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는 인기투표로 무엇을 금지할까

한겨레 2023. 6. 29.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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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누리집 갈무리

[왜냐면] 최종연

변호사·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실행위원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 먹는 ‘부먹’론자가 사회적 소수라면, 그 행위에 벌금을 매길 수 있을까? ‘부먹’론자는 소스에 찍어 먹어야 한다는 ‘찍먹’론자의 행복추구권을 본질적으로 중대하게 침해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또는 야간에 배달 오토바이 운행을 금지할지 여부를 인기투표로 결정해서 법으로 금지할 수 있을까? 야식을 시켜먹는 한 사람은 행복하겠지만 한밤중 주택가에서 배달 오토바이가 골목 사이로 지나가면 수백 명 주민은 밤잠을 설쳐야 한다. 타인의 권리를 조화롭게 존중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나는 평소 야식을 잘 시켜먹지도 않으니, 다수가 찬성하면 정부는 배달 오토바이 운행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출해야 할까?

이른바 인기투표로 기본권을 제한할지 논의하자는 다수의 발상과 충동을 억제하기 위한 기본적 질서를 규범화한 것이 ‘헌법’이라고 이해한다면, 부먹 처벌법과 야간배달 금지법은 위헌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집회와 시위에 관해서는 현재 인기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실은 ‘집회·시위 요건 및 제재 강화에 대한 의견을 들려주세요’라면서 △소음 기준 강화 △출퇴근 시간 금지 △심야·새벽시간 금지 △주거지역·학교·병원 인근 금지 △벌칙 강화 등 다섯 가지의 방안에 대해 6월12일부터 찬반 투표를 진행 중이다. 6월29일 현재 기준으로 규제 강화 찬성은 10만6792명, 반대는 4만5241명을 기록하고 있다. 찬반 대결 구도를 설치해놓고 ‘조화로운 방안’을 의견으로 남겨달라는 공허한 주문도 덧붙였다. 이것이 ‘인기투표’에 불과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규제 강화를 전제로 찬반을 조사할뿐더러, 여론조사 규제 여부는 차치하고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본질적 규제를 찬반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위 인기투표에 목적을 두고 있다는 것은, 지난 5월23일 윤석열 대통령의 집회·시위 강경 대응을 지시하는 발언 다음 날 바로 당정협의회에서 야간집회 금지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고, 최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일부개정안 두 건이 발의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은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옥외집회 및 시위를 금지하고, 관할 경찰서장이 야간집회·시위를 조건부로 허용할 수 있는 단서조항도 폐지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6월12일 대표발의하였다.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은 확성기, 북, 징, 꽹과리 등의 기계·기구를 사용할 경우 사용 일시와 종류, 대수, 예상소음도 등을 사전에 경찰에 제출해 허가를 받아야 하고 이를 위반하면 주최자를 1년 이하의 징역까지 처할 수 있는 집시법 개정안을 6월19일 대표발의하였다. 이론적으로는 볼륨을 높일 수 있는 스마트폰의 휴대도 규제하려면 규제할 수 있는 법안이다.

정부와 여당은 2009년과 2014년 각각 야간 집회, 시위금지 조항을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한 이래, 야간 집회·시위에 관해 새로운 기준이 입법되지 않아서 법률의 공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야간 집회·시위를 반드시 규제해야 한다고 판단한 사실이 없다. 민형기·목영준 재판관만 입법에 의한 야간집회 금지가 사전허가제가 아니라는 의견으로서 ‘어떠한 시간대에 옥외집회를 금지하는 것이…입법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을 뿐이다(2008헌가25, 2010헌가2). 더구나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야간집회를 금지하는 개정안은 일부 발의된 적이 있으나, 오후 11시부터 오전 7시까지는 새로운 시간대다. 2009년 헌법재판소 결정문에 따르면 이는 당시 러시아의 입법례다. 하필 이 시간대에 집회·시위를 전면 금지하는 것이 왜 타당한지, 우리의 사회경제적 생활상에 비춰 밤 11시부터는 집회·시위가 어떠한 해악을 끼치는지에 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다.

확성기 등 소음기구에 관한 규제는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가? 집회·시위를 현장에서 살펴보면 높은 소음을 유지하는 집회는 참가자들조차 오래 견디지 못한다. 역설적으로 가장 시끄러운 집회는 가장 소수의 참가자가 가장 성능 좋은 확성기를 설치해놓고 녹음된 음원만 틀어놓는 경우다. 이때 인근에 있는 반대편 집회가 사실상 무력화된다. 경찰은 과연 양쪽 집회의 조화로운 보장을 위해 항상 노력하는가?

유엔(UN)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2022년 연례보고서에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사회 운동의 가치와 중요성에 관해 공들여 진단한 뒤, ‘국가는 사회운동이 다양한 인구 집단의 관점을 표현하고 권리 증진을 지원하는 귀중한 활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국가는 이러한 행동을 통해 표현되는 메시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권고했다. 2030 부산 엑스포 유치도 좋지만, 다음번 2023년 집회 및 결사의 자유 연례보고서에도 대한민국의 이름을 올릴지 정부는 숙고해야 한다.

대통령실 국민제안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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