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망이 깎던 노인과 캐디 [마스턴 김 박사의 說]
김선우 마스턴투자운용 전략기획실장·산업공학박사
윤오영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에는 장인정신의 가치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저자의 아쉬움이 간결하게 담겨 있다. 살면서 지속적으로 되돌아보게 되는 수필과 유사한 상황이 얼마 전 있어 이전에 골프장에서 만났던 캐디와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국내 대부분의 골프장은 수요에 비해 골프장이 적어 팀 간 간격이 촘촘하기 때문에 게임의 원활한 진행, 안전사고 방지, 고객의 불만사항 응대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는 캐디의 존재가 중요하다. 그날은 이른 무더위와 햇볕이 강렬히 내리쬐는 과도하게 맑은 날씨였다.
플레이를 시작할 무렵인 아침 9시 20분엔 이미 기온이 올라가기 시작한 상황이었고 우리 앞에 플레이하시는 분들의 경기진행 속도는 다소 완만했다. 우리 팀은 40대 아저씨 아마추어 플레이어 4명으로 멤버 중 한 명이 허리부상에서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잔 실수가 많은 팀이었다. 예상보다 더운 날씨, 루즈한 경기 진행 등 자칫하면 짜증만 남는 날이 될 수 있어 여러 가지 면에서 캐디의 역량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었다.
결론적으로 그날 캐디는 평생 만나본 사람 중에 톱 3 안에 꼽힐 정도로 4명 모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4명의 지금까지 라운드 수를 합산하면 최소 500회는 넘을 테니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의 검증이라고 확신한다.) 캐디는 다른 팀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범위내에서 멀리건(mulligan, 다시 쳐볼 기회)을 적절히 제공했고, “135m이지만 오늘의 플레이를 보니 이번 홀은 8번 아이언을 잡으세요”, “프린지와 경사를 고려해서 7.5m 퍼팅인데, 꼭 지나가는 느낌으로 퍼팅하세요” 등 각 플레이어에게 정확하면서도 맞춤화된 조언을 제공했다.
또한 첫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예비 아빠에게는 준비된 육아 플레이어가 되기 위한 가이드와 짬짬이 골프를 치러 나올 수 있는 생활의 지혜를 함께 제공했으며, 허리 부상에서 회복 중인 플레이어에겐 부상 재발을 방지하는 힘 빼는 연습 팁을 알려주었으며, 미스 샷이 나올 때는 “절(사찰) 얘기를 했더니 공이 절로 가네요”, “힘내세요 조금 더 가면 홀이에요”와 같은 농담으로 좌절할 상황을 밝게 만들었다. 하나를 더 하자면 지정 캐디제가 없어 본인에게 직접적인 혜택이 없을 텐데 “다음에도 골프장에서 뵈었으면 좋겠다”는 마케팅 활동까지 잊지 않았다.
캐디의 역량과 업무 수행 내용을 재미없는 경영학 용어를 끌어다가 설명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캐디는 골프장과 골프에 대한 업무의 전문성을 축적해 홀마다 아마추어 플레이어가 발생시키는 현장의 문제에 정확하게 대응했다.
또한 본인의 업무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당일 골프장 운영)의 진행에 대한 판단과 함께 상황에 대응하는 유연함을 발휘했다. 고객을 주의 깊게 관찰해 과하지 않은 범위에서 최선을 다해 고객이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방망이 깎던 노인과 다른 점이 있다면 유머와 고객(예비아빠)을 향한 휴머니즘이 바탕이 된 커뮤니케이션으로 고객이 즉시 그의 역량을 인지하고 감동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방망이 깎던 노인의 무뚝뚝함으로 수필가는 명문을 남겼지만, 작가가 직접 노인에게 감사할 기회를 얻지는 못했다.
그날 캐디가 보여준 활동은 자본주의 체계에서 가져야 하는 이상적인 직업윤리와 철학의 본보기와도 같았다. 제목은 알아도 읽어본 사람은 소수라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실증적 논거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거의 대부분의 직업인에게 롤모델이 될 만하다. 전문성, 자존감, 유머, 커뮤니케이션, 공감, 하나하나가 탐나는 덕목이다. 아울러 베어크리크CC는 이렇게 뛰어난 인재를 놓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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