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연기’와 폭염 ‘열기’에 질식하는 미국…빈곤층 건강 위협

최서은 기자 2023. 6. 2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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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하늘이 캐나다 산불 연기의 영향으로 뿌옇게 물들어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하늘이 ‘연기’와 ‘열기’에 뒤덮였다. 미국 북부 지역은 캐나다발 산불 연기에 휩싸여 공기질이 ‘위험’ 수준에 처했고, 남부 지역은 기록적인 폭염으로 찌는듯한 더위에 짓눌리고 있다. 이는 열악한 주거환경에 거주하고 있는 미국 빈민층의 건강 위험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캐나다에서 발생한 산불의 짙은 연기로 인해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의 공기질지수(AQI)는 28일(현지시간) 337까지 치솟았고,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도 272를 기록했다. AQI 지수에 따라 6단계로 분류하는 공기질 등급에서 200이 넘으면 ‘매우 나쁨’, 300이 넘으면 최악인 ‘위험’ 단계에 해당한다.

현재 미시간·위스콘신·뉴욕·메릴랜드·펜실베니아주 등 미국 17개 이상 주에서 공기질 경보가 발령됐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은 1억2000만 명 이상으로, 미국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

당국은 취약계층에 야외활동을 피하고 가능한 실내에 머물 것과 외출 시에는 N95 마스크를 착용할 것을 권고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콘서트 등 야외 행사가 잇따라 취소되고 야외 수영장과 워터파크 등도 폐쇄됐다.

이는 캐나다에서 발생한 최악의 산불 때문이다. 캐나다 산불센터에 따르면 이날 전국적으로 약 500곳에서 산불이 나고 있고, 올해 산불로 이미 캐나다 국토 7만6000㎢가 불에 탔다. 이는 한국(남한) 면적(10만㎢)의 3분의 2 수준이다.

이 같은 공기질 악화는 특히 흑인 및 빈곤층의 건강 위험을 증폭시키고 있다. AP통신은 산불로 인한 연기가 그렇지 않아도 공기질이 좋지 않은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등 공장지대 근처의 대기질 상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일대에는 천식 발병률이 높은 빈곤층과 소수 민족 커뮤니티가 거주하는 임대주택이 밀집해 있다.

미국폐협회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인 디트로이트의 오염 정도는 전국에서 가장 나쁜 수준으로 나타났다. 거대한 정유소와 제조 공장이 위치한 디트로이트 지역의 빈곤율은 약 30%며, 이들 대부분이 흑인이다. 이날 디트로이트와 함께 전 세계 주요 도시 중 공기질이 나쁜 상위 5개 도시에 포함된 시카고 역시 인구의 약 29%가 흑인이다.

디트로이트에 거주한 지 몇년 안 돼 천식 진단을 받았다는 흑인 대런 라일리는 대기 오염 모니터링 단체인 ‘저스트에어’를 설립했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지역사회가 직면해온 문제”라면서 “특정 지역에서 태어났거나 특정 피부색을 가진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불평등한 대우를 받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텍사스 등 미국 남부 지역은 지난주 기온이 46도까지 치솟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기록적인 폭염과 싸우고 있다. 현재까지 온열질환 관련 사망자도 최소 13명에 달한다. 이날 텍사스를 비롯한 14개 주에는 폭염경보와 폭염주의보가 발령됐다. WP에 따르면 텍사스와 플로리다 등 미 남부 지역의 주에서 약 5900만명의 사람들이 극심한 폭염에 노출될 위험에 처해있다.

텍사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 북부에서도 10일 이상 이어지는 계속되는 폭염으로 최소 21명이 사망했다. 멕시코 몽클로바와 치와와는 각각 46도와 41도로 역대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과학자들은 기후위기가 멕시코에서 캐나다에 이르는 북미 지역 사람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기상 조건을 유발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하고 있다. 기후과학자 앤드류 데슬러는 “(산불 연기와 폭염 열기 사이에서) 어떤 독을 마셔야 할지 골라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 두가지는 서로 다른 현상이지만, 공통요인은 기후 변화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후변화로 인해 폭염과 산불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심각한 기후 문제에도 텍사스 등 보수적인 주에서는 거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WP는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지만, 의회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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