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병 예방·고치려다 더 큰 병 얻는다…'약' 쉽게 복용해선 안돼

김누리 2023. 6. 29.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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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뇌혈관질환 환자 분석…"아스피린 예방목적 복용, 사망위험 ↑"
‘다제약물’ 10종 이상 먹는 사람 113만명
아스피린/사진=연합뉴스


노년에 들어 병을 예방하거나 고치기 위해 약물을 함부로 복용했다가는 되려 더 큰 병을 얻어 사망위험을 높일 수 있습니다.

심뇌혈관질환이 없었던 노인이 저용량 아스피린을 장기간 복용하면 오히려 뇌출혈 발생 후 사망 위험이 크게 높아진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재활의학과 김형섭 교수 연구팀은 55세 이상 나이에 심뇌혈관질환을 처음 앓은 306만명을 대상으로 아스피린의 일차 예방 효과를 분석한 결과를 오늘(29일) 밝혔습니다.

소염진통제인 아스피린은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등의 심뇌혈관질환을 겪은 환자들에게 재발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널리 쓰이는 약물입니다.

하지만 심혈관 건강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 심혈관질환을 예방할 목적으로 아스피린을 사용하는 데 대해서는 그 효용성을 두고 찬반 논란이 큽니다.

연구팀은 심혈관 질환이 발생하기 이전에 아스피린을 복용한 그룹(8천770명)과 복용하지 않은 그룹(1만7천540명)으로 나눠 17년(2004~2021년) 동안의 뇌졸중 발생 후 사망률을 비교했습니다.

이 결과 출혈성 뇌졸중의 경우 아스피린을 미리 복용한 그룹에서 심한 뇌 병변 장애의 위험이 높았습니다.

또한, 90일 이내 단기 사망률과 장기 사망률도 아스피린을 미리 복용했던 그룹이 대조군보다 각각 33%, 6% 높은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2018년 국제학술지 'NEJM'(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된 논문에서도, 65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 심혈관질환이 없었던 사람이 예방 목적으로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오히려 사망률이 14% 증가하는 것으로 관찰됐습니다.

이런 경향은 74세 이상 고령층에서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알약 이미지/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편 소화불량, 변비, 어지럼증, 식욕부진, 불면증, 우울감 등 여러 증상이 다양하게 생기는 고령 인구가 늘면서 증상을 약으로 해결하려다 다제 약물 복용자가 되어 노년 삶이 망가지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병을 고치려다 병을 더 얻는 현상입니다. 대개 새로운 증상을 추가 약물 복용으로 해결하려다 생기는 처방 연쇄 피해입니다.

6종류 이상 약물을 먹는 경우를 다제 약물 복용이라고 일컫습니다.

지난해 국감 자료에 따르면, 두 달 넘게 10종류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은 113만명으로 조사됐습니다.

이 중 75~84세에서는 다제 약물 복용이 열 명 중 한 명꼴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어디가 불편하면 당장 해당 장기 이름의 전문과를 찾는 의료 이용 행태가 있고, 진료받을 때마다 약 처방을 원하는 환자가 많아 새로운 증상이 생길 때마다 다제 약물 복용이 늘어가고 있다”며 “진료 시간이 짧아서 기존 사용 약제를 자세히 확인하기 어려워 비슷한 약물이 중복 처방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습니다.

알약 이미지/사진=게티이미지뱅크


환자도 의사도 다제 약물 복용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러 만성 질환을 앓는 82세 남성 환자 B씨는 고혈압, 골다공증, 우울증 병력이 있는 환자로, 4개 의료기관에서 총 12종의 약물을 처방받아 복용 중이었습니다.

이 환자를 대상으로 다제 약물 안전성 평가를 해보니, 골다공증 치료제는 제대로 복용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약물 간 상호작용에 의한 부작용 위험도 있었습니다.

또 특별한 증상 없이 계속 복용하는 알레르기 약 등도 발견됐습니다. 이에 처방 조정을 의뢰해 복용 약을 9종으로 줄였더니 다제 약물 부작용 위험이 현저히 낮아졌습니다.

B씨 사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시행하는 다제 약물 관리 사업으로 위험성이 개선된 경우입니다.

다제 약물 관리 사업은 고혈압, 당뇨병, 심장 질환 등 46개 만성 질환 중 1개 이상 질환을 보유하고, 정기적으로 10종 이상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의약 전문가가 약을 검토하고 정리해주는 사업입니다.

약사와 공단 직원이 가정을 방문해 복용약을 검토하고 정리하며, 중복 투약, 약물 부작용, 복용 방법 등을 상담 지도합니다.

‘먹는 약이 많은데 다 먹어도 되나?’ ‘처방약과 영양제를 함께 먹어도 될까?’ 등의 고민을 하는 환자는 다제 약물 관리 사업 참여를 국민건강보험(1577-1000)에 문의할 수 있습니다.

정희원 교수는 “명절에 오랜만에 찾은 부모님이 한 주먹 약을 드시고 있다든지, 약을 늘려서 계속 먹는데도 이전보다 부쩍 허약해진 것 같으면, 다제 약물 복용 부작용을 의심해봐야 한다”며 “장기 복용 중인 약물 종류가 많은 경우 대학병원 노년내과나 다제 약물 클리닉을 방문하여 적절성 평가를 받는 것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김누리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nu11iee9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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