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돈이 됩니까?"…코로나 종식에 민낯 드러난 디지털헬스케어

박미리 기자, 김도윤 기자, 정기종 기자 2023. 6. 2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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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디지털 헬스케어, 돈 될까①
[편집자주]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촉망받는 미래산업이란 평가에 이견은 없는 듯하다. IT(정보기술)와 AI(인공지능), 빅데이터, 의료 기술의 발달과 융합으로 여건은 갖춰졌다. 하지만 궁금증이 남는다. 너도나도 디지털 헬스케어라는데, 정말 돈이 될까. 규제 장벽을 넘고 새 시장을 창출할 수 있을까. 최근 디지털 헬스케어 선두주자로 꼽히는 미국 글로벌 기업이 파산했다. 비대면 진료 허용 등 시장 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명과 암을 짚을 때가 됐다.

#지난 4월 세계 최초 디지털 치료제(DTx) 개발회사 '페어 테라퓨틱스'가 파산했다. 201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약물중독 디지털 치료제 '리셋'을 허가받은 뒤 업계 선두주자로 꼽혀온 회사다. 2021년에는 160억달러(약 21조원)에 달하는 가치를 인정받으며 나스닥에 상장했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심각한 재정난 때문이다. 페어 테라퓨틱스는 지난해 영업손실이 1억2335만달러(약 1609억)로, 매출액 1269만달러(약 166억원)의 10배에 달했다.

전조 증상이 없던 건 아니다. 페어 테라퓨틱스는 지난해 말 현금 확보를 위해 직원의 20%가량을 해고했다. 지난 3월에는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회사 매각, 합병 등을 통한 자금 조달을 고려 중이라며 실패 시 청산이나 구조조정을 모색해야 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적합한 인수자를 찾지 못하고 한 달 만에 파산, 나스닥 퇴출이란 최악의 상황을 맞닥뜨렸다.

비슷한 시기 나스닥에 상장된 또 다른 디지털 치료제 개발회사 '아킬리'에서도 위기가 표출됐다. 게임형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디지털 치료제 '엔데버Rx'로 FDA 승인을 받은 회사다. 올해 초 인력의 30%가량을 감축하고 다른 파이프라인은 개발 중단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배경은 페어 테라퓨틱스와 같은 재정난이었다.

두 나스닥 상장사의 상황은 상징적이다.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온갖 최첨단 기술과 서비스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빠르게 발전하는 미국 시장. 그곳에서 디지털 치료제 시장을 개척한 기업들이 오랜 기간 돈을 못 벌어 살림살이를 줄이고, 그것도 부족해 문까지 닫았다. 미국 시장에서도 아직 디지털 치료에 선뜻 주머니를 열지 않는단 의미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현재 시장 환경에서 성장 산업으로 지위를 굳히고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너도나도 디지털 헬스케어 도전하지만…
디지털 헬스케어 후발주자인 국내도 상황이 마냥 긍정적이진 않다.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닥터나우, 굿닥 등이 제공한 비대면 진료가 대표적이다.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COVID-19) 기간 '한시적 허용' 수혜를 받아 급성장했고 코로나19 이후 장밋빛 미래가 전망됐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코로나19 기간 초진, 재진 구분 없이 비대면 진료가 가능했지만 코로나19 이후 재진만으로 범위를 제한했다. 초진은 섬과 벽지 환자, 거동불편자, 감염병 확진자 등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약 배송도 이들에만 열어줬다.

국내 비대면 진료 플랫폼은 생존의 기로에 섰다. 규정이 전환된 지 한 달도 안 돼 체킷, 바로필 등 사업을 접는 업체가 나오기 시작했다. 재진 중심 비대면 서비스로는 존속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원격의료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비대면 진료 이용자의 99%는 초진 환자다. 이들이 "재진 중심 비대면 진료가 제도화되면 기업(약 30곳)의 80%가 도산한다"고 반발한 이유다.

