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 애스터 감독 “‘박하사탕’ 본 뒤 매일 비디오가게 다녀”
“<오발탄>이나 김기영 감독의 영화들은 시대를 앞서나갔어요. 이창동 감독의 작품은 문학적이면서도 미스터리적 이야기 구조를 잘 활용하죠.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 <마더>도 대단했는데 새 작품이 나올 때마다 전작을 뛰어넘는다는 게 더 놀라워요.”
29일 개막하는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7월5일 개봉)를 들고 내한한 아리 애스터 감독(36)의 한국영화 사랑은 유명하다. 28일 서울 광진구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난 그는 박찬욱, 홍상수, 장준환, 나홍진 감독 등을 언급하면서 “한국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밤을 새도 모자랄 것”이라고 애정을 표했다.
그는 “2000년대 초 <박하사탕>과 <그때 그사람들>로 한국영화를 알게된 뒤 매일 비디오가게를 드나들며 한국영화를 찾아봤다”고 말했다. 애스터 감독은 <미드 소마>를 그해 나온 최고의 영화중 하나로 꼽았던 봉준호 감독과 함께 1일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관객과의 대화에도 나선다.
아리 애스터 감독은 <유전>(2018), <미드소마>(2019) 단 두 편의 장편영화로 세계적 주목을 받게 된 연출자다. 두 작품은 독립영화 전문이면서도 지난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아카데미시상식을 휩쓴 미국의 제작배급사 에이(A)24가 제작했다. 눈썰미 좋은 제작사가 일찌감치 ‘픽’한 감독으로 호와킨 피닉스라는 당대의 명배우가 참여한 <보 이즈 어프레이드>도 에이24와 함께 했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오리지널 영화 만드는 게 갈수록 힘들어지는데 에이24사와 커리어를 시작한 건 운이 좋았다. 창작자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자유를 보장해주는 게 이 제작사의 장점이자 성장 이유”라고 말했다.
호러 장르인 전작들과 달리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중년 남성 보를 통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해 다루는 심리극이다. 일이 꼬이면서 엄마의 집에 가려던 계획이 어긋나며 벌어지는 악몽을 다룬 이 세시간짜리 영화에서 아리 애스터는 “가족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면서 쉽지 않은 관계다. 특히 유대인 가족에서 엄마는 신적 존재에 가깝다. 친숙하게 여겨지는 가족을 가족스럽지 않은 모습으로 바꿔봤을 때 어떤 인식에 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한 탐구를 담았다”고 소개했다.
애스터는 이 작품을 20대 초반이었던 12년 전 써놨다가 <미드 소마>가 끝난 다음 영화화를 준비했다. 그만큼 어릴 때부터 가진 문제의식이 녹아있는 작품으로 “내 개인적인 모습이 가장 많이 반영돼 지금까지 만든 영화 중 가장 아끼는 작품이 됐다”고 말했다.
부천영화제 쪽에 따르면 개막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이번 영화제 예매에서 12초만에 매진됐다. 애스터 감독은 이번 영화제에서 미국영화연구소(AFI)에서 공부할때 그의 멘토였던 배리 사바스와 함께 마스터클래스도 진행한다. 영화 역사학자이자 제작자인 배리 사바스는 부천국제영화제가 해마다 진행해온 환상영화학교의 학장 역할로 올해 한국을 찾는다. 올해로 16회를 맞는 환상영화학교는 한국뿐 아니라 대만, 인도네시아 등에서 선발된 30명의 신진 감독과 제작자들이 한달 동안 장르영화에 대해 배우고 한국 및 세계 영화인들과 만난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29일 저녁 부천시청 야외무대에서 배우 박하선, 서현우의 사회로 개막해 다음달 9일까지 열린다. 전세계 51국에서 온 262편의 장·단편을 부천시청·한국만화박물관·씨지브이(CGV)소풍·메가박스 부천스타필드시티 등에서 상영한다. 올해 배우 특별전의 주인공으로 최민식이 선정돼 <쉬리> <해피엔드> <파이란> <올드보이>등 직접 뽑은 대표작 12편을 상영하고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를 연출한 우치다 에이지 감독과 <미치고 싶을 때>의 피터 아킨 등 세계적인 감독들의 신작을 볼 수 있는 ‘매드 맥스’섹션을 비롯 <메탈 누아르>, <포크 호러> 등 개봉관에서 보기 힘든 강렬한 장르영화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일부 상영작은 오티티(OTT) 웨이브에서도 공개된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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