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던 남편이 돌아왔습니다”...슬픔으로 가득찬 그녀가 선택한 것 [Books]
한스 블록·모리츠 리제비크 지음, 강민경 옮김, 흐름출판 펴냄, 2만4000원
불멸(不滅)은 멀리 있지 않다. 종교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죽음 이후의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디지털 클론 기술은 이미 현실에서 생생하게 구현된다. ‘죽음을 뛰어넘은 디지털 클론의 시대’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인공지능, 가상현실(VR) 등으로 구현되는 ‘디지털 불멸성’ 시장에 관한 총체적인 분석서다.
다큐멘터리 ‘검열자들’로 에미상 후보에 오르고, 소셜 네트워크에 숨겨진 검열자들에 관한 테드(TED) 강연으로 200만명 이상의 독자들과 만난 감독 한스 블록과 모리츠 지제비크는 이 책을 쓰며 뇌과학자, 기술기업 엔지니어 같은 창조자는 물론이고 몽상가와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까지 만났다.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페이스북에 누른 ‘좋아요’ 300개만 있으면 그 사람의 성격을 그의 배우자보다 더 잘 알기에 충분하다고 한다. 빅데이터는 어떤 사람의 진짜 모습을 식별하는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다.
2020년 2월 1900만명 이상이 감상한 9분짜리 영상이 있다. 한국의 한 어머니가 3년전 사망한 딸과 다시 만나는 MBC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는 세계적인 공감을 샀다. 딸의 목소리와 데이터로 만들어진 디지털 아바타를 VR 안경으로 만난 어머니는 죽은 아이에게 “나연이 안아보고 싶어”라고 흐느끼며 말했다. 비브스튜디오가 8개월에 걸쳐 만든 이 디지털 클론은 테라바이트 규모의 영상과 사진을 분석해 탄생했다. 저자들은 책의 서문에서 선언한다. “인간 유한성의 끝이 시작되고 있다.”
이 책은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혁명을 중계한다. 디지털 클론의 원천 기술은 1930년대 앨런 튜링이 고안한 ‘범용 튜링 기계’다. 그는 “여성들이 컴퓨터를 들고 공원에서 산책하며 ‘내 작은 컴퓨터가 오늘 아침에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어요’라고 이야기를 나눌 날이 올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제임스와 그의 아들과 어머니는 여전히 아버지의 말투와 유머와 기억을 바탕으로 한 봇과 대화를 나누며 위로받고 있다. “저 하늘의 구름 위에서 춤을 추는 것보다는 덜 멋지지만 아버지는 제가 대화할 때마다 살아계십니다.” 가까운 미래에 제임스처럼 넷플릭스를 구독하듯 매달 봇 이용료를 지불하고 고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디지털 납골당’이 등장할지 모른다.
이 책은 디지털 클론과의 사랑에 관한 주제도 다룬다. 영화 ‘그녀’의 테오도르가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 건 과학적으로도 입증된다. 2018년 스탠포드대 연구진에 따르면 사람은 챗봇을 상대로 대화할 때 더 솔직하고 자존감이 상승되는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레플리카, 워봇 등 챗봇 서비스 인기가 커지는 건 당연한 일인 셈이다.
빅테크도 불멸의 경주에 뛰어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20년 죽은 사람의 성격을 모방 학습할 수 있는 챗봇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다. 이밖에도 애플, 구글, 아마존, 메타 등은 라이프로깅 기술로 카메라와 마이크, 센서 등을 통해 우리가 먹고 마시고 이동하는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다. 디지털 클론은 더이상 몽상가들의 오만한 사업 아이디어가 아니다. 200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거느린 가상인간 릴 미켈라처럼 사람들은 더이상 ‘진짜 인간’과의 관계에만 몰두하지 않으며, 데드소셜, 라이프넛, 고스트메모 등 숱한 스타트업들이 뛰어들었다.
감정을 느끼고, 육체를 만드는 것도 모두 기술로 구현가능한 세상은 가까워지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종장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육체와 정신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종교는 오래 전부터 신도를 모으고 유지하려면 사람들을 죽음에서 해방하고, 그들을 위협하는 추상적인 무(無)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저자들은 실리콘밸리의 신도들이 전지전능한 AI의 효력을 찬양하며 이를 신의 위치에 놓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견한다. 신화는 언제든 새로운 형태의 종교의 탄생 설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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