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 생애 첫 월급봉투’ 응원과 지지로 나아간다[플랫]

플랫팀 기자 2023. 6. 29.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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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다양한 첫 월급이 있었다. 첫 아르바이트비로 받은 현금 10만원이 담긴 소박한 봉투도 있었고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면 괜히 웃음이 나던 회사원 시절의 첫 월급도 있었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첫 월급은 시민사회로 발을 들인 뒤 받은 첫 활동비였다. 작은 풀뿌리단체에서 일했던 터라 단체의 재정으로는 도저히 인건비를 줄 수 없었지만 우연히 만난 이 단체가 너무 좋았고 내가 배우고 익혀 가진 것들을 잘 쓸 수 있는 곳이어서,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배울 수 있는 점이 많아서 그렇게 그냥 합류한 터였다. 돈을 벌겠다고 뛰어든 일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한국여성재단이 ‘풀뿌리활동가 지원사업’을 통해 인건비를 지원해주었을 때 몹시 기뻤다. 경제적으로 숨통이 트인 느낌도 좋았지만 더 큰 기쁨은 내가 지금 잘하고 있고, 내가 하는 일이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이 맞다는 그 응원이었다. 그 지지 덕분에 나도 10년째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우리 마을에 있는 ‘생각나무 BB센터’의 안순화 활동가는 이주여성과 그 자녀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주여성의 한국 정착과 생활을 돕고, 다문화가정의 2세들에게 엄마의 모국어와 문화를 접하게 함으로써 가족 간의 소통을 돕고, 시민들에게 다른 나라의 문화와 전통을 소개하는 행사를 기획하는 등 엄청난 일들을 16년간이나 해오셨는데 그간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16년이란 시간에 대해 감조차 오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고민과 어려움이 있으셨을까. 서울시에서 수여한 자원봉사대상을 비롯해 곳곳에서 다양한 상을 받으신 걸로 아는데, 그 왕성한 활동의 가치와 필요성엔 공감하지만 활동비 문제에 대해서만은 모두가 눈을 감은 셈이다. 이분의 활동으로 이주민과 다문화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달라지는 좋은 성과가 있었다면 이 활동을 계속하실 수 있도록 응원이 필요하다. 그것도 적극적이고 격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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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나 어느 개인이 풀긴 어려워도 마을은 나서볼 만하다. 그래서 ‘활동가 생애 첫 월급봉투’라는 행사가 열렸다. 웹자보를 뿌리고, 후원금을 받고, 당일에 쓸 음식도 기부받았다. 별로 넓지도 않은 사무실에서 누구는 칵테일을 만들고, 누구는 캘리그래피 엽서를 만들고, 누구는 공연을 준비하는데, 또 다른 누구는 옆에서 주먹밥을 뭉치는 이 현장은 솔직히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좁은 테이블 사이로 뜨거운 프라이팬이 오가고, 통성명과 합석이 자연스러운 정신없는 와중에도 묘하게 질서가 잡혀서 누군가는 안 보이는 곳에서 조용히 설거지를 하고, 또 누군가는 모금함에 봉투를 넣고, 밥을 먹던 사람들이 새로운 사람들을 위해 다시 프라이팬을 잡는 순환이 이루어졌다. 그 와중에 안순화 활동가님을 향한 애정과 응원의 말들이 테이블마다 쌓여갔다. 무알코올칵테일에 취한 걸까. 모두가 돈도 내고, 집 안 냉장고도 털어오고, 일도 했는데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그날 저녁 그렇게 첫 월급봉투를 받으신 안순화 선생님이 많이 우셨다. 고작 하루 동안 모금한 그 금액을 선생님의 16년 활동과 감히 연결지을 수 없겠지만 마을이 나서서 그분의 활동을 기억하고 응원하고 연대하는 자리였음이 충분히 전달되었으리라 믿는다. 수고하셨고 감사했고 존경한다는 인사가 100번쯤 들려왔다. 마을이었다. 마을다운 날이었다.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플랫팀 기자 areumlee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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