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아니어도 그룹 지배하면 ‘총수’…동일인 판단 기준 명문화

그룹 내 공식 직함이 최고위직이 아니거나, 지주회사의 최대주주가 아니더라도 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면 대기업집단의 ‘동일인’, 총수로 지정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러한 내용의 ‘동일인 판단 기준 및 확인 절차에 관한 지침’ 제정안을 다음 달 20일까지 행정 예고한다고 오늘(29일) 밝혔습니다.

공정거래법은 ‘기업집단’을 동일인이 지배하는 회사(동일인이 법인일 경우 동일인 포함)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986년 대기업집단 제도 도입 때부터 지금까지 동일인의 기준이나 자격은 명시하지 않아 지정 때마다 논란이 돼 왔습니다.

동일인은 지정자료 제출 의무 등을 지는 동시에 특수관계인(총수 일가 등)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에 재계에서는 민감한 문제입니다.

이 때문에 매년 5월 공정위의 대기업집단 지정 때마다 승계나 특수한 상황에 놓인 그룹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과거 네이버는 2017년 공정위가 창업자 이해진 글로벌 투자책임자(GIO)를 총수로 지정할 때 ‘전문경영인과 이사회 중심의 경영체계를 확립한 만큼 총수 없는 (동일인이 법인인) 기업집단으로 지정돼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공정위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제정안은 기업집단 ① 최상단회사의 최다출자자, ② 기업집단의 최고직위자, ③ 기업집단의 경영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자, ④ 기업집단 내·외부적으로 대표자로 인식되는 자, ⑤ 동일인 승계 방침에 따라 기업집단의 동일인으로 결정된 자 등 5가지를 동일인 판단 기준으로 제시했습니다.

5개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이런 요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동일인을 지정하되, 기준에 부합하는 자연인이 없으면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게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기업집단 최상단 회사의 출자자가 자연인이 아니라 계열사나 경영 참여 목적이 없는 기관투자자일 경우, 직·간접 지분이 자연인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이 동일인 요건을 충족하는 것으로 판단하도록 했습니다.

경영에 대한 지배적 영향력 행사 여부는 대표이사 등 임원의 임면, 조직 변경, 신규 사업투자 등 주요 의사결정이나 업무 집행을 주도하거나, 보고받고 승인하는지로 결정합니다.

법인 등기에 등재된 직함이 ‘회장’, ‘이사회 의장’ 등이 아니더라도 기업집단 내 상위 직위자가 존재하지 않으면 최고 직위자로 볼 수 있습니다.

대표자로 인식되는 자는 회사의 창업주거나 기업집단을 대표해 대외활동을 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공정위는 이번 기준안이 그동안 공정위가 실무적으로 동일인 지정에 활용해온 판단 근거를 명문화한 것이어서 동일인 지정 결과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5개 기준 중 ‘(경영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라는 실질 기준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고 나머지 기준은 굉장히 중요한 참고 사항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기정 위원장은 “다양한 형태의 지배구조가 등장하고 있고 동일인 지정 관련 변수가 복잡·다양해져 5가지 기준을 균형 있게 살펴봐야 한다”며 “모호성이 이번 지침을 통해 완전히 해소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기존의 불확실성이 상당히 해소되고 예측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본다”고 했습니다.

제정안은 동일인이 사망하거나 의식 불명, 의결권 행사의 포괄 위임 등으로 더는 지배력을 행사하지 않는 경우 동일인을 변경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동일인 확인 절차를 명문화하고, 기업집단이 공정위의 동일인 판단에 이견이 있을 때 재협의(이의제기)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근거 규정을 마련했습니다.

이번 제정안에 담긴 동일인 판단 기준은 국적과 무관한 일반 원칙이라고 공정위는 설명했습니다.

한 위원장은 외국인의 동일인 지정 근거 마련과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와 통상 이슈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며 “사익편취 규제의 공백이 발생하지 않는 실효적인 규율에 더해 통상 마찰 문제도 생기지 않는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내기 위해 계속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공정위는 미국 국적의 쿠팡 김범석 의장이 ①, ③, ④ 요건을 충족한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외국인을 지정한 전례나 근거가 없어 쿠팡을 총수 없는 기업집단으로 지정한 상태입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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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민수 기자 (ms@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