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PRO 칼럼]민간 벤처모펀드를 위한 작은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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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그간 키워온 벤처생태계를 한 단계 더욱 격상시키기 위해 올해 전 세계 그 어느 곳보다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이제는 정권의 주체와 무관하게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은 변화와 혁신, 청년과 스타트업, 일자리 창출과 미래성장동력을 만들어 내는데 있어 현재 자본주의 시대의 한 축으로 견고하게 자리잡은 대한민국 벤처생태계는 지금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그간 마중물 역할을 해오며 벤처투자 생태계 조성에 앞장섰던 정부는 관에서 민으로 그 중심축을 이전하려 하고 있으며 그 핵심 방안의 하나로 민간모펀드라는 화두를 제시함과 동시에 관련 법규(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 민간재간접벤처투자조합) 개정안도 입법 예고하여 이후 민간 참여가 확대된 고도화된 벤처생태계가 꽃피울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거대 담론과 방향성의 밑단에서 정작 생태계의 주역으로 참여한 많은 민간기관들과 투자자들에게 최근 거칠게 논의되고 있는 주제가 있다. 바로 “평가” 이슈다.
기본적으로 벤처투자는 초기기업이 투자 대상이며, 고위험 고수익 상품의 범주에 속하고 또한 장기투자다. 이에 상장사나 비상장 중견기업 대비 대상업체 및 시장에 대한 정보 비대칭이 상존하며 전통적인 시각의 회계적, 재무적, 사업적 판단이 쉽지 않은 영역이다. 이에 대부분의 자산들은 기업의 생애주기에 따른 가치의 변화를 시의적절하게 반영하기보다는 최초 취득원가로 투자자의 장부에 계상되며 상장 등의 가시적인 이벤트가 없는 한 최초 기록된 장부가로 유지되어 기업가치의 변동을 시의적절하게 판별하기 어려운 한계를 수반한다.
공정가치 vs 불공정(?)가치
2020년 금융감독원은 비상장주식에 대한 공정가치 평가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바 있다. 新금융상품 기준서에 따라 비상장회사 주식은 공정가치평가를 원칙으로 하나 취득원가평가를 허용하는 예외사항에 대한 기준서다. 추진배경으로는 공정가치평가를 위해 외부 평가 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평가비용 등으로 인한 경영부담 완화 및 외부감사 과정에서 공정가치 추정치에 대한 기업과 외부감시인간 의견 조율이 어려운 점이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이었다.
대상 회사의 경영과 관련하여 공정가치 측정을 위해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없는 경우, 가치 변동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없는 것을 전제로 자산총액이 120억 미만, 설립 후 5년이 이내, 비상장주식 취득 시점이 2년을 경과하지 않은 경우 등을 들어 원가를 공정가치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위 사항들은 개별 예외 기준에서 추정해 볼 수 있듯이 초기, 소규모 기업에 대한 회계처리 불확실성을 완화하여 결과적으로 기관투자자들이 비상장 창업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 후 기준에 따른 평가에 편안함을 갖고 투자가 활성화된다면 혁신금융 측면에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금융당국의 기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동시에 그 반대편으로는 어느 정도 규모 이상의 비상장기업들에 대해선 취득원가가 아닌 공정가치를 반영하라는 메시지도 읽힌다.
냉정과 열정 사이
이러한 다방면의 노력의 결과일까? 많은 유수의 스타트업들이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며 거대한 규모로 성장해 나가고 있으며 토스, 두나무, 야놀자, 컬리 등의 회사는 기업가치 10조 규모의 회사를 언급하는 데카콘으로 칭송되기까지 하며 웬만한 상장사들 이상으로 장외 시장 등을 통해 거래되고 있다. 문제의 시작은 2022년 중반까지 끊임없이 치솟던 이런 회사들의 기업가치는 코로나 종식에 따른 기업가치 재평가, 금리상승, 벤처투자 위축 등의 악재와 더불어 급격하게 하락하기 시작하였고 이 자산에 큰 규모로 뜨겁게 투자했던 수많은 기관 및 개인투자자들은 과연 이 회사의 공정가치를 얼마로 기록하는 것이 합당할지에 대한 차가운 논란이 시작되었다.
