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글 주의 시대’, 문자로 떠나는 여행…국립세계문자박물관 개관

임지선 기자 2023. 6. 2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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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송도에 위치한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29일 개관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글보다 영상, 짧은 카톡 메시지보다 이모티콘이 더 주목받는 시대다. 인류 문명을 이어온 문자에는 과연 미래가 있을까. 29일 인천 송도에 개관한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던지는 질문이다.

프랑스 샹폴리옹 박물관과 중국 문자박물관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문을 여는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외관부터 눈에 띈다. 박물관은 파피루스와 같은 흰색 종이를 이어놓은 듯한 두루마리 모양을 하고 있다. 고층에서 보면 물이 흘러가는 듯한 모양이기도 하다. 문자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새로운 문명과 역사를 써 내려 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인류의 역사는 쐐기문자(설형문자)를 사용하기 전후로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구분된다. 즉 문자는 문명의 시작이다. 전시도 쐐기문자가 적힌 유물에서 시작한다. 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원형 배 점토판’을 볼 수 있다. 홍수를 피하기 위해 인간이 배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점토판에 줄 맞춰 빼곡히 적혀 있다. 구약성서 ‘노아의 방주’와 관련된 초기 기록물로 홍수 신화의 내용이 쐐기문자로 기록됐다. 기원전 2000~1600년 전쯤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구약 성서 ‘노아의 방주’와 관련된 초기 기록물로 홍수 신화의 내용이 쐐기문자로 기록된 ‘원형 배 점토판’. 문화체육관광부·국립세계문자박물관 제공.

박물관의 상설전시 주제는 ‘문자와 문명의 위대한 여정’. 세계 문자와 인류 문명의 장대한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인류 최초의 문자 쐐기문자를 비롯해 세계 대부분 문자에 영향을 준 이집트 문자, 현재까지 사용하는 가장 오래된 문자 한자, 가장 잘 만들어진 문자로 알려진 한글에 이르기까지 55종의 문자가 다양한 유물과 디지털 이미지로 전시되어 있다.

특히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로 인쇄한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 여호수아서’를 만나볼 수 있다. 이 성서는 한 면이 42행으로 이뤄져 42행 성서라고도 불리며, 서양 인쇄술을 대표하는 구텐베르크 성서의 초판본 중 하나다. 유럽에서는 이 성서로부터 본격적인 상업 출판이 시작됐고 지식 정보가 대중화되는 길이 열렸다. 아시아권에서 구텐베르크 성서를 소장하고 있는 기관은 일본 게이오대학교와 한국의 국립세계문자박물관뿐이다.

서양 인쇄술을 대표하는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 초판본 중 ‘여호수아서’ 분책본. 문화체육관광부·국립세계문자박물관 제공.

미라를 만들 때, 죽은 사람의 내장 일부를 보관한 용기인 ‘카노푸스 단지’(기원전 664년~525년)도 눈에 띈다. 용기 한 가운데 이집트 상형 문자로 죽은 사람의 업적 등을 적어놨다. ‘콥트어 오스트라카’는 7~8세기 이집트 콥트어 문자로 작성된 편지로, 사막 기후에서는 문자를 적을 종이가 없어 깨진 도자기 파편에 편지를 썼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원본이나 진품이 다수지만 전시물 중 4분의 1가량은 복제품이다. 특히 25점은 진열장 밖에 있어 직접 만져볼 수 있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고대 법률 문서 중 가장 방대한 내용을 담은 ‘함무라비 법전’이 그 예이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함무라비 법전’을 박물관은 특수한 기술을 전수받아 복제해왔다. 복제품이라 아쉽지만 복제품이기에 직접 만져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셈이다.

개관기념 특별전은 ‘긴글 주의 - 문자의 미래는?’이다. 긴 글을 점점 기피하고 그림과 영상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현상을 돌아보고 문자의 고유한 기능과 비문자의 소통 역할을 통찰케 한다. 이모티콘과 픽토그램 등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그림들을 친숙하게 마주할 수 있다.

총 720억원 예산이 투입된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전 세계 문자와 기록에 관한 문서 자료 244건과 유물 543점을 보유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어, 태국어, 아랍어 등 9개 언어 해설을 제공한다. ‘깨비와 함께 떠나는 문자여행’이라는 주제로 어린이 체험관도 마련됐다. 다양한 문자를 놀이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박물관 곳곳에서는 문자와 관련한 조형물과 그림도 즐길 수 있다. 상설전시관 초입에 스피커 1500개를 쌓아 만든 김승영 작가의 ‘바벨탑’은 문자 발명 이전 언어와 소리의 기원을 상징하는 설치 작품이다.

김주원 관장은 “한글을 지닌 문자 선진국으로서 한국이 세계문자 연구를 선도하기 위해 건립됐다”며 “세계 문자 문명을 비교문화 시각에서 다양하게 조명하고. 세계 문자의 가치를 공유하고 세계 문자의 다양성 이해를 증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9일 개관식과 함께 30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개관기념 미디어아트 전시, 국제학술대회, 각종 체험행사와 공연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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