자막과 리액션으로 감동과 추억을 강조하고, 오랜 팬들의 눈물과 응원을 더해 감동의 깊이를 증폭시키려고 한다.
웹예능과 방송 예능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으로 시작한 <놀면 뭐하니?>는 당시 TV를 점령했던 트로트를 <무도>식 음악 예능의 스토리텔링과 결합시키며 반응이 터졌다. 또한 음악예능에 성장 서사를 가미한 <무도>의 '가요제' 특집들을 리바이벌하면서 활로를 열었다. 물론, 이 또한 누구나 레시피를 안다고 맛집이 될 수 없다. 캐스팅의 힘, 자신의 아카이브에서 꺼내온 점이라는 데서 오리지널리티가 없는 것 또한 아니다.
하지만 음악이란 소재와 추억이란 감성, 그리고 <무도> 식 성장서사를 결부한 음악 예능의 반복된 출현은, 2023년인 지금도 해답을 늘 <무도>에서 찾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캐릭터쇼의 재미를 간소화해 홍현희 1인으로 갈음하는 변화가 있긴 했으나, 다나까로 상한가를 친 김경욱, 로꼬, 라이머, 싸이, 위너, 박재범 등이 함께 판을 벌리는 데 동참하는 캐스팅 전략은 <무도>식 음악 예능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김완선의 무대를 다시 볼 수 있어서 좋고 이효리, 보아, 엄정화의 무대가 모두 반갑다. 추억의 명곡들은 자동으로 미소를 짓고 몸을 들썩이게 만든다. 오랜 팬들의 진심, 다시 무대를 찾은 톱스타의 귀환 스토리는 감정이입이 쉬운 보편성이 있다. 하지만 비슷한 장면과 감정 유도가 프로그램 안에서도 계속 반복되고 있을뿐더러 프로젝트로 따져도 같은 콘셉트와 스토리텔링이 10여 년째 이어지고 있다. 과연 우리의 추억이 요즘 시대와 어떻게 조우할지 호기심과 긴장감 속에 무대에 오르고, 그 만남은 언제나 성공적이다. 즉, 중년의 판타지다.
언제까지 <무도>의 주머니에서 꺼내 쓸 수 있을까. 반가워하고 여전함에 감동하는 추억여행에 미소를 짓다가도 심심해진다. 음악으로 떠나는 추억여행도 좋지만 이제, <무한도전>을 추억하는 중장년층을 위한 방송이 아닌, <무한도전>에 충성하는 시청자들을 만들었던 이유인,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 실험 결과를 기대해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S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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