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선언 첫 제안’ 미국 부시 대통령도 반국가세력인가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 세력들은 핵 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하여 유엔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습니다. 북한이 다시 침략해 오면 유엔사와 그 전력이 자동적으로 작동되는 것을 막기 위한 종전선언 합창이었으며, 우리를 침략하려는 적의 선의를 믿어야 한다는 허황된 가짜평화 주장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8일 ‘한국자유총연맹 제69주년 창립 기념행사’ 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윤 대통령은 전임 문재인 정부를 사실상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객관적인 사실에 기반한 팩트일까.
먼저 ‘반국가 세력들이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는 발언을 살펴보자.
‘종전선언 노래를 제일 먼저 부른’ 사람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었다. 북한의 1차 핵실험(2006년 10월9일) 한 달 뒤인 2006년 11월1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부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한테 “북한과 종전협정을 체결하겠다. 나와 노 대통령, 김정일이 종전협정서에 함께 사인하자는 것”이라고 비공개로 제안했다. 직전 미국 중간선거에서 참패한 부시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에서 진전을 이뤄 국정 운영의 동력을 되살리려 했다. 부시 대통령은 종전선언과 평화조약을 명백히 구분하지 않았지만, 종전선언을 북핵 해결의 유인책으로 처음 화두로 꺼냈다.
부시 대통령은 2007년 9월7일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열린 아펙 정상회의 계기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한국전쟁을 종결시키기 위한 평화협정을 김정일 위원장 등과 함께 서명”할 수 있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같은 해 10월 평양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남북정상회담에서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 3자 또는 4자 종전선언을 추진한다고 합의했고, 이 내용이 담긴 10·4 선언을 발표했다.
남북관계가 얼어붙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종전선언 논의가 사라졌다. 문재인 대통령 때 종전선언이 다시 등장했다. 남북 정상은 2018년 4월 판문점선언을 통해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라고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종전선언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 선언'과 관련해 트위터에 “한국전쟁이 끝날 것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 서명은 없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조만간 실제로 종전선언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티브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2019년 1월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전쟁을 끝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이란 윤 대통령의 말은 사실일까. 그러나 종전선언으로 유엔사가 해체될지는 전문가마다 의견이 달라 단언하긴 어렵다. 해체를 주장하는 쪽은 “한국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미군 중심의 다국적군인 유엔사가 종전선언 이후 지속할 이유는 없다”고 주장한다. 이와 달리 “국제법상 유엔사는 종전선언·평화협정이나 한-미동맹, 전시작전권 전환 등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는 주장도 팽팽하다.
당사자인 유엔사는 종전선언으로 유엔사가 해체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유엔사는 2019년 4월 미디어데이에서 기자들에게 “한반도 안보 정세 변화에 따라 유엔사의 임무와 기능은 변화가 없다”며 “오직 유엔 안보리의 결의에 의해서만 유엔사 임무 및 기능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의 공식 입장도 “종전선언은 유엔사 지위를 포함한 현 정전체제의 법적·구조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였다.
문재인 정부, 유엔사가 모두 유엔사 해체 가능성을 공식 부인했는데, 누가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는 것일까.
윤 대통령은 “북한이 다시 침략해 오면 유엔사와 그 전력이 자동적으로 작동되는 것을 막기 위한 종전선언 합창”이라고 주장했다. 이 말은 반국가 세력들이 유엔사의 ‘전력 제공자’(Force provider) 임무를 막기 위해 종전선언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유엔사의 임무는 평시에는 ‘정전협정 관리자’이고, 유사시에는 ‘전력 제공자’다. 1953년 7월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때 16개국 참전국 대표들이 미국 워싱턴에 모여 “만약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면 다시 참전하겠다”고 약속한 ‘워싱턴 선언’을 발표했다. 별도의 유엔 결의 없이도 참전국들의 증원전력이 유엔사 지휘 아래 신속히 한반도에 투입됨으로써 유엔사가 유사시 ‘전력제공자’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유엔사의 전력 제공자 임무는 70년전 워싱턴 선언에 터 잡고 있다.
1953년 워싱턴 선언을 할 때는 참전국들은 한반도 정전체제가 지금처럼 70년 이상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봤다. 선언은 북한의 재침공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경고 메시지 발신 성격이 강했다.
워싱턴 선언은 국제법적으로 구속력도 없다. 한반도 유사시 한국전쟁 참전국들이 자국내 참전 반대 여론, 대량 인명 피해 같은 부담을 감수하고 실제 참전할지는 미지수다. 윤 대통령 말처럼, 유엔사의 전력 제공자 임무가 “자동적으로 작동”한다고 낙관하기 어렵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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