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비즈] 美 IRA ‘청정수소’ 보조금 지급하는데... “한국 인증제 서둘러야”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청정수소’에 대한 인증제를 조속히 도입하고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처럼 청정수소를 생산할 경우 세제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9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제4차 탄소중립 정책포럼’을 열고 국내 수소산업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이같은 내용을 논의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기업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수소는 오는 2030 탄소 감축목표(NDC)와 2050 탄소중립을 위한 필수 에너지원”이라며 “탄소배출량에 근거한 청정수소인증제를 빠르게 도입하고 수소 산업 생태계 육성과 관련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청정수소란 일반적으로 수소제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거나 현저히 적게 배출하며 생산된 수소를 말한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최근 주요 선진국은 청정수소 등급에 따라 인센티브를 차등 지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청정수소인증제를 도입한 미국은 청정수소의 최소 기준을 수소 제조 1t당 탄소배출 4t 이하로 설정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청정수소를 생산하는 경우는 수소 1kg당 최대 3달러, 관련 시설투자 시 최대 30%까지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
지난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제정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청정 수소를 사용하거나 대기 중 탄소를 포집한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세액 공제 혜택을 대폭 상향했다. 청정수소 인증제는 수소를 생산하거나 수입하는 등의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일정 수준 이하인 경우 청정수소로 인증하고,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제도이다.
올 들어 유럽연합(EU)도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최종 승인하고 본격적인 제도 시행에 들어간다. CBAM은 역내로 제품을 수입할 때 생산 과정에서 배출된 탄소량에 따라 인증서를 구매해 제출하는 제도다. EU는 오는 10월부터 수입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을 규제하는 이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기업에 제품 생산 때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보고하게 하고 이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1t당 10~50유로의 벌금을 부과한다. 이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EU가 야심 차게 마련한 ‘핏 포 55(Fit For 55)’ 정책 패키지의 핵심 법안 중 하나다. 이 정책은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탄소 배출량을 55%로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총 13개 법안으로 구성돼 있다.
영국도 녹색 산업을 구축하기 위해 적극적인 수소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영국 정부는 2030년까지 최대 10기가와트(GW)의 저탄소 수소 생산 능력을 목표로 하는 수소 로드맵을 발표했다. 2050년까지는 영국 에너지 소비량에서 수소가 약 20~35%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이런 목표에 따라 2억4000만파운드(3965억원)의 ‘탄소중립 수소 펀드’를 투입하며 ‘그린수소’ 생산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오는 2030년까지 정부와 민간 기업이 합쳐 110억파운드(18조1756억원) 이상 기금을 지원, 수소 등 에너지 확보에 나설 계획이다.
CBAM 적용 대상품목은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 등 총 6개 품목이다. 이 가운데 수소의 경우 현재 EU의 수입규모는 매우 낮은 수준이나 유럽 기후목표 이행으로 재생가능 수소 사용 급증이 예상돼 수소의 탈탄소화 위해서는 초기단계부터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내에서도 수소 같은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해 탄소중립 목표에 다가서야 한다는 건 대체로 합의된 의견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현 방안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이날 발표자로 나선 조홍중 단국대 교수는 “국내 주력산업인 반도체·석유화학·철강·시멘트 등은 탄소 감축이 어려운 난(難) 감축산업으로 사용하는 연료를 수소로 대체하는 것 외에는 실질적인 탄소중립 수단이 없다”며 “주요국은 이미 수소 등 청정에너지에 대한 자국산업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만큼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과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수소산업의 육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기업들 역시 청정수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김용학 롯데케미칼 수소에너지사업단 상무는 “수소 인프라 구축과 청정수소 시장 조성을 위해 초기에는 다소 완화된 기준을 적용해 제도를 시범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면서 “수소 공급과 수요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이후부터 단계적으로 청정수소 기준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소 생산 기업인 SK E&S의 권형균 부사장은 “2030년 NDC 달성을 위한 실질적인 대안은 블루수소”라며 “블루수소 산업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도록 청정수소인증제를 연내 시행하고 미국 등 주요국 수준의 과감한 인센티브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블루수소는 탄소 포집·저장 기술(CCS)을 활용해 추출 수소 생산 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인 수소다.
제후석 두산퓨얼셀 대표는 “특정 시간대에만 전력이 생산되는 재생에너지의 보급 증가로 기존 전력계통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며 “전력 계통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소터빈, 수소엔진, 수소연료전지 등의 무탄소 전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 대표는 수소 중심의 무탄소 전원의 확대를 위한 ‘청정수소입찰시장’ 마련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는 수소 또는 수소화합물(암모니아 등)을 연료로 생산된 전기를 구매·공급할 수 있는 제도로 수소발전사업자는 전력거래소의 수소발전입찰시장을 통해 한전이나 구역전기사업자 등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수소차 상용화를 추진하는 현대자동차는 ‘버스·트럭 수소차 전환 보조금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승규 현대차 전무는 “전기차 전환이 어려운 버스, 트럭 등 상용차는 수소를 주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며 “전기자동차와 같이 조기 전환에 따른 보조금 지원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정부에서 “청정수소 인증제와 청정수소발전 제도 등 국내 수소관련 정책을 빠른 시기에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가 적극적인 인센티브 지원을 통해 기업들이 해외 청정수소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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