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를 구한 한국인 '씨앗학자' [책과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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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로 아프리카 추장이 된 사람이 있다.
한국인 식물유전육종학자 한상기(90) 박사는 51세이던 1984년 나이지리아의 대표 부족 가운데 하나인 요루바족으로부터 '세리키 아그베(농민의 왕)'라는 칭호의 추장으로 추대된다.
"아프리카에 바친 연구생활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몸짓이 비에 쓸려 내려가는 종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의 연구 흔적이 후배 과학자들의 귓전에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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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로 아프리카 추장이 된 사람이 있다. 한국인 식물유전육종학자 한상기(90) 박사는 51세이던 1984년 나이지리아의 대표 부족 가운데 하나인 요루바족으로부터 '세리키 아그베(농민의 왕)'라는 칭호의 추장으로 추대된다. 외부인에게 사람과 산천초목을 다스리는 추장 칭호를 부여한 전무후무한 사건. 아프리카인들은 왜 이역만리에서 찾아온 이방인에게 최고의 권력을 맡겼을까.
한 박사는 90년의 생애를 담담히 돌아본 자서전 '작물보다 귀한 유산이 어디 있겠는가'에서 그 이유를 전해준다. 그는 1970년대 아프리카의 주식 작물 '카사바'가 병들어 전역이 기아에 허덕였을 때 안정된 서울대 교수직을 버리고 아프리카로 날아갔다. 나이지리아 국제열대농학연구소(IITA)에서 23년간 근무하며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병에 강한 카사바를 만들어 보급했으며 아프리카 농학도를 키우고, 국제기구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농업연구를 해나갈 수 있도록 도왔다. 그가 훈련시킨 농학도 700여 명은 고국으로 돌아가 아프리카 각국에 1만여 명의 농학자를 배출했다. 국가적 차원에서 식량 자급의 기틀을 마련한 아프리카의 '조용한 혁명'이 가능했던 건 23년간 한 박사가 헌신한 결과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도 배부름의 풍요가 계속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시대이기에 울림이 크다. 작물 연구에 평생을 바쳐 아프리카를 굶주림에서 구한 노식량학자는 유례없는 식량위기를 목전에 둔 후손들에게 '과거를 언제나 귓전에 남겨두기를'이라는 아칸족의 격언을 들어 호소한다. "아프리카에 바친 연구생활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몸짓이 비에 쓸려 내려가는 종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의 연구 흔적이 후배 과학자들의 귓전에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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