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환자 왜 이렇게 많아" 의사도 깜짝…'11만명 감염' 교실방역 구멍

박정렬 기자 2023. 6. 2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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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렬의 신의료인]
9개월째 '독감 유행 주의보'
(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코로나19 위기 경보 수준이 '경계'로 하향 조정된 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여고에서 한 학생이 마스크를 손에 들고 등교하고 있다. 방역당국은 이날 0시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단계를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 조정해 신규 확진자는 7일 격리 의무 대신 5일 권고로 방역수칙이 바뀌는 등 엔데믹(endemic·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으로의 전환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2023.6.1/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코로나19 엔데믹 전환에 방역 빗장이 풀리면서 학교 내 이례적인 독감(인플루엔자) 유행이 지속되고 있지만, 정작 교육부의 감염병 관리 대응 체계는 '허점투성이'라는 지적이다. 감염병 예방·대응 매뉴얼은 7년 전에 멈춰있고 그나마 홍보도 제대로 되지 않아 교실 현장에서는 '주먹구구식' 대처가 이뤄지는 형편이다. 독감은 물론 다가올 감염병 펜데믹에 대비해 교육·방역 당국 간 원활한 협업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28일 정부 부처에 따르면 지난해 9월 16일 발령된 '독감 유행 주의보'는 올 상반기까지 9개월 넘게 유지되고 있다. 2022~2023년 독감 유행 기준은 외래환자 1000명당 4.9명인데, 가장 최근인 24주차(6월 11~17일)까지 1000명당 15.7명으로 기준치의 3배를 웃돌고 있다. 정준교 정소아과의원 원장(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은 "20년 넘게 의사로 활동하면서 6월에 이렇게 많은 독감 환자를 보는 건 처음"이라며 "독감과 아데노바이러스, 파라인플루엔자 등 감기가 동시에 창궐하는 것 역시 이례적이다"고 평가했다.

올해 독감 등 감염병 유행은 10대 초·중·고교생이 주도한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7~18세 독감 의심 환자는 11주차(3월 12~18일) 이후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개학과 맞물려 학생 간 감염이 일어나고, 부모 등 성인과 지역사회로 번지는 양상을 띤다. 독감 유행을 잡기 위해 관리해야 할 '고위험군'이 학생이라는 의미다. 마상혁 창원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은 "소아·청소년은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마스크 등 강화된 방역 정책을 따르다 보니 미생물에 노출될 기회가 적었고, 이에 따라 면역력이 전반적으로 약해진 '면역 빚(Immune Debt)'을 지녀 감염병에 훨씬 취약하다"며 "집단 전체가 면역력이 낮은 상태라 언제든 바이러스가 퍼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6월 15일 기준) 교육부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나이스(NEIS)를 통해 신고된 초·중·고교의 독감 환자 수는 11만148명에 달한다. 초등학생이 6만 9161명으로 가장 많고 중학생 2만6689명, 고등학생 1만3984명, 특수학교 학생 314명 순이다. 독감 유행이 언제 멈출지 알 수 없는 데다, 매년 가을 이후 감염병이 확산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학생 독감 환자는 지난해(약 15만명)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초등학생 독감 환자는 이미 지난해 총환자 수(5만9140명)를 뛰어넘은 상황이다.

하지만, 학교 내 독감을 포함한 감염병 관리는 여전히 부실하기만 하다. 교육부가 발행한 감염병 예방·대응 매뉴얼은 2016년이 최신판으로 이미 7년이나 지났다. 초임 교사는 물론 경력이 있는 교사에게도 인지도가 낮다. 독감의 이례적인 유행에 교육 현장의 혼란이 극심했던 이유도 '오래된 매뉴얼'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초등 교사는 "코로나19는 변이 발생 시 별도의 방역 지침이 계속 전달돼 대응하기 수월했는데, 독감처럼 일반적인 감염병은 다른 교사에게 묻거나 기존에 하던 대로 대응하는 게 전부"라며 "학생이 독감 의심 증상을 보인다고 검사를 강제해도 되는지, 병이 나은 걸 어떻게 판단하는지 여전히 헷갈린다"고 전했다.

심지어 최근 '먹통 논란'에 휩싸인 나이스(NEIS)에서는 아직도 A형 독감을 1급 감염병으로 구분하고 있다. 2009년 신종 플루 때 1급이었다가 4급 계절 인플루엔자로 전환된 지 이미 오래인데 아직도 그대로다. 또 윤석열 정부가 어린이집, 학교 등 고위험·다중이용시설의 감염병 예방을 위해 '항바이러스 필터' 보급을 추진한다고 했지만, 환경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만들겠다는 필터의 성능인증 기준조차 1년이 지나도록 수립되지 않고 있다.

마 과장은 "질병청은 한정된 의료기관에서 독감 의심 환자를, 교육부는 학생 신고를 바탕으로 독감 확진자를 집계하는데 두 데이터 간 편차가 있고 시기·지역구분도 어려워 교실 방역에 쓸 '기초 자료'조차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며 "정부 부처 간 협업을 통해 통합적인 학교 방역 시스템을 구축하고 제대로 된 감염병 매뉴얼을 만들어야 다가올 새로운 펜데믹에 대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육부는 "코로나19 종식 상황을 보면서 학교 감염병 매뉴얼을 보완해 재안내할 예정"이라 밝혔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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