평가와 감액 사이
통상적으로 벤처조합이 투자한 자산에 대한 평가는 복잡한 이슈를 동반한다. VC는 일정투자기간이 지난 후 투자자들로부터 조합이 보유한 순자산값을 기준으로 조합 운용과 관련한 관리보수를 받게 된다. 이에 조합이 보유한 개별 자산 값들의 평가는 단순 공정가치 평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조합 운용을 통해 얼마의 보수를 받게 되는지가 결정되기에 매우 민감한 사항으로 귀결된다. 투자회사에 별다른 사항이 발생하지 않는 한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평가하기에 별다른 문제가 없으나 대상 회사의 부실 등의 사유로 감액 시 순자산값은 줄어들게 되며 이에 따라 관리보수 또한 삭감된다. 이론적으로 자산의 평가값이 증가하면 더 높은 순자산값으로 관리보수를 받을 수도 있으나 보수적인 기관투자자들의 분위기상 이런 상황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기업가치 상승에 따른 후행투자(follow-on Investment)가 진행되는 경우 최초 투자 대비 높아진 가격으로 진행 시 기존 최초 투자가격에 반영해야 하는 것이 실질에 가까우나 아직까지는 이런 부분 또한 실무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복잡한 사정을 반영하여 VC의 관리보수 지급은 조합원 총회를 통해 최종 결정하게 되며 모든 조합원들의 동의를 전제한다.
一物二價, 가격(Price)과 가치(Value)
공정가치 평가에 대한 사항은 좀 더 민감한 이슈로 다가간다. 바로 일물이가(一物二價) 가능성이다. 통상 VC들의 일반적인 투자형태는 공동투자의 형태를 갖는다. 흔히 Club Deal이라고 불리는 이 방식은 한 개 회사에 대한 투자에 있어 다수의 VC들이 동시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이와 동시에 일개의 투자자는 다수의 VC에 분산하여 투자하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동일한 자산을 서로 다른 VC들의 주머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발생한 큰 변화 중 하나는 많은 VC들이 상장사로 탈바꿈하게 되면서 각 VC들이 운용하고 있는 조합의 자산에 대한 좀 더 엄격한 공정가치 평가 이슈가 대두되었다. 과거 비상장 시절 별다른 저항 없이 취득원가로 평가하고 있던 자산들에 대해 상장 후에는 K-IFRS에서 요구하는 공정가치 기준에 따라 개별 자산들에 대한 좀 더 정확한 평가값 반영을 통한 즉 공정가치를 반영한 재무제표 작성을 요구받고 있다. 즉, 동일한 자산에 대해 투자한 VC들의 자칫 서로 다른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천편일률적으로 취득한 자산에 대해 취득원가로 평가하던 과거와는 달리 평가 대상 자산의 대형화(유니콘, 데카콘)와 동시에 평가 주체들의 상장사로 변화 등이 통일된 공정가치로 평가해야 하는 시장의 요구가 더욱 커진 것이다.
특히, 신주가 아닌 구주에 투자한 경우에 이슈의 민감도는 상승한다. 수조원 규모로 형성되어 장외 시장 등에서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는 비상장 구주에 대해 유의미한 가격(Price)(가치(Value)가 아닌, 가치는 다소 주관적이다.)에 변화가 발생했을 시 대상자산이 비상장주식이라는 이유 하나로 취득원가를 평가값으로 고수할 근거는 약화된다.
모험자본(Risk Capital)이 모험(Adventure)이 되지 않기 위해서…
모험자본은 위험이 크고 장기이기에 큰 인내심을 요구한다. 그러기에 긴 투자과정에 있어 자산운용자와 투자자간의 투명한 소통과 명확한 규정이 더욱 요구된다. 모험자본투자는 투자 대상의 성격이 높은 리스크를 동반한다는 것이지 투자 행위 자체가 모험이 되어서는 안 된다. 투자는 투기나 도박과는 달리 투자한 자산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절대적으로 수반된다. 자신이 투자한 자산의 정확한 가치를 모르고 가는 것은 지도 없이 정글 속을 헤매는 위험한 모험이 될 수 있다.
특히 대부분의 기관투자자들은 긴 투자기간 동안 기투자 포트폴리오에 대해 평가를 진행하게 되며 이 평가는 신규 투자를 위한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에 평가는 지속적이고 영속적으로 투자 규모를 확대해 나아가기 위해 매우 중요한 근간이 되는 것이다. 현재까지 다소 주먹구구식이고 파편화 되어 있는 비상장주식에 대한 좀 더 정교하고 통일된 평가 기준에 대한 재정립은 성숙한 벤처생태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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