그나마 최근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 정부 주재 회의에서 목소리를 낼 기회가 열렸다. 하지만 재진 중심 비대면 진료안이 도출되기까지 지속된 대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등 기존 업계와 갈등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맛봤던 고성장세를 재현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김법민 범부처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장은 "국내 비대면 진료가 갈라파고스 상황이 된 것 같다"며 "산업화까지 가도록 충분한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해외기업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디지털 치료제 시장도 상황은 비슷하다. 상용화를 위한 논의에 속도가 나지 않는다. 올해 2월 국내에서 첫 디지털 치료제(에임메드의 불면증 치료제 솜즈), 4월 두 번째 디지털 치료제(웰트의 불면증 치료제 웰트-I)가 탄생했지만, 아직 환자 치료에 쓰이지 못하고 있다. 시장 안착을 위해선 건강보험체계에 들어가야 하는데 논의가 더디다. 원하는 수가를 받아도 의사들이 디지털 치료제를 적극 수용할지, 약사들과 관계는 어떻게 설정할지 문제가 남는다. 곳곳이 난관이다.

송재호 한국디지털헬스산업협회장은 "디지털 헬스케어산업이 국가에서 차지할 전략적 가치와 성장성,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사회 파급효과를 고려하면 산업 진흥은 속도전 양상을 띨 것 같지만 실제는 이에 미치지 못해 다소 아쉬운 측면이 있다"며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제도적 보상 체계 확립과 데이터 활용도 제고, 과감한 규제 혁파에서 돌파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국내 첫 디지털 치료제로 허가를 받은 에임메드의 불면증 치료제 '솜즈' /사진제공=에임메드
"그래도 디지털 헬스케어" 이유는
이쯤되면 디지털 헬스케어와 '돈'은 아직 먼 얘기로 보인다. 디지털 치료제도 글로벌 시장 규모가 2019년부터 연평균 20.5% 성장해 2025년 89억달러(약 11조원)가 될 것으로 전망되지만(삼정KPMG), 정작 구성원인 기업들은 돈을 벌지 못해 생존에 어려움을 겪는 현실이다. 기업이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반도체, 통신처럼 산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디지털 헬스케어가 미래 먹거리가 될 것이란 믿음은 굳건하다. 정부 및 업계, 국내와 해외 모두 이견이 없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란 판단에서다. 김법민 단장은 "더 많은 사람들에 효과적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스마트한 의료 서비스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며 "디지털 헬스케어는 필연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시장"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새로운 기술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개발되고 있다"며 "매출 일으켜 자생하는 국내 기업이 없다면 외국기업에 기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렇게 되면 향후 보건 안보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일부지만 돈을 버는 업체도 나오고 있다. 의료 인공지능(AI) 솔루션 업체 루닛, 건강관리 앱(애플리케이션) 개발사 넛지헬스케어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명확한 사업모델 구축, 해외시장 공략 등 전략을 바탕으로 매년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특히 넛지헬스케어는 흑자를 낸 지 오래됐다.

카카오벤처스에서 디지털헬스케어 투자를 이끄는 김치원 상무는 "디지털 헬스케어도 결국 의료비를 아껴주고, 기업은 실제 돈을 버는 등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며 "초기에는 이 부분에서 막연한 회사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어떻게 하면 돈을 벌겠다'가 보이는 회사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벤처캐피탈(VC) 업계에서도 한국 의료 시스템 구조 등 당장 돈 못 버는 요인이 있어 우려하는 부분은 있지만 트렌드상 맞는 것이란 전제를 갖고 투자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고 말했다.

거스를 수 없지만 아직 블루오션인 시장이 디지털 헬스케어다. IT 기술이 뛰어나면서 제약·바이오 산업 후발주자인 우리나라에 매력적인 시장이다. 경쟁력 있는 기업을 배출하기 위한 환경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단 목소리가 나온다. 송승재 벤처기업협회 디지털헬스케어정책위원장(라이프시맨틱스 대표)은 "최근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 개혁이나 산업 진흥을 위한 대책 발표가 이어지는 만큼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을 위한 도로가 제대로 설계될 수 있도록 이해관계자들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미리 기자 mil05@mt.co.kr 김도윤 기자 justice@mt.co.kr 정기종 기자 azoth4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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