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전사 일원된 폴, 커리어의 기로에 서다
‘뛰어난 실력에 비해 불운의 그림자가 너무 잦았던 사나이’ 'CP3' 크리스 폴(38‧183cm)에게 따라붙는 평가중 하나다. 그는 현시대 최고의 야전사령관으로 불린다. 갈수록 1~2번의 경계가 모호해지고있는 현리그에서 흔치않은 정상급 퓨어 포인트가드로서 꾸준하게 커리어를 쌓아오고있기 때문이다. 듀얼가드 일색 속에서 과거 정통 1번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몇 안되는 선수다.
물론 폴은 예전 세대에 대세를 이뤘던 정통파 운영형 가드와는 결이 조금 다르기는 하다. 가는 팀마다 팀 성적을 끌어올렸던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동료들을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능력이 탁월하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 상황에 따라서는 운동능력과 개인기를 앞세워 직접 득점을 올리는 스코어러 기질도 빼어났다.
한창 때는 주득점원이자 클러치 상황에서의 에이스 역할도 상당 부분 소화했다. 특히 발이 느린 빅맨들을 상대로 펼치는 미드레인지 게임은 리그 최정상급이다는 평가를 받았다. 퓨어 포인트가드와 듀얼가드로서의 능력 모두에서 특급 기량을 가지고 있던지라 자신이 원하는 방식데로 경기를 풀어나가는게 가능했다.
거기에는 빼어난 드리블 실력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익히 잘 알려진 일화이기는 하지만 작고한 그의 할아버지는 폴이 어릴 때부터 오른손을 묶어놓고 식사를 하게 했다. 왼손의 어색함을 줄여 양손 모두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어지간하면 반발할만도 하지만 할아버지의 진심을 알고있었던 폴은 그러한 방식을 순순히 따랐다.
외려 한술 더 떠 개인 훈련 때도 스스로 오른 손을 묶고 드리블 연습을 하기도 했다. 타고난 재능에 더해 지독한 노력이 더해지자 어느 순간부터 양손을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드리블의 달인이 되어있었다. 이러한 정상급 볼 핸들링은 그가 선수 생활을 하는 내내 최고의 무기가 되어주었다.
일대 일로는 어지간해서는 볼을 빼앗기지 않게 된지라 스스로 더블팀을 유도하는 낚시성 플레이를 펼치는 경우도 많았다. 워낙에 경기에 끼치는 영향력이 큰지라 수시로 더블팀 상황을 많이 겪는 편이지만 그렇지않은 경우에는 상대가 도움수비를 들어오기 좋은 쪽에서 일부러 볼을 끌며 버티는 경우도 잦았다.
더블팀이 들어올 수 밖에 없게끔 유인을 하고 그 과정에서 동료에게 오픈찬스가 나면 빈곳으로 패스를 넣어주거나 드리블로 더블팀을 뚫어버리며 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플로터, 스쿱샷으로 수비수의 높이를 무력화시키는 것을 비롯 미드레인지 점퍼같은 경우 몇시즌 전까지만해도 장인 소리를 들을 정도로 위력을 떨쳤다.
그렇게 플레이하면서도 실책은 평균보다 적은 편이었다. 그야말로 마술사같은 포인트가드였다고 할 수 있다. 한창 때는 수비 또한 약하지 않았다. 신장은 작은 편이지만 꾸준한 웨이트를 통해 적어도 동 포지션에서는 힘에서 크게 밀리지 않았고 특유의 영리함과 집요함이 더해져 매치업 상대를 곧잘 막았다.
거기에 스틸왕을 6차례나 거머쥐었을 정도로 상대의 볼을 가로채는 능력이 탁월했다. 볼의 흐름을 읽는 능력이 워낙 좋은지라 상대의 패스길을 예측하고 잘라먹는 스틸이 많았다. 이렇듯 적지않은 기간동안 공수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 폴은 어느덧 현 시대를 대표하는 포인트가드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1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중 하나가 됐다.
폴을 높게 평가하는 이들은 그를 역대 탑5급 포인트가드 명단에 올려놓아야한다고 주장하기도한다. 일단 사이즈부터 포인트가드로서 반칙인 규격 외 존재 매직 존슨과 오스카 로버트슨 등은 논외로 친다하더라도 아이제이아 토마스, 존 스탁턴, 스티브 내시 등과는 충분히 해볼만하다는 의견도 많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않다. 전성기 시절 보여준 최고점을 비롯 꾸준하게 탑클래스에서 경쟁한 것만으로도 기량검증은 끝났다고 할 수 있겠지만 눈으로 보이는 성적에서의 아쉬움이 크다. 폴이 어떤 선수인지는 신인왕, 어시스트왕 5회, 스틸왕 6회, 퍼스트팀 4회, 디펜시브 퍼스트팀 7회, 올스타 12회 등 화려한 이력을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하지만 최고의 끝점을 찍을만한 굵직한 타이틀이 아쉽다. 토마스의 경우 배드보이즈의 수장으로서 파이널 2회 우승을 이끌었다. 내시는 2회연속 정규시즌 MVP를 차지한바 있다. 폴에게는 이러한 대형 커리어가 없다. 아쉽게 우승을 놓친적도, 사실상 MVP였다고 인정받는 시즌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손에 쥐지못했다.
한시대를 지배한 선수들의 경우 우승 유무, 타이틀 한두개 차이로 커리어가 완전히 바뀌는 경우도 적지않다. 그런 점에서 남은 선수 생활이 많지않은 30대 후반의 폴은 매 시즌이 더 각별할 수밖에 없다. 특히 팬들 사이에서 ‘파궁사(파이널이 궁금한 사나이)’로 불리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무관의 제왕으로 남느냐 우승을 경험하느냐는 훗날 다른 가드들과의 비교 평가에서 엄청난 차이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무색해지는 시간 속에서 이제 폴도 나이를 먹었다. 뉴올리언스 호네츠, LA 클리퍼스, 휴스턴 로키츠,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를 거쳐 지난 시즌까지 피닉스 선즈에서 활약하던 폴은 최근 명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둥지를 옮겼다. 브래들리 빌의 반대급부로서 워싱턴 위저즈에 트레이드 된 후 다시 골든스테이트로 트레이드된 형식이었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폴이 골든스테이트에서 뛰게 될 것으로 예상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폴은 파이널 우승을 놓고 끊임없이 해당팀과 경쟁했던 관계였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곳에는 자신을 현역 넘버2 정도로 밀어낸 스테판 커리(35‧188cm)가 버티고 있다. 하지만 돌고돌아 둘은 한팀이 되었고 이제 우승이라는 목표를 향해 같이 나아가야할 동료 관계가 되었다. 커리어의 기로에 선 폴에게 골든스테이트는 기회의 땅이 될 수 있을까? 많은 팬들은 양측의 만남이 윈윈으로 작용하기를 바라고 있는 분위기